'서울 안 개구리'
[지역이 대한민국이다! ⑧]
[미디어오늘 한명규 JTV전주방송 대표이사]
10월29일은 지방자치의 날입니다.
지방자치의 정착이라는 공보처의 설립 취지를 통해 탄생했기에 지역민방이 느끼는 지방자치는 남다르다고 합니다.
수도권 초집중과 지방소멸의 위기, 강한 구심력에 비해 약한 원심력. 어디서부터 해법을 찾고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요?
지역방송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지역민방 9개사는 10월24일부터 30일까지 한주를 지방자치 주간으로 정하고 기획보도, 특집 대담, 캠페인 등의 제작 편성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본지에는 릴레이 기고를 희망해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기획 연재 '지역이 대한민국이다' 시리즈를 통해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 편집자 주
식견이 좁아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한다. 한국민은 어느 샌가 서울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힌 '서울 안 개구리'가 되어버렸다.
모든 기준이 서울이다. 대학입학 우선 순위도 '인(In) 서울'이냐 아니냐는 잣대로 잰다. 올해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는 극단적이다. 1위부터 19위까지 모두 '인 서울' 대학이다. 기업 유치도 수도권과의 거리로 승패가 갈린다.
참으로 기형적인 나라다. 젊은이들은 3류 인생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일찍부터 서울로, 서울로 향하고 기업은 좋은 인력을 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방을 외면한다.
나는 우리가 왜 이 좁은 국토를 서울이라는, 또는 수도권이라는 공간으로 계속 좁혀 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서울 집중이 과거에는 한국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노동력과 서비스, 인프라, 물류, 지식 등 모든 것이 서울 일극주의(一極主義)로 흘러 유례없는 속도로 국가의 비약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서기 2000년을 맞이하면서는 달라져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부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과 같은 혁신적인 국토균형 발전정책을 펼치기는 했지만 한계가 있었고, 노 대통령 이후에는 오히려 수도권 비대화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보는 관점은 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지금이라도 대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좁은 국토를 넓게 쓰자는 이야기고,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국토 이용의 전국화를 통해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저출산과 인구의 고령화, 인력난과 취업난, 지역 격차와 소득 불균형, 세대 갈등, 대학 위기, 교통난, 사회적 스트레스 같은 것들을 관통하는 해결방법은 하나다. '탈(脫) 서울'이고 '전국화'다. 이를 실천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 같지만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첫 번째가 서울대와 '인 서울' 사립대에 쏟는 정부 예산을 지방 거점 대학으로 돌리는 방안이다. 서울대의 지방 이전론도 있지만 전국토가 KTX로 인해 반나절 생활권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다지 유효한 수단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미 법인화된 서울대 지원을 중단하고 지방 거점 국립대를 '한국 1대학' '한국 2대학' 식으로 바꿔 획기적으로 재정지원을 해 나간다면 대학이 지역발전의 중심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걷히는 내국세의 21.79%와 교육세 세수를 교육재정으로 투입한다. 이 막대한 예산은 저출산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감소했는데도 그대로다 보니 다 쓸 수도 없는 방만한 예산이 되고 말았다. 이 예산은 대학의 구조 조정과 지방 거점대학 지원에 대폭 할당되어야 한다.
둘째로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에 대한 획기적인 혜택이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 지역에 사람이 거주할 리 만무하다.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주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외국인 노동자 고용과 이민자격 부여에 상당한 자율권을 주도록 하자. 특히 인구 소멸 위험지역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다른 지역보다 차등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한다면 국토 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세 번째로 새만금 지역을 대한민국의 신산업지대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서울 넓이의 3분2나 되는 새만금은 대한민국이 중국을 겨냥해 유일하게 활용할 수 있는 광대한 땅이다. 천혜의 조건을 가진 이런 지역을 어느 정부도 창의적으로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지역을 살리기 위한 미디어 지원책도 필요하다. 미디어 발신지가 압도적으로 서울 중심이다 보니 지역민들의 눈과 귀는 서울로 쏠린다. 대다수 지역신문은 빈사상태에 빠져 건강한 여론 형성 기능을 상실했으며, 지역방송도 겨우 버텨나가는 수준이다. 특히 지역 지상파 방송은 모바일이나 OTT, 네이버 같은 디지털 미디어가 급성장하고 있음에도 정부 규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는 결국 지역의 위상 추락과 지역성의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지역마다 좋은 프로그램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예산지원도 고려할 때가 됐다고 본다.
헌법 제11조는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하고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 여기에 지역에 의한 차별은 들어가 있지 않다. 너무나 당연해서 안 넣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차별은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시대는 시기가 문제일 뿐 언젠가는 반드시 온다. 더 이상 수도권에 밀집해서 살 수 없는 환경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기를 앞당기는 건 집권자의 몫이고, 미리 준비하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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