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도리어 성취격차를 불러옵니다"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었지만 아직까지 유아교육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유아교육의 근간을 훼손하는데까지 이르게 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이들이 1년 일찍 초등학교로 진학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학제개편안은 비록 무산되기는 했지만, 일반인들과 정책입안자들의 유아교육에 대한 인식부족을 여실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통합, 즉 '유보통합'이라는 커다란 숙원과제를 두고서는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유아교육 정책을 바로세우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베이비뉴스는 한국유아교육학회와 함께, 앞으로 유아교육정책의 근간이 될 유아교육 철학에 대해 여섯 차례에 걸쳐 기획연재를 진행하면서 유아교육의 본질과 유아교육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교육부는 만 5세 초등입학 정책 추진의 이유로 교육격차 해소를 들었다. 영유아기에 대한 교육적 투자 효과가 다른 어떤 시기보다 큰 만큼 인생 초기부터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 5세 초등입학은 도리어 교육의 결과상 격차를 벌릴 가능성이 높다. 연령이 어려질수록 월령(개월 수로 계산하는 나이)에 따른 발달 차가 커진다. 때문에, 입학연령이 낮아질수록 초기의 발달차에 따른 성공·실패 경험이 누적되어 이후 인생의 전방위적 성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초등입학 기준연령이 낮아질수록 출생월이 늦은 아동은 점점 더 불리해진다
이미 우리보다 앞서 형식교육 시작 적정 연령에 대한 뜨거운 사회적 논쟁을 거친 미국, 영국, 호주 등의 국가들은 입학 당시의 빠른 출생월에 의한 발달적 우위가 학업 및 예체능 분야에서의 성취, 학교 적응, 또래 관계 등에서의 우위로 이어지는 현상을 검증하는 관련 연구들을 수행해왔다. 전국규모 빅데이터에 기반해 분석의 엄격성을 갖춘 국내외 연구만 추려 종합적으로 검토한 연구는 이른 출생월의 우위효과가 지속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먼저, 학업·인지적 측면에서 분석에 포함된 연구들 중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에 주목한 연구들의 92.9%와 87.5%, 중학교 과정에 주목한 연구들의 76.5%가 출생월이 빠른 학생들이 학령기 동안 인지적 측면에서 더 높은 성취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했다(그림 1 참조). 고등학교의 경우 관련 연구들 중 46.7%에서만 우위효과가 발견되어 그 영향력이 감소하는 것처럼 나타났지만, 대학 진학률을 분석한 연구 중 그 비율은 다시 81.8%로 상승했다.
문제행동과 부적응, 또래관계, 10대 음주나 임신 등의 사회정서적 발달을 살펴본 연구들도 유사한 결과를 보여주었다([그림 2] 참조).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에 주목한 연구들의 100%가 입학 당시 월령이 낮은 학생들에게서 주의력 결핍이나 과잉행동 등으로 특수학급 배정을 권고받거나 ADHD로 진단받는 등 사회·정서 측면의 발달적 성취가 낮을 가능성이 유의하게 높음을 보고하였다. 또한,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주목한 연구들도 빠른 출생월의 우위효과를 지지하는 결과를 제시한 비율이 각각 71.4%와 66.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성인이 되었을 때의 취업률, 소득, 주택 소유와 같은 경제적 측면에 주목한 연구는 소득이 창출되는 시점까지의 절대적 시간 소요로 인해 연구물의 수 자체가 적었는데, 이들 중 빠른 출생월의 우위효과를 증거한 연구의 비율은 38.5%로 낮았다([그림 3] 참조). 또한, 소득 상의 우위효과를 보여준 연구물 5편 중 4편이 그 효과가 남성들에게서만 유효한 것으로 나타나 월령이 높음에서 오는 경제적 측면의 우위효과는 성별에 따라 다를 가능성을 암시하였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학교를 한 해 빨리 입학하더라도 개인의 소득 수준이나 자산에서의 이점은 없고, 대신 입학연령을 낮추었을 때 성인기 소득 상 부정적 효과는 남성들에게서 더 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의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입학연령을 앞당기는 정책이 꽤 오랫동안 월령이 낮은 아동들이 성장기 동안 겪어내야 할 불리함을 가중시킬 것임을 시사하며, 이는 곧 많은 학부모와 교사, 학계 전문가가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는 각종 우려를 지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 되도록 늦게 입학하는 것이 대다수에게 유리하다
이른 출생월의 우위효과를 들여다봄에 있어서 생각해 볼 문제는 이런 효과가 같은 학급(학년)에 배정된 또래들과의 '상대적 발달차'와 '절대적 성숙차' 중 어떤 것으로부터 더 많이 기인하는지이다. 유관 연구들은 이른 출생월의 우위효과가 '절대적 성숙 효과'에 더 크게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한다. 이는 한 아동이 형식교육을 한 해 일찍 시작하는 것보다 일정한 수준의 절대적 성숙에 이르렀을 때 시작하는 것이 만족스러운 초기 수행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루어나갈 가능성이 향상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초등입학에 적정한 절대적 성숙 수준에 도달하는 때가 언제인지 궁금해진다.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없다. 그러나, 선행 연구들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영유아기 동안에는 빨리 입학할수록 불리하다는 것이다. 만 6세에 형식교육(0학년)을 시작하는 덴마크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출생월의 우위효과를 연구한 스탠포드 대학교 Thomas Dee 교수는 형식교육을 한 해 늦게 시작하는 것이 아동의 자기조절력 향상에 유의한 효과를 가져오고 4년제 대학 및 명문대 진학률에도 유의한 긍정적 효과가 있었음을 보고하며, 질 높은 놀이중심 유아교육을 통해 자기조절력을 충분히 함양하고 난 후 형식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한 접근이라고 제안한다.
◇ 진정한 인생초기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유아교육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답이다!
질 높은 유아교육 프로그램의 제공이 사회 전반에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효과에 주목한 해외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유아교육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도 이에 발맞추어 이미 2000년대 후반부터 유아교육 체제를 선진화하고 재정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공공성을 강화해왔다. 따라서, 국내 유아교육 발전의 흐름과 정책적 연속성을 거스르며, 개개 유아의 잠재성 실현을 방해하고 교육 성취상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입학연령 하향화 정책은 논의의 가치가 없다. 우리 사회의 모든 어린이가 행복하고 건강하며 유능한 인재로 성장하길 원한다면, 만 5세 초등취학 정책은 잊고, 모두의 지혜를 모아 지금까지 잘 다져온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고, 유아교육 내 격차를 유발하는 요인들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 하겠다.
*매튜효과(마태효과)는 성서 '마태복음' 중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구절에서 그 명칭이 유래하였으며, 부나 명성에 있어서 부유한(유명한) 개인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유명해지고) 가난한(무명의) 개인은 점점 더 가난(무명)에 시달리게 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의미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출생월이 빠른 개인들이 인생 성취에 있어서 누리게 되는 누적적 우위 현상을 출생월의 매튜효과라 명명하게 되었다.
*이 글은 한국유아교육학회 홍보부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차기주 가천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교수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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