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티그라이’ 출신 집단학살 증언 나와

박병수 2022. 12. 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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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의 암하라 지역 민병대가 1월 25일 성조지 교회에서 종교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내전이 끝나지 않은 에티오피아에서 반군 주축 세력인 티그라이 출신 인사들이 집단 학살당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해 11월 에티오피아 남부지역의 미라브 아바야 근처 집단 수용소에 갇혀 있던 티그라이 출신 83명이 살해당했으며, 당시 실종된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이들도 몇십명에 이른다고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신문은 당시 수용소에 있던 재소자와 병원 관계자, 지역 주민 26명을 인터뷰하고 위성 사진과 소셜미디어 기록, 의료 기록 등을 확인해 이렇게 보도했다.

살해된 재소자들은 모두 티그라이족이다. 티그라이족은 에티오피아 80여 부족 중 하나로 북부 티그라이주에 많이 산다. 티그라이족은 1990년대 사회주의 정부 전복 이후 에티오피아 정부와 군의 요직을 장악한 부족이 됐으나 2018년 아비 아머드 총리 집권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아비 총리는 집권 뒤 정부 요직에서 티그라이족 무장단체인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 인사들을 내쫓으며 정치 개혁에 나섰다. 아비 정부와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 사이 갈등은 2020년 11월 내전으로 번졌다. 내전이 일어나자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은 자신들의 세력권인 티그라이 지역의 행정기관과 군 부대를 접수했고, 아비 총리 정부는 티그라이 지역 외 군대와 정부기관에서 일하던 티그라이 출신 인사들을 모두 체포해 가뒀다.

미라브 아바야 수용소는 이렇게 생겨난 임시수용소 중 하나로, 내전이 일어나기 전 에티오피아군에서 복무했던 티그라이 출신 인사 2000~2500명이 갇혀 있었다. 집단학살이 일어난 지난해 11월은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이 수도 아디스 아바바를 향해 진격하던 때였다. 두려움과 보복 심리 탓에 재소자 학살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재소자들은 내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이지만 티그라이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다.

학살은 잔혹했다. 에티오피아군 공병대 소령 출신 재소자는 밤에 허락 없이 화장실에 갔다는 이유로 맞아 숨졌다. 며칠 뒤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이 수도로 진격하면서 주민을 살상하고 성폭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용소 공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경비병들은 어느 날 낮에 햇볕을 쬐고 있는 재소자들에게 총격을 가해 학살했다. 모든 경비병이 학살에 가담한 것은 아니다. 학살에 나선 경비병의 무장을 해제하려고 한 경비병도 있었다.

총 소리가 들리자 몇몇 재소자는 있는 힘을 다해 숲으로 달아났다. 한 시간 넘게 달려 지역 주민을 만난 재소자는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은 “너희 티그라이족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며 흉기와 둔기를 휘두르는 바람에 몇몇이 맞아 죽었다. 미라브 아바야 도시의 거리에서는 확성기를 단 차량이 “수용소 탈주자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소리치고 다녔다. 주민 한 사람은 “탈주자들이 폭행을 당해 피를 흘리며 죽는 것을 봤지만 너무 무서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도 어렵게 살아남은 티그라이 출신 재소자들은 주변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한 병원 담당자는 19명이 총상을 입고 입원해 15명이 다음날 퇴원했다며, 이들은 모두 경찰의 감시를 받았으며 치료가 끝나지 않았지만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담당자는 2명이 병원에서 숨을 거뒀고 4명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비극이 벌어진 곳은 미라브 아바야 한 곳만이 아니다. 동부 도시 지그지가에 있는 가르바사 훈련소와 13사단 본부에서도 비슷한 학살 현장을 봤다는 목격자들이 나오고 있다. 또 남부 도시 하와사 근처의 원도티카 수용소와 토가 수용소, 디데사의 남부지역에 있는 수용소, 남부의 빌라테 훈련소 등 적어도 7곳에서 학살이 벌어졌다는 증언이 나온다.

에티오피아 중앙정부가 티그라이족 학살을 계획하고 집행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일부 수용소에서는 에티오피아군 장교가 살인을 명령하거나 적어도 묵인했다. 또 아무도 학살에 참여한 이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미라브 아바야에서만 유일하게 에티오피아군 장교가 나서 집단학살을 중단시켰다.

이런 비극에 대해 에티오피아군 대변인 게트넷 아다네 소령은 바빠서 논평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으며, 에티오피아 정부와 총리실 대변인은 논평 요청에 답변하지 않았다. 에티오피아 인권위원회의 다니엘 베켈레 위원장은 사건에 대해 알고 조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정부군과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은 지난달 교전 2년 만에 휴전에 합의한 뒤 구체적인 평화교섭을 벌이고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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