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룹’ 부모는 자식의 거울..가장 바람직한 슈룹은 ‘진실’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2. 12. 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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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임화령(김혜수 분)은 말했다. “엄마라 해서, 어른이라 해서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앞서 걷는 이가 아니라, 먼저 가본 길을 알려주는 이다.”

tvN 토일드라마 ‘슈룹’이 4일 종영했다. 방영내내 장안의 화제였고 당연히 시청층의 호응도 상당했다. 결국 최종회 시청률이 수도권 가구 기준 평균 18.2%, 최고 20.1%, 전국 가구 기준도 평균 16.9%, 최고 18.8%를 기록했다.

개인적으로도 재미와 교훈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수작이란 생각이다. 그러면서 화령의 표현대로 “먼저 가본 길을 알려주는 이”가 부모라면 ‘자식에게 부모는 역사와 같은 존재여야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조선은 ‘기록의 나라’다. 정족산본 조선왕조실록만 해도 총 1707권 1181책에 달한다. 권수나 책수로는 동시대 중국의 명청실록에 비해 적지만, 내용의 풍부함과 상세한 묘사 등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인 편년체 역사서로 평가받는다.

‘권수 자체는 적지만 글자 수는 조선왕조실록이 훨씬 더 많다. 대명실록은 2909권이지만 글자는 1600만 자 정도로, 4965만 자인 조선왕조실록의 1/3에 불과하다.’(위키백과)

이 방대한 양을 만들다보니 조선의 임금들에게 가장 지긋지긋한 존재는 바로 사관일 수 밖에 없다. 가는 곳 마다 쫓아다니며 시시콜콜 모든 것을 기록한다. 왕이 쓰지말라 해도 기어코 써버린다.

드라마 속에도 나타난다. 사관 박종훈을 대동한 선왕은 어의 유상욱(권해효 분)의 태인세자 검안 보고를 받는다. 유상욱이 “입안에 발반이 있고 목은 심하게 부었으며 가슴의 상처는 음독으로 심하게 괴로워했다는 증거로 법물에 반응하지 않는 독이 쓰였다”고 말하자 선왕은 “확실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이다. 세자의 사인은 혈허궐이다.”며 “방금 이 자리서 있었던 일은 기록치 말라.”고 명한다. 하지만 박종훈은 끝내 그 말까지 가장사초에 기록했다.

실록의 사례도 있다. 태종 4년(1404) 2월 8일 4번째 기사를 보자.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다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니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親御弓矢, 馳馬射獐, 因馬仆而墜, 不傷。 顧左右曰: “勿令史官知之”)

말등에서 자란 동북면 사나이로서 말에서 떨어졌으니 얼마나 창피했을까. 그런 감정 아랑곳없이 사관은 문자로 태종의 망신을 영구보존 해버렸다.

남이 쓴 내 얘기는 얼마나 궁금했을까. 태조 이성계는 1398년 “실록을 가져오라”고 명한다. 신하들이 반발한다. “군주는 자손들의 모범이온데 전하께서 당시의 역사를 열람하시면 대를 이은 임금들도 선왕이 했던 일이라 구실삼아 실록을 보려할 터인데 어떤 사신이 사실대로 기록하는 붓을 잡겠습니까?” 이 내용 역시 조선왕조실록 태조 7년 6월 12일 기사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조선이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 얼마나 진심이었는 지를 보여준다.

4일 방송된 ‘슈룹’ 최종회에서 중전 화령에게 설득당한 이호(최원영 분)는 실록청을 설치하여 태인세자와 세자(배인혁 분)의 죽음을 혈허궐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독살당한 것으로 실록을 수정케 명한다.

그 명을 안타까이 여긴 박경우(김승수 분)가 “전하의 20년 치세가 폄훼될까 저어된다”며 덮고 갈 것을 권한다. 이호는 말한다. “그리하면 내 마음도 덮어지겠는가. 역사가 과인을 평가할 것이다.”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 이호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태인세자의 죽음을 밝혀야 한다는 화령의 주청에 “태인세자가 살해됐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내가 보위에 오른 것이 역모라는 말입니다.”고 호소한다.

자신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해야 되고 자식으로서 생모인 대비(김해숙 분)를 역모로 치죄해야 되는 처지가 된다.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20년 세월과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성군이 되려 노력해온 같은 세월을 일시에 무위로 돌려야 한다.

이호의 처지를 화령이라고 왜 몰랐을까? 그럼에도 강권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진실을 외면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지우는 법이 없다. 수정을 하게 돼도 원래 기록 역시 온전히 남긴다. 이호가 명한 실록청에서도 ‘태인세자는 독살됐다’고 내용을 수정하면서 동시에 ‘태인세자는 혈허궐로 죽었다’는 원래 내용도 그대로 살려둘 것이다. ‘보는 사람’ 즉 후대가 온전히 평가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역사는 과거 인류가 획득한 노하우와 과오를 기록함으로써 후대의 선택에 도움을 주는 기능을 하기 마련이다. 화령이 말한 ‘먼저 가본 길을 소상히 알려주는 부모’처럼.

후대의 선택을 강요하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다만 보여주고 알려줄 뿐 자식의 선택을 강요하는 부모 역시 부모자격이 없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 하여 자치통감·동국통감에서 보듯 역사서에 ‘거울 감(鑑)’을 쓰곤 했다. 마찬가지로 부모에 관해서도 ‘자식의 거울’이란 표현을 애용하곤 한다. 그 거울은 항상 깨끗이 닦여져 온전한 모습을 오롯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씌워줄 가장 바람직한 ‘슈룹’은 ‘진실이란 이름의 슈룹’이라는 것이 드라마가 종영하며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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