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본 것을 다시 볼 수 없는 법이다

한겨레 2022. 12. 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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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사진 픽사베이

# 머리가 맑지 못한 며칠. 사람이 생각 없이 산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인생 참 쉽고 편하겠다는, 하지만 스스로 죽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혼자 곱씹으며 반나절을 보낸다. 재미있고 유익한(?) 하루.

# 오늘 옮긴 몽테뉴의 한줄.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자유로워지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 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다.”

# 잠과 현실 사이에서 들리는 한마디. …눈을 뜨되 아무것도 보지 마라. 만상과 함께, 그것들을 뒤에서 품은 백광(白光·코로나)이 보일 것이다. 백광도 보지 마라. 보면 사라진다. 눈을 떠서 시야에 들어오는 어떤 것도 보지 마라. 이게 가난한 눈이다. 가난한 눈은 눈에 들어오는 만상을 보면서 어떤 것도 붙잡지 않는다. 그래서 이르기를, 보려는 마음 없이 보면 묘(妙)가 보이고 보려는 마음으로 보면 거죽이 보인다(常無慾而觀其妙 常有慾而觀其徼―老子)고 했다. 답은 간단하다. 지금 하는 일을 고마운 마음으로 즐겨 하되 항상 너와 세상을 있게 한 조물주를 기억해라. 절로 자유롭고 겸허해질 것이다.

# 소치(小痴) 허련(許鍊)의 노송도(老松圖) 늙은 소나무를 꿈에 본다. 용처럼 굼틀거리며 옆으로 길게 가지를 벋은 소나무 아래 흰 도복 차림의 늙은이가 밥집을 차렸다.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사진도 찍고 밥도 먹고 어수선하다. 도복 차림의 늙은이는 밥보다 밥에 대한 본인의 철학이 더 중요한 듯, 말이 많다. 늙은 소나무가 속삭여 말한다. “시끄러운 건 언제나 인간들이다. 보라, 저 가녀린 풀잎과 내가 어떻게 같은지…. 겉모양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다. 나, 한 순간도 오래 살려고 애쓰지 않았다.”

# 깨어나면서 드는 생각. ―과거의 가치는 그것이 주는 교훈으로 더 나은 오늘을 빚어내는 데 있다. 아픈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건 멍청함이고, 값진 교훈을 얻지 못하는 건 어리석음이다. “아버지 나라는 자기 밭에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과 같다. 그가 죽었을 때 그는 그것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아들도 그것에 대하여 몰랐다. 그가 밭을 물려받고 그것을 팔았다. 산 사람이 밭을 일구다가 보물을 발견했고, 누구든지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이자 받고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도마복음)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밭에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 줄 모르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괜한 고생들인가? 뒤통수에 망치 같은 한마디. …됐다, 너나 그러지 마라!

관옥 이현주 목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순천사랑어린학교 모임. 순천사랑어린학교 제공

# 아프고 작은 경험을 통해서 따끔한 한마디 듣는다. “착각 마라. 네가 지금 누구를 가르치겠다고 언감생심(焉敢生心)이냐?” 잔뜩 풀이 죽어 있는데 멀리 인도에서 더 마더가 다독여주신다. “네 허물이나 단점을 발견하는 것은 알고 보면 하나의 횡재란다. 빛의 홍수가 쏟아져 내려 네 길을 가로막던 바윗돌 하나 멀리 옮겨놓는 것과 같거든.”

# ‘예수에게 도를 묻다.’ 두 번째 정독(精讀). 오직 선생님께 감사드릴 뿐. 한마디 기도로 마감한다. “선생님, 저도 당신처럼 하늘 아버지 뜻이 저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그밖에는 다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 일본의 스즈키가 쓴 <스베덴보리>를 읽는다. 그가 천국과 지옥을 순방하고 과학과 생물학에 엄청난 공적을 남긴 인류 3대 천재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다. 그가 그럴 수 있어서 그랬고 그게 자기 길이니 그 길을 갔던 거다. 스베덴보리의 말년 친구 존 크리스천 쿠노의 증언을 읽는데 코허리가 시큰하다. “그는 소박한 도시 사람들 집에 하숙을 정하고 그들과 함께 살았다. 나는 하숙집 여주인에게 노신사가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이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가 ‘그분은 뭘 요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아침에 화덕에 불 피우는 일 외에 하인들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낮 동안에는 그분이 계속 불을 지폈고 잠자리에 들 때는 불로 인해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했지요. 그분은 혼자 옷을 입고 벗고 모든 일을 스스로 하셔서 집안에 누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예요. 나는 그분이 여생을 우리와 함께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철학과 신학과 과학이 이런 모습으로 표출되었다는 사실이 오늘 아침 먼 동방의 한 늙은이를 감동시킨다.

# 아침 8시, 뒤뜰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짜이 한잔씩 나누고 돌아가며 소회(所懷)를 말한다. 은은하고 다사로운 법우(法雨)에 몸이 젖는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龜鑑)을 읽는다. “운하적인(云何賊人)이 가아의복(假我衣服)하고 패판여래(稗販如來)하여 조종종업(造種種業)인고.”(62) “어찌하여 도적들이 내 옷 빌려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업들을 짓고 있는 거냐?” 실인즉 부처가 도적으로 세상에 와서 당신 옷 빌려 입고 온갖 몹쓸 짓 하는 것임을 큰스님이 과연 몰랐을까?

사진 픽사베이

# “머리 세어도 마음 세지 않는다고 옛 사람 일찍이 말하더니 방금 닭 울음소리 하나에 사나이 일을 마쳤도다.” 휴정(休靜) 스님 나이 삼십 어간에 낮닭 울음소리 듣고 읊었다는 이른바 오도송(悟道頌)이다. 모(某)한테도 그런 게 있었던가? 돌아보니 병들어 부실한 몸으로 장차 어찌 살 것인가 절망 근심하던 중에 부산 육군병원 뒤뜰 진홍빛 놀 속에서, 오도(悟道)라 할 건 없겠으나, 비슷한 소리 하나 들은 것 같기는 하다. “아무야, 네 몸이 네 것이냐? 네 삶이 네 것이냐? 네 것 아닌 것으로 무슨 근심이 그리도 태산이냐?” 아무의 한평생, 그날 그 소리 임자 찾아 우여곡절 삼만 삼천리였던가? 비틀걸음 한발짝이었던가? …휴정(休靜)이 당신 제자 아무에게 보낸 편지의 일절(一節). “공자니 부처니 허무 밖에 부수고 죽음이니 삶이니 적막 속에 차버리고 이십년 세월 아무 한 일 없이 구름 가에서 길게 주인공을 부르는구나.”

# 도마복음 읽기. “자기 땅 아닌 땅에서 사는 아이들….” 이게 예수가 본 당신 제자들이다. 아이들은 자라야 한다. 유치한 젖먹이에서 노숙(老熟)한 젖먹이로. …니체가 말했다지. “어떤 사람은 사후(死後)에 태어난다.” 예수나 고흐가 그런 사람?

# 어수선하고 역겹기까지 한 꿈이 이어지다가 영문으로 된 문장 하나 읽는다. “You can’t see what you saw yesterday.”(너는 네가 어제 본 것을 볼 수 없다) 꿈속에서 생각한다, 옳은 말씀! 어제 본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없는 것을 누가 무슨 수로 볼 것인가. 이 자명(自明)한 사실 하나 만나려고 그토록 꿈이 어수선했던가? 뭐, 주변 상황이야 아무랬으면 어떠랴. 마침내 깨친 진실 하나 있다면!

# 꿈에 성경을 읽는다. ―예수께서 이르셨다. “상대가 누구든 무엇이든 그에게 너를 온전히 내어주어 그와 하나 되어라. 그렇게 사랑이 되어라. 그랬다가 너와 네 인생 망가져도 괜찮다. 하늘이 무너져도 사랑은 망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읽는 바이블에는 없는 구절이지만 이리로 우리를 이끌고자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 아니신가? 그렇다. 그분 말씀이 옳다. 죽는 게 사는 거다. 머릿속 관념이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다.

글 관옥 이현주 목사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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