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세계 속 우리 문화재>우리 문화재 지킨 벽안의 두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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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2월, 무장한 일본인 인부 130여 명이 경기 개풍군(현 북한 개성시) 경천사 터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개성 주민들을 위협하면서 10층 석탑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 국보인 경천사십층석탑(고려·1348) 약탈 사건이다.
두 이방인의 노력 덕분에 일본 내에서도 비난 여론이 일었고, 1918년 다나카는 결국 이 탑을 한반도로 반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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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서원대 교수
1907년 2월, 무장한 일본인 인부 130여 명이 경기 개풍군(현 북한 개성시) 경천사 터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개성 주민들을 위협하면서 10층 석탑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해체한 부재들을 달구지 10여 대에 옮겨 싣고 개성역으로 향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 국보인 경천사십층석탑(고려·1348) 약탈 사건이다. 약탈의 배후는 일본의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야키(田中光顯)였다. 그는 고종 황제가 이 탑을 하사했다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탑을 도쿄(東京)로 약탈해간 것이다.
이 만행을 폭로한 사람은 벽안(碧眼)의 두 이방인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조선의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사진 왼쪽·Ernest Bethell, 1872∼1909, 배설선생기념사업회)은 1907년 3월 대한매일신보 영문판 ‘Korea Daily News’에 이 사실을 알리고 반환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선교사이자 고종 황제의 외교 조언자로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오른쪽·Homer Hulbert, 1863∼1949, 국가보훈처)도 발 벗고 나섰다. 그는 일본의 영자 신문 ‘Japan Mail’ ‘Japan Chronicle’과 미국의 ‘New York Post’에 약탈 사실을 폭로했다. 두 이방인의 노력 덕분에 일본 내에서도 비난 여론이 일었고, 1918년 다나카는 결국 이 탑을 한반도로 반환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실을 오랫동안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10년 동안의 해체·보수작업을 마치고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이 탑을 다시 세울 무렵, 성찰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힘입어 경천사십층석탑 안내문에는 ‘영국 언론인 E.베델과 미국 언론인 H.헐버트 등의 노력으로 1918년에 반환되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두 사람은 현재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나란히 안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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