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연금개혁 일정, 우려부터 앞선다

입력 2022. 12. 5. 11:25 수정 2022. 12. 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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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SOCIETY] 연금개혁, 실질적 국민 참여가 핵심이다

[이재섭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연금개혁 논의를 제대로 하겠다고 한다. 공적연금개혁 논의 기구가 지난 7월 국회에 설치된 후 4개월 만인 지난달 16일에 연 두 번째 회의에서 나온 얘기다. 이번 회의에서는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에 민간자문위원회를 발족하는 안과 연금개혁일정 확정 방안이 제시됐다.

그런데 이번 연금개혁특별위원회 회의 결과를 보면 아쉬움이 크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정치권에 특단의 인식변화가 없다면 이번 연금개혁도 부실 개혁으로 귀결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조급한 개혁 일정은 부실한 결과만 초래

가장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조급한 연금개혁의 일정이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민간자문위원회에 회의로부터 겨우 한 달여 후인 금년 12월 말까지 큰 틀의 연금개혁 방향을, 두 달째인 내년 1월 말까지 연금개혁안을 만들어 특위에 제출하도록 하는 일정을 잡았다. 15명으로 구성할 이해관계자 기구가 민간자문위원회가 제출하는 복수의 연금개혁 안을 논의하고, 500명으로 구성할 국민의견수렴기구의 의견수렴을 거치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연금개혁안을 확정하고 내년 안에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입장이다.

돌아보면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7월에 발족한 이래 3개월만에야 겨우 첫 회의를 열어 위원장과 여야 간사를 선임했다. 4개월이 지난 11월에야 두 번째 회의를 열어 민간자문위원회구성과 함께 연금개혁 일정을 겨우 제시했다. 연금개혁 서론을 쓰는 데만 4개월이 걸렸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연금개혁 본론은 두 달 만에 써 내라고 주문했다. 이런 촉박한 일정을 정했다는 뜻은 결국 국회가 민간자문위에 이미 과거에 만들어진 개혁안을 주어진 형식에만 맞춰 재조합하여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과 같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이미 만들어 놓은 복수의 연금개혁안을 민간자문위원회라는 통로를 거쳐 다시 사용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치권이 이번 개혁과정에 포함하겠다고 약속한 공적연금개혁 대상의 광대한 범위와, 관련된 부처의 다양함과, 이해관계의 첨예함과, 다뤄야할 이슈의 막중함을 어떻게 2개월 만에 소화해 제대로 된 개혁안을 도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민연금제도 하나만을 가지고 개혁논의를 했지만, 2년 이상의 기간 동안 논의하고도 결국 개혁을 마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물론, 특수직역연금들인 공무원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 군인연금까지 개혁 논의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개혁 논의 유형도 보험료와 급여수준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은 물론, 특수직역연금과 국민연금간의 연금차별 논란을 불식할 수평적 구조개혁, 기초연금과 국민연금간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직적 구조개혁 논의까지 포함할 정도로 다양하다. 그래야만 하는 건 맞다.

정치권은 그런 막중한 주제들과 이슈들을 빠짐없이 다루면서 2개월 만에 선진공적연금체계 개혁안을 내놓을 수 있다고 믿는가? 전임이 아닌 민간자문위원들이 모일 수 있는 물리적 시간조차도 형편없이 부족할 것이다. 이런 개혁 일정이라면 민간자문위원회는 결국 들러리 역할밖에 할 수 없다. 결국 국회가 이런 일정을 잡은 본뜻은 민간자문위원회의 개혁방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도 정치일정에 따라 여야 합의로 대충 연금개혁을 마무리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이 국회 개혁논의의 위험성이고 한계이다. 그런 개혁의 결과는 부실한 개혁으로 귀결될 것이고 그 부실개혁의 결과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노후빈곤은 계속되고 은퇴이후의 삶은 더욱 불안해질 것이다.

▲주호영 연금개혁특위 위원장이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위 2차 회의에서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 등 여당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 개혁기구의 구도는 재정안정화 개혁으로 쏠릴 가능성이 커

개혁기구인 연금개혁특별위원회와 그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계획을 보면 개혁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이미 여당이 세력의 우위를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적은 의석수에도 불구하고 여야 동수의 위원들로 구성된 데다 여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간자문위원회 역시 여야가 각각 추천한 공동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6명의 민간 연금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 이어 자문위원회에서도 정책논의와 결정과정에서 여당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여당의 정책 정강은 기본적으로 재정안정화로 볼 수 있다. 재정안정화는 급여삭감으로 공적연금의 지출규모를 최소화하고, 보험료 인상 등으로 공적연금 지출에 일반재정투입 규모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여당이 추천한 민간자원위원장도 여당과 정책기조를 같이하고 재정안정화를 우선시 하는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자문위원회 구성의 투명성과 공정성도 확보되지 않은 것 같다. 민간자문위원회의 위원장과 자문위원들이 어떤 규정에 의해, 어떤 기준과 절차에 의해 선정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개혁기구를 투명하게 구성하는 것이 공정한 개혁논의의 출발점인데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두 분의 자문위원장들은 공적연금 개혁의 소임을 맡을 역량과 인품을 충분히 갖춘 연금학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과 위원들이 소신을 갖고 연금개혁안을 만들고 최선을 다해 국민을 설득할 기회를 보장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런 보장이 없다면 결국 힘의 우위에 있는 세력에 의해 개혁이 주도될 것이다. 소득보장이 아닌 재정안정화 개혁으로 경도될 우려가 크다.

졸속 개혁은 결국 정치야합으로 기울 것

이번 연금개혁에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연금개혁특별위원회와 연금전문가로 구성된 민간자문위원회 외에 15명으로 이해관계자기구와 500명으로 국민의견수렴기구도 동참한다. 그러나 기울어진 자문위원회 구성·운영과 조급한 개혁일정 설정 등에 비춰볼 때,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공정한 이해관계자기구 구성과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또한 제대로 된 국민 의견 수렴이 이뤄질 지도 우려된다. 공적연금제도의 원리와 사실관계의 정확한 이해를 위한 사회적 학습과정을 거친 후에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왜곡 없는 의견 수렴이 가능하다. 정치 인물 선호도 조사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의 운영원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단순히 저축한 돈을 돌려받는 것으로 공적연금을 오해하는 국민이 대부분인 실정이다. 또한 연금기금이 고갈되면 국민연금을 받지 못한다고 오해하여 불안해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여론이 만든 부끄러운 민낯이다.

따라서 시간을 두고 큰 공을 들여 다양한 절차와 방법으로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이 이루어지게끔 정부가 나서서 노력해야 한다. 깊이 있는 숙의토론(deliberative discussions)이 다양한 차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국민 참여와 숙의토론이 보장되지 않은 채 시도되는 연금개혁은 자칫 정치야합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 선례를 우리는 2007년도에 끝난 국민연금개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07년은 국회에서 정당이 주도해 국민연금개혁을 추진하고 마무리한 대표적 해이다. 당시는 국민의 연금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도 훨씬 낮았다. 또한 전통적으로 국가복지를 옹호하는 세력인 노동조합조차 연금개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산업별 노조를 기반으로 한 서구 복지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노동조합들은 기업별 노조로 구성되어 기업복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국가복지인 연금제도 개혁에는 무관심했다. 제대로 조직된 연금단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는 그나마 공적연금제도에 문제의식을 가지진 시민단체들을 연금개혁 논의구조에서 배제한 채, 거대 여야 정당은 각자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연금개혁을 이용하였다. 연금제도와 관련이 없는 정책 간 교환(policy trade-off)을 위해 밀실야합도 불사하였다.

이로써 국민의 소중한 노후의 삶은 노후빈곤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 노인빈곤의 책임 중 큰 부분이 2007년의 국회에 의한 정당 간 야합으로 인한 급격한 연금 삭감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국회는 소득대체율(자신이 근로 시 받던 봉급대비 연금의 비율) 5% 밖에 안 되는 기초노령연금을 하위 소득 70%의 노인에게 지급하도록 하였다. 그 대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60%에서 연차적으로 40%까지 삭감하는 조치를 전격 시행하였다.

국회는 법 개정의 최종적 권한을 갖기에 국회가 연금개혁기구를 설치해 논의하면, 여야의 합의로 신속히 입법을 하면서도 상당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해관계집단 대표들과 국민의 참여에 의한 숙의토론이 생략된 채 진행되는 국회 중심의 연금개혁은 정치일정과 정당의 이해관계에 휩쓸려 자칫 정치야합으로 졸속 진행될 우려가 있다.

더욱이 지금의 연금개혁은 기술적으로도 어렵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합의하기 어려운 이슈들이 무수하다는 점에서도 쉽지 않다. 따라서 그만큼 신중하고 투명하며 참여적인 논의구조를 만들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정성 있게 개혁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각 정당은 연금개혁의 진정성을 차기 총선에서 평가받아야

지금은 일단 국회에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음으로 이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와 민간자문위원회는 앞으로 이해관계자기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구성되고, 국민 참여와 숙의토론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지나치게 조급하게 설정된 연금개혁 일정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개혁일정을 다시 조율하여 늦추고, 개혁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고, 좋은 대안을 만드는 데는 다수당인 야당의 역할과 책임이 크다. 이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은 각 정당의 연금개혁에 대한 진정성과 노력을 차기 총선에서 표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들이 정략적 이해에 휩쓸리지 않고 국민의 노후 삶을 걱정하고 헌신하는 용기를 기대한다. 국민들도 이 어렵고 지난한 길을 함께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재섭 교수는 영국 University of Kent에서 사회정책을 전공한 공적연금전문가다.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공적연금수급자유니온 공동대표이며, 공무원연금공단 공무원연금연구소장을 지냈다.

ⓒ이재섭 서울신학대 교수

[이재섭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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