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에서 불필요한 루틴은 없다!

방민준 2022. 12. 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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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리디아 고. 사진제공=Getty Images_LPGA

 



 



[골프한국] 사람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골프 버릇이 있다. 셋업을 취하기 전, 셋업을 할 때, 스윙할 때, 샷을 날리고 나서, 미스 샷이나 기막힌 샷을 날렸을 때 등 플레이를 하면서 남이 흉내 내기 어려운 나만의 독특한 동작을 한다. 영어로 '루틴(routine)'이라고 한다.



넓은 의미의 루틴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습관이나 과정을 의미하지만 골프에선 워밍업 단계, 라운드 직전, 샷 전후 반드시 거치는 나만의 절차 또는 과정을 뜻한다.



 



합리적인 루틴뿐만 아니라 언뜻 불필요해 보이는 루틴도 안정된 샷을 위해선 꼭 필요한 것이다. 특히 샷을 날리기 전의 프리 샷 루틴(pre-shot routine)은 경기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소림사에서 일정한 단계의 무술수련을 증명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많은 관문처럼 이 과정을 거쳐야만 자신이 마음먹은 샷을 날릴 수 있다. 이 동작을 생략하면 어딘가 어색하고 자신감이 없어져 결국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징크스가 되고 만다.



 



세베 바예스테로스(1957~2011·유럽투어 50승 PGA투어 9승 등 프로통산 91승)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골퍼였던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56·유럽투어 21승 PGA투어 6승)은 많은 시간을 들여 셋업을 한 뒤 샷을 날리기 전까지 수없이 목표물과 볼을 번갈아 보는 버릇이 있었다. 보통 선수들은 한두 번 쳐다보곤 샷을 날리기 마련인데 올라사발은 고개를 돌리는 동작을 7~8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샷을 날렸다. 



 



한 친구가 그의 이 같은 습관을 꼬집었다.
"자네가 나보다 먼저 볼을 칠 땐 잠깐 눈을 붙여도 되겠더라구."
올라사발이 대답했다.
"미안하네. 하지만 그 동작을 하지 말라는 건 골프를 그만두라는 것이나 같은 말일세."
올라사발의 깔끔한 샷은 군더더기처럼 보이는 이 동작을 거친 뒤에 나오는 것이다. 나중엔 그도 셋업한 뒤 목표지점을 바라보는 횟수를 상당히 줄여 머뭇거림 없는 샷을 날렸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의 리디아 고도 스윙을 하기 직전 클럽을 직각으로 들어 올리는 동작을 해본 뒤 샷을 날린다. 정상적인 스윙궤도를 벗어난 그 같은 루틴은 스윙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본인은 꼭 그 과정을 거쳐야 정상적인 샷을 날릴 수 있다고 고백했다.



 



"골프는 어떻게 아름다운 스윙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같은 스윙을 실수 없이 되풀이할 수 있느냐의 게임이다."
리 트레비노(83)의 명언이다. PGA투어 29승을 포함해 프로 통산 92승을 올린 그의 스윙은 정통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시가를 물고는 튀어나온 배를 주체못하는 스윙으로 프로 통산 92승을 올렸으니 불가사의에 가깝다. 



 



세베 바예스테로스의 골프 스윙. 1987년 때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황제 잭 니클라우스는 그를 두고 "벤 호건과 함께 골프 역사상 가장 볼을 잘 치는 사람"이라고 극찬했고 닉 프라이스는 "역사상 최고의 골프 1인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골프 팬들에겐 그가 출전하지 않는 골프대회란 맥주가 없는 파티나 마찬가지라고까지 인식되었다. 멋진 스윙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에도 웃음과 농담을 잃지 않고 철저하게 골프 그 자체를 즐기는 호방한 품성이 바로 그의 골프 루틴이었던 것 같다.



 



자기 나름의 습벽은 때로 자신에게 자신감과 안정감을 심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남 보기에 흉하다고 이미 굳어진 골프 버릇을 억지로 고치려 했다간 도리어 엉뚱한 화를 당할 수 있다. 골프를 하면서 굳어진 별난 습벽을 굳이 버리려 애쓸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나 동기가 아니다. 마음이 만족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골프에서도 자신이 만족한다면 아무리 보기 흉한 습벽이라도 필요한 것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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