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5개월새 전세 '15억→6억'… 이것이 헬(Hell)

김노향 기자 2022. 12. 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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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 - "이자 내드릴게요"… '귀하신 몸' 세입자 모시기 전쟁] (2) 4년 만에 제자리, '헬리오시티' 전셋값

[편집자주]속절없는 전셋값 폭락에 '세입자 모시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불과 2년 전 체결했던 고액의 보증금을 지키기는커녕 폭락한 금액만큼 전세금 중 적잖은 금액을 세입자에 반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보증금 일부를 돌려주고도 모자라 매달 일정액을 세입자에 줘야 하는 역월세까지 발생하고 있다. 신규 입주단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몇 달 새 전세 시세가 30~40% 이상 폭락했고 그마저도 세입자를 구하기도 힘들다. 3~4년 전 분양 당시만 해도 고액의 전세 보증금을 통해 손쉬운 갭투자를 노렸던 집주인들은 입주 시점에 날벼락을 맞았다. 심지어 분양가보다 높은 전세 보증금까지 기대했었지만 상황이 180도 달라져 혹을 붙인 셈이 됐다. 콧대가 높아진 세입자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서울 송파구 9510가구 대단지 헬리오시티 아파트 내 상가의 공인중개사사무소들 /사진=김노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전셋값 폭락 시대… 공포에 떠는 갭투자자
(2) [르포] 5개월새 전세 '15억→6억'… 이것이 헬(Hell)
(3) [르포] 검단 왕릉뷰 아파트 1억원대 전세 등장… 함정은?


아파트단지 입구의 상가동 양쪽이 공인중개사사무소로 꽉 찬 복도 안. 평일 낮시간임에도 사무실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집을 알아보러 온 매수자들은 아닌 듯 보였다. 단지 안팎에 어림잡아 100개 이상 돼 보이는 공인중개사사무소 유리벽 위로 '초급매' '급급매' '급전세' '급월세' 등의 문구를 강조한 매물 광고가 잔뜩 붙어있어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를 실감케 했다. 심지어 몇몇 사무실은 간판만 남긴 채 사람과 집기가 사라져 폐업한 것으로 보였다.

84개동 9510가구의 매머드급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 대단지 '헬리오시티'가 입주 4년 만에 다시 역전세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송파구 인근의 입주 대기 수요를 빨아들여 '블랙홀'로 불리던 헬리오시티는 부동산가격이 고점이던 지난해 11월 84㎡(이하 전용면적) 실거래가가 24억5000만원(17층)에 계약됐다가 취소됐다. 이보다 한 달 전인 같은 해 10월 23억8000만원(29층)에 실거래 신고됐다.

하지만 가장 최근 실거래가는 지난 11월24일 신고된 17억6000만원(12층). 1년 만에 6억원 이상 하락한 셈이다. 실거래가 하락은 전·월세 시세 하락으로 이어져 소위 '영끌'(영혼 끌어모은 대출) 투자를 한 '갭투자'(매매가-전세가 차액만 내고 세입자가 사는 집을 매수)일 경우 세입자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헬리오시티, 4년 전 역월세 재현되나


한국부동산원의 11월 셋째 주 아파트가격 주간 동향 조사에 따르면 송파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57% 하락해 서울 평균(-0.46%)보다 낙폭이 컸고 서울에서 가장 큰 하락률을 기록했다. 올 들어 10월까지 송파구 아파트값 누적 하락률은 -3.33%로 서초(-0.05%) 강남(-0.10%) 등보다 하락폭이 매우 컸다.

송파구의 하락폭이 유독 큰 이유는 대단지가 밀집해 있다는 점이 지목된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송파구 인구는 66만8261명으로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다. 송파구에는 3000가구 이상 대단지가 밀집해 있는데 이른바 '엘리트'로 불리는 잠실엘스(5678가구)·리센츠(5563가구)·트리지움(3696가구)의 가구 수만 1만5000가구에 달하고 헬리오시티(9510가구)와 파크리오(6864가구) 등을 합해 5개 단지만 3만여가구가 넘는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헬리오시티 84㎡ 분양가가 8억~9억원대였는데 입주 초기 전세 시세는 6억원대였다"면서 "4년 동안 매매가는 분양가 대비 세 배가량 올랐다가 다시 내려 두 배 수준이 됐지만 전세는 입주폭탄 때와 비슷한 가격으로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6월 최고 15억8000만원을 찍었던 헬리오시티 84㎡ 전세 실거래가는 11월 들어 6억원과 6억6100만원 등 두 건의 6억원대 계약이 신고됐다. 이 지역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통상 입주 3~4개월 전에 전·월세 매물이 나오는데 내년부터 아파트 신규 입주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6개월 전부터 미리 세입자를 구해놓으려는 임대인이 많이 있다"고 전했다.

입주 초기 발생했던 역월세 현상이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역월세 위험이 큰 곳은 대구와 세종, 인천 송도, 수원 영통 등"이라면서 "서울의 경우 역월세가 흔히 일어나진 않지만 헬리오시티 입주 초기 전셋값이 일시적으로 하락하면서 발생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아파트 /사진=김노향 기자


9500여가구 대단지 하루 임대 계약 2건… 중개업소 잇단 폐업


네이버부동산에 등록된 헬리오시티 확인매물(집주인 거래 의사를 확인 후 등록)만 11월30일 기준 전세 1609건, 월세 1135건 등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11월 한 달 간 신고된 임대차계약은 전세 39건, 월세 35건에 불과했다. 각각 하루 1건 정도의 임대거래가 이뤄진 셈이다. 헬리오시티 단지 내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사무실이 폐업한 곳도 있고 전기료와 난방비를 아끼려고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헬리오시티 단지 내 공인중개사사무소가 내놓은 84㎡ 급전세 매물 호가는 84㎡ 기준 8억~9억원이다. 8억원 매물엔 '최저가' 표시가 돼 있다. 전세 실거래가보다 2억원이나 높은 가격에 급전세 호가가 형성돼 있는 것은 갭투자가 원인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부동산플랫폼 '아실'(아파트 실거래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1년간 헬리오시티 전체 매매거래(40건) 중 15건(37.5%)이 갭투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근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전세금을 1억~2억원 정도 내리면 신규 세입자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갭투자자인 경우엔 신용대출마저 추가로 빌릴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니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줄 차액을 마련하지 못해 가격을 내리지 못하면서 거래가 더욱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이자비용이 급격히 늘면서 매도를 시도했다가 포기하면서 전세 매물만 늘어나는 측면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아파트값이 하락하면서 매매를 포기한 집주인들이 매물을 전세로 돌리는 경향이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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