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떨어지면 LH에 팔면 된다?… 분상제 아파트 ‘거주의무’ 허점 논란
정부가 ‘로또 분양’ 당첨자들의 이익환수를 막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 주택에 도입한 거주의무가 시장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의무거주기간을 채우지 못할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분양 원가로 집을 되팔아야하는데, 집값 하락기에 오히려 이 조항이 리스크 헤지(Hedge·회피) 수단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주택법을 개정하면서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단지에 입주할 경우 최소 2년~최대 5년까지 거주의무기간을 두기로 했다. 주택법에 따르면 거주의무기간은 택지 종류와 분양가격에 따라 달라지는데, 공공택지는 3~5년, 민간택지는 2~3년 거주해야 한다.
이 기간 안에 실거주를 더 하지 못하고 이주할 경우 LH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당 주택을 매입해야한다. 주택법 57조2에 따르면 LH는 입주자가 납부한 입주금과 그 입주금에 ‘은행법’에 따른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의 평균이자를 반영한 금액(매입비용)을 지불해야한다. LH는 이렇게 매입한 주택을 일반에 재분양한다.
당시 정부는 사유재산 및 거주이전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투기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법을 개정했다. 법개정 이후 입주자모집공고 승인을 신청한 둔촌주공아파트(올림픽파크포레), 장위4구역 재개발(장위자이 레디언트)는 각각 2년의 거주의무가 부여된다.
그러나 집값 하락기에 대비한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부동산 침체기로 돌입하면서 오히려 이 조항은 높은 분양가로 집을 매입한 사람들의 자산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생겼다. 물론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지역은 인근 집값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분양가보다 시세가 떨어지기 쉽지 않겠지만,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실제로 현재 일부 지역에 분상제가 적용되고 있는 은평구의 경우 금융위기 시절인 2011~2012년 집값 하락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했다. 입주물량이 몰렸던 은평뉴타운 일대에서는 계약률을 높이기 위해 2년간 전세로 거주한 후 분양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분양 조건부 전세’ 조건이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금리 인상으로 시중 은행의 정기예금 이자까지 증가하면서 LH가 중도퇴거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이자도 높아진 상황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지난 10월 시중은행의 1년만기 정기예금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4.49%다. 분양가 13억원인 둔촌주공 아파트 전용 84㎡를 분양받은 사람이 1년 거주 후 중도퇴거할 경우 LH는 예금이자 5837만원을 추가로 줘야 한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도 거주 의무 요건을 둘러싼 논란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 한 커뮤니티에서는 둔촌주공 입주자 모집 공고의 2년 실거주 요건을 캡처한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의 글쓴이는 거주의무를 위반할 경우 벌금을 최대 1000만원 내고 아파트를 LH에 분양가로 넘겨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을 두고 “1000만원으로 하락 리스크를 헤지하는 방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는 수도권에서 시세가 분양가보다 떨어질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10년 전에는 김포와 청라 등 수도권에서 시세보다 분양가가 떨어지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 부동산 시장은 아직 그정도로 수준은 아니다”라면서 “최근에는 수도권 미분양 물량도 다소 줄어들어드는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나 장기 침체 가능성도 있는 만큼 관련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분상제 대상 지역에는 서울 노른자위 땅도 많이 포함돼있어 분양가보다 시세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지는 않겠지만, 부동산 침체기가 장기화되면 거주의무 조항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면서 “거주기간을 완화하거나 분상제 대상지역 축소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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