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폭락 시대… 공포에 떠는 갭투자자
[편집자주]속절없는 전셋값 폭락에 '세입자 모시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불과 2년 전 체결했던 고액의 보증금을 지키기는커녕 폭락한 금액만큼 전세금 중 적잖은 금액을 세입자에 반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보증금 일부를 돌려주고도 모자라 매달 일정액을 세입자에 줘야 하는 역월세까지 발생하고 있다. 신규 입주단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몇 달 새 전세 시세가 30~40% 이상 폭락했고 그마저도 세입자를 구하기도 힘들다. 3~4년 전 분양 당시만 해도 고액의 전세 보증금을 통해 손쉬운 갭투자를 노렸던 집주인들은 입주 시점에 날벼락을 맞았다. 심지어 분양가보다 높은 전세 보증금까지 기대했었지만 상황이 180도 달라져 혹을 붙인 셈이 됐다. 콧대가 높아진 세입자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1) 전셋값 폭락 시대… 공포에 떠는 갭투자자
(2) [르포] 5개월새 전세 '15억→6억'… 이것이 헬(Hell)
(3) [르포] 검단 왕릉뷰 아파트 1억원대 전세 등장… 함정은?
#. 2주택자인 최모씨는 4억원짜리 전세 아파트의 계약 만기가 다가오면서 고민에 빠졌다. 올 들어 아파트값이 1억원가량 떨어져 전세와 매매시세 차이는 1억원밖에 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세입자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게 돼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공인중개사는 최소 1억원을 내려야 신규 세입자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최씨는 은행은 물론 보험대출, 대부업체까지 알아본 끝에 선순위채권자인 세입자의 전세금 비율이 높아 대출을 받을 수 없음을 알았고 결국 가격을 낮춰 집을 팔기로 했다.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기조가 1년째 지속되면서 '매매가 하락→전세가 하락→역전세난→역월세난' 등 도미노 식으로 임대차시장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연말 시중은행 전세대출금리가 최고 8%대로 예상되면서 1년 전 2~3%대와 비교해 이자비용이 서너배 늘게 됐다.
높아진 전세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준전세·준월세로 이동하려는 세입자 수요에 더해 저금리 시대에 빚을 내 '갭투자'(매매가-전세가 차액만 내고 세입자가 사는 집을 매수)한 집주인들은 하락한 전세금 차액을 마련할 수 없어 역전세난과 역월세난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 결과 지난 9월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전월대비 1.03% 하락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월(-1.92%)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0.75% ▲경기 -1.15% ▲인천 -1.34% 등으로 인천이 가장 많이 하락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한 전·월세전환율은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기준 4.3%로 조사됐다. 예를 들어 이자율 8%를 기준으로 전세금 2억원을 대출받았을 때 매달 내야 하는 이자는 133만원이지만 전·월세전환율 4.3%를 적용해 월세 전환 시엔 매달 72만원만 내면 된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계약은 집주인의 시각으로 보면 집을 공짜로 빌려주는 것이지만 세입자 입장에선 수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것이어서 지금과 같은 고금리시대엔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는 임대인을 거를 수밖에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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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전국 평균 전세가율은 63.8%를 기록했고 전세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울산(70.8%)으로 나타났다. 이어 광주(69.6%) 인천(66.8%) 충남(66.5%) 충북(66.2%) 등의 순으로 전세가율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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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강제경매로 소유권이 이전된 집합건물(아파트·빌라·오피스텔 등)은 4805건으로 전년동기대비 25.3% 증가했다. 서울은 같은 기간 강제경매된 집합건물이 1205건에 달해 전년동기(604건) 대비 99.5%나 증가했다. 제주(79.2%) 경북(57.8%) 인천(56.0%) 충남(24.7%) 강원(19.2%) 대구(18.8%) 등의 순으로 강제경매가 증가했다.
매매가와 함께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면서 계약 만기 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임차인들이 전세금 반환을 위해 경매에 나서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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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세연구원은 지난 11월16일 내놓은 '역전세난과 주택가격 변화의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2014년 시행된 전세대출제도가 전세시장 유동성을 늘리면서 전셋값을 끌어올렸다고 진단했다. 연구원은 "고금리 시기에는 전세대출이 부동산가격 하락을 촉진해 레버리지(차입) 효과로 집값 하락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올 하반기 주택시장의 역전세난 발생은 입주물량 증가의 영향보다 전세대출금리 인상의 효과"라고 덧붙였다.
금리인상에 이어 내년의 '입주 폭탄'도 리스크 요인이다. 연구원은 "신규 주택 입주물량이 올 연말부터 증가할 전망이어서 역전세난과 주택가격 하락을 촉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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