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알기 쉬운 용어가 도농장벽 허물길

2022. 12. 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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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풍미했던 <백 투 더 퓨처> 라는 영화가 있다.

다양한 전문성들이 벌이고 있는 어려운 용어의 경쟁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사자와 인간으로 갈라놓고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의학 드라마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법률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시작부터 끝까지 어려운 전문 용어가 잔뜩 등장한다.

아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전문 용어를 쓴다고 부모의 권위가 생길까? 농업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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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풍미했던 <백 투 더 퓨처>라는 영화가 있다. 할리우드 대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사이언스픽션(SF) 영화로 3탄까지 나왔을 정도로 크게 흥행했다.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 결혼하기 전 부모를 만나기도 하고 또 위기에 빠진 자녀를 구하기 위해 미래로 간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이다.

타임머신이라는 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문학적으로도 <백 투 더 퓨처>는 설정상 명백한 오류가 있다. 예능을 다큐로 받는다는 야유를 감수하고 이야기하자면, 바로 과거에 살고 있는 부모나 미래에 살고 있는 자녀와 아무 문제 없이 의사소통한다는 설정이 오류다. 같은 시대를 공유하며 살고 있는 우리도 서로 말이 잘 안 통하는데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현대 철학의 거장 비트겐슈타인은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화와 소통을 위해 필요한 건 언어보다 삶이 녹아 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전문성들이 벌이고 있는 어려운 용어의 경쟁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사자와 인간으로 갈라놓고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의학 드라마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법률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시작부터 끝까지 어려운 전문 용어가 잔뜩 등장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큰 불평 없이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심에 싸여 드라마를 시청한다.

1차 산업인 농업이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이고,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기까지 보호해주는 가족이라면, 2·3·4차 산업은 집을 떠나 만나는 낯선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멀어지고 싶어도 멀어질 수 없는 게 가족이고,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을 때마다 생각나는 존재가 바로 부모님이다. 아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전문 용어를 쓴다고 부모의 권위가 생길까? 농업도 마찬가지다. 3차 산업인 의료나 법률과 다르게 1차 산업인 농업은 더 가깝게 느껴질 때 진정한 권위를 느낄 것이다.

오래전부터 써왔던 한자 농업용어는 학교에서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들에겐 마치 암호처럼 들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계화 바람을 타고 들어온 영어식 농업용어는 오랫동안 농촌을 지켜오신 어르신들을 한숨짓게 만든다. 한글문화연대는 몇년째 어려운 공공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다듬고 있다. 올해는 농촌진흥청과 함께 그동안 미뤄두었던 어려운 농업용어를 다듬고 있다. 경엽(莖葉)·조사료(粗飼料)·파각란(破却卵)·입제(粒劑)·생력화(省力化) 같은 한자 농업용어는 각각 잎줄기·풀사료·깨진달걀·알갱이농약·노동력절감으로, 그리고 영어식 농업용어인 로터리·그린푸드·바이오월·로컬푸드·펫푸드는 각각 흙고르기·건강먹거리·식물담장·지역먹거리·반려동물먹이로 다듬었다. 물론 정답이라기보다는 권장하는 말이다.

일찍이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이유는 사대부들이 독점하고 있던 정보의 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으로 어려운 용어는 전문가와 대중을 분리함으로써 불필요한 서열을 만들어낸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경제 성장에만 매달려 왔지만 그 과정에서 산업화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경험하면서 귀농·귀촌 인구들이 서서히 늘고 있다. 한글문화연대와 농촌진흥청이 함께 하고 있는 농업용어 개선 사업을 통해 농촌과 도시 사이에 있던 장벽들이 허물어지고, 우리 모두 농업이 가지고 있는 절박한 가치를 깨닫게 됐으면 좋겠다.

채희태 (한글문화연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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