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아름다운 학교

국제신문 2022. 12.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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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교정의 숲을 적시기 시작하는 시각, 초등학교 아이들의 아침기도가 시작됩니다. 이곳이 지금까지 내가 지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학교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학교가 이 세상 어딘가에 세 개쯤은 더 있어도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이 만드는 세상 또한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 곽재구가 쓴 ‘우리가 사랑한 1초 들’에 나오는 이 구절은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고향 산티니케탄에 1년6개월간 머물면서 만난 ‘숲속 학교’의 모습이다. 조회(朝會) 시간에 전교생 200명쯤이 모여 타고르의 시를 읊고 기도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시간은 5분쯤, 조회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라만과 여성 총리 간디도 이 학교 출신이다.

사회적 문제가 평균을 넘으면 일상이 된다. 우리의 교육문제 또한 그러하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만났다. 학교가 파하고 오후 1시40분부터 오후 8시까지 6시간20분 동안 학원을 돌고, 다음 주부터는 토요일에도 한 과목 더 수강하기로 돼 있단다. 어린이답지 않은 삶을 연명해가는 아이에게 ‘행복하느냐’고 묻는 건 사치다.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달리기 결승점에 도착한 선수에게 다시 암벽을 기어오르게 하는 것과 같다’든지 ‘학교는 서울대 많이 보내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곳이다’는 얘기와 숲속 학교 아이들의 깨어있는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지난 70여 년간 ‘지금 교육으로는 안 된다’는 외침을 달고 살면서도 공유할 교육철학과 비전이 없는 정부는 여론에 따라 민원처리식 분절적 교육개혁이라는 것을 거듭했다. 정부 수립 이후 19번이라는 입시제도의 변경은 아이들의 삶이 아니라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은 고정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상(異常)한 교육개혁은 일상(日常)이 되어 제도는 바뀌었지만 아이들의 삶은 삭막할 뿐이다.

교육개혁이란 대입 전형이나 자사고 폐지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 해결의 과정이 아니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학교 문화를 만드는 기나긴 여정(旅程)이다. 교육은 변화무쌍한 현실에서 아이들 스스로가 삶의 해결책을 찾는 전술적 사고(思考)의 과정이자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교장으로 근무했던 학교에서 행한 취임사가 생각난다. ‘서울대 합격자를 늘리려고만 할 게 아니라, 그러한 학생들이 자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화는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입니다. 저는 문화의 세기인 21세기에 우리 아이들의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을 키워 멋있고 실력 있는 인간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교육개혁은 국가와 국민 간의 ‘지속적인 대화’와 ‘학습의 과정’을 통한 문제 해결 프로세스(process)이다. 얽히고설킨 교육문제는 ‘오랜 기간’에 걸친 공유과정과 깊이 있는 학습을 통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다. 교육과정 전면 개정의 경우 선진국들은 10여 년을 잡는데 우리의 2015 개정 교육과정은 2년도 채 안 되는, 번갯불에 콩 볶는 격이었다.

2003년 프랑스의 교육법 개정을 위한 교육대토론회는 일선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등 전국 342개 지역에서 모두 1만5000여 회의 공청회가 진행돼 10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웹사이트가 개설돼 6000만여 건의 국민 의견을 수렴했고 토론 소외자를 위해 특별 인터뷰까지 실시했다.

우리는 과연 어떤가? 얼마 전에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국민 의견 7860건을 접수해 정책연구진에 전달했단다. 문제를 일으킨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금년 9월에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의 결정을 사회적 합의로 보려 한다면 큰 착각이다. 모두의 열망을 담은 교육철학과 비전을 세우기 위한 ‘기나긴 범국민적 대화와 학습’이 우선이다. 입시문제와 같은 지엽적인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우리 아이들, 별과 별 사이를 뛰어다니고 잔디가 자라는 소리도 들어야 하는데…. ‘아름다운 학교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곳이며, 교육은 교육부 문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삶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가 들린다.

조갑룡 교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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