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복지 사각지대의 죽음, 더 방치해선 안 된다

김현철 2022. 12.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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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각지대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창신동 모자, 8월 수원 세 모녀, 얼마 전 신촌 모녀까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고 선언하며, 지난달 ‘복지 사각지대 발굴 지원 체계 개선 대책’을 내놓았다. 위기 가구를 더욱 빨리 정확하게 찾아내, 충분히 지원하겠다 한다. 하지만 어려운 누군가를 잘 찾아내겠다는 건, 모래사장에 묻힌 바늘들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혁신적인 제도 개선이 없다면 비극적인 소식은 앞으로도 들려올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저소득층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왜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이어질까? 첫 번째 이유는 ‘선별 조건’이다. 수급자가 되려면 재산∙소득∙부양의무자 등의 복잡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가령, 창신동 모자는 90년 된 작은 한옥집을 소유했기 때문에 생계급여에서 탈락했다. 병원 이용을 위해 200만원짜리 중고차를 사면 수급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의료급여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된다. 이로 인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저소득층이 73만명에 이른다. 65세 미만이면 아무리 아파도 반드시 일을 하거나 혹은 노동 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야만 한다. 또한,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 개인이 필요한 모든 서류를 준비해서 공공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삶이 고단한 이들에게 서류 준비 자체가 험난한 과정이다. 이를 돕고, 관리하는 공무원 비용도 크다.

다른 문제들도 존재한다. 수급자에겐 일을 할 유인이 없다. 소득의 대부분이 생계급여에서 깎인다. 괜히 일을 했다간 교통비 등의 지출로 오히려 손해다. 임시직으로 일하다 해고되면 한동안 생계급여만 받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가난함을 증명하는 과정이 주는 심적 괴로움도 무시할 수 없다.

대안적 소득보장제도로 등장한 것이 음(陰)의 소득세와 기본소득이다. 음의 소득세는 복잡한 복지정책을 단일화하고 일정 소득 이하에서는 일정 비율로 보조금(음의 세금)을 지급하자는 게 골자다. 반면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동일한 액수를 나누어주는 방식이다. 두 제도 모두 복잡한 선별 절차를 과감하게 줄여서 복지 사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일을 할 유인도 해치지 않는다.

올해 시작한 서울시의 안심소득 사업은 일종의 음의 소득세이다. 중위소득의 85%(3인 가구 기준 340만원)와 실제 소득 간 차이의 절반을 지급해주는 정책이다. 소득 이외의 유일한 기준은 재산(3억2600만원)이다. 가령, 3인 가구의 소득이 140만원이면 현행 제도하에서는 복지 혜택이 거의 없으나 안심소득은 월 100만원을 지급하여, 가구 소득이 도합 240만원이 된다. 만일 소득이 전혀 없다면 170만원을 지급받는다. 이 제도로 저소득층의 현금성 복지가 크게 늘어난다.

안심소득을 전국 단위로 확장한다면 연간 25조~35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기본소득은 어떠할까? 만일 30조원을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면 1인당 연 60만원, 3인 가족 기준으로 연 180만원 (월 15만원)이다. 같은 재원으로 불평등 개선 효과는 안심소득이 월등한 셈이다.

안심소득과 기본소득 모두 현장에서 실험 중이다. 서울시는 올해와 내년 무작위로 1600가구를 뽑아 안심소득을 지원하고, 그 효과를 연구하고 있다. 경기도 또한 올해 소득 3700만원 미만의 농민에게 월 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대안적 소득보장제도는 삶의 질 향상을 넘어 노동 공급, 자녀 교육, 행복, 공동체 의식에까지 영향을 줄 것이다. 이제 기초생활보장제도엔 사망 선고를 내리고 새로운 복지모델로 나아가자. 시범사업의 결과가 발표되면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다. 우리 삶의 근본을 뒤흔들 두 제도, 모두가 관심있게 지켜보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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