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월드컵 해설위원의 사과

김동현 기자 2022. 12.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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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현지 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3차전 일본과 스페인의 경기에서 일본 축구 팬들이 응원하고 있다./뉴시스

“일본 축구가 제 오만한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일본 축구 팬들에게 사과드립니다.”

서형욱 MBC 카타르월드컵 해설위원은 지난 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사과 영상을 올렸다. 월드컵 조 추첨식이 열렸던 지난 4월 일본이 독일·스페인 등 유력 우승 후보들과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자 소위 ‘웃참(웃음 참기)’을 하고, 굳은 표정의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을 보곤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네요” 등 조롱하는 듯한 말을 했던 것에 대한 사과였다. 조 추첨식 당시 MBC 중계진의 발언은 많은 스포츠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일본이 강팀들과 조 편성이 된 것에 대해 이들이 즐거워하는 듯한 자막이 담긴 영상이 일본 소셜미디어에도 올라 현지 네티즌들이 분노하기도 했다.

일본 축구 대표팀은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아시아 국가의 월드컵 2회 연속 16강 진출이라는 새 역사도 썼다. 서형욱 해설위원이 일본 축구 대표팀이 ‘기적의 드라마’를 이룩한 직후 곧바로 공개 사과한 것은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가할 만하다. 당시 MBC뿐 아니라 국내 유튜브 방송인들과 일부 네티즌도 일본에 “꼴 좋다” 같은 원색적인 조롱을 쏟아냈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지 아직까지 이들이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은 지난 3일 포르투갈을 꺾었고, 가나가 우루과이를 상대로 2실점만으로 진 덕에 기적적으로 16강에 올랐다. 일본 소셜미디어를 찾아보면 한일 동반 16강 진출에 대해 “이제 아무도 아시아를 (축구) 약소 지역이라고 얕볼 수 없다” “아시아 스포츠의 한층 더 높은 발전을 기대한다”며 축하하는 글이 많다. “양국이 8강에서 만나면 축구 역사상 절대 질 수 없는 대결이 될 것”이라며 두 나라의 8강행을 기원하기도 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만난 일본 정부 관계자와 서울 주재 특파원들도 “16강에 오른 한국 팬들의 응원 열기에 나까지 잠을 잘 자지 못했다”며 “두 나라가 또다시 기적을 이뤄 8강에서 맞붙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일 일본은 크로아티아를, 한국은 브라질을 상대로 16강전을 갖는다. 대진으로 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더 어려운 상대를 만난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축구 팬들 사이에서 한국 대표팀에 “꼴 좋다”며 조롱하는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유럽·남미 국가가 강호로 군림한 월드컵 무대에서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8강에 올라 아시아 축구의 위력을 뽐냈으면 한다. 그러나 두 나라 중 어느 한 팀이, 혹은 두 팀이 모두 떨어진다고 해도 서로 격려하는 스포츠 정신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MBC 해설위원의 사과는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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