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하나이면 ‘반지’, 둘이어야 ‘가락지’
어른은 말할 것도 없고, 유치원생만 돼도 ‘반지’가 뭔지는 안다. 하지만 반지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쓰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다 보니 ‘반지’를 써야 할 표현에 엉뚱한 말을 쓰는 일도 흔하다. ‘가락지’가 그것이다.
TV 드라마를 보다 보면 고리 하나를 얘기하면서 “이 가락지는 네 시어머니의 유품이다”라는 식으로 잘못 말하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띈다. 옛날을 무대로 한 드라마에서 옥으로 만든 고리를 가리킬 때 유독 ‘가락지’가 많이 쓰인다.
하지만 “장식으로 손가락에 끼는 두 짝의 고리”를 한자말로 ‘지환(指環)’이라 하고, 이를 달리 부르는 말이 ‘가락지’다. 즉 두 개가 한 쌍을 이루는 것이 가락지이고, 그 반쪽만 있는 것이 반지다. 한자도 절반을 뜻하는 ‘半(반)’에 손가락을 의미하는 ‘指(지)’를 쓴다. ‘半’ 대신 ‘斑’을 쓰기도 하는데, 이 역시 “아롱지다” 또는 “나누다”를 뜻하는 ‘반’이다. 옥이든 산호든 금이든 재료에 상관없이 두 개로 이뤄진 것이 가락지이고, 그 반쪽이 반지다.
이 대목에서 문득 ‘그렇다면 쌍가락지는 반지가 네 개여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가락지가 두 개의 반지라면 쌍가락지는 당연히 네 개의 반지여야 한다. 하지만 말은 수학이 아니다. 수학적 사고로 생각하면 ‘우연하다’와 ‘우연찮다(우연하지 않다)’는 대립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연히 그와 만났다”와 “우연찮게 그와 만났다”를 같은 의미로 쓴다. 국어사전들도 ‘우연하다’와 ‘우연찮다’를 “뜻하지 않게”라는, 같은 의미의 말로 다루고 있다. 우리말에는 이런 것들이 많다. ‘엉터리’와 ‘엉터리없다’, ‘안절부절’과 ‘안절부절못하다’는 얼핏 대립되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생활에서는 같은 의미로 쓰인다. ‘가락지’와 ‘쌍가락지’도 마찬가지다. 둘 다 고리의 개수는 두 개다. 쌍가락지는 가락지를 강조한 말일 뿐이다.
한편 반지와 가락지 때문인지 “팔목과 발목에 끼는 고리 모양의 장식품”도 ‘팔지’와 ‘발지’로 쓰는 사례가 간혹 보이는데, 이들 말은 ‘팔찌’와 ‘발찌’가 바른말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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