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남의 퍼스펙티브] 아이 잘 키우는 보육·교육, 출산 장려만큼 중요

입력 2022. 12. 5. 00:33 수정 2022. 12. 5.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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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만들기


오종남 서울대 과학기술최고과정 명예주임교수·인간개발연구원 회장·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우리나라는 1983년 7월 29일 4000만 명째 국민이 태어난 것을 계기로 ‘인구 폭발 방지 범국민 결의 서명 캠페인’을 벌여 200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가족계획협회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우리나라의 인구 문제를 이야기할 때 83년은 의미가 매우 크다. 여성 1인당 낳는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이 65년 6명 수준에서 계속 하락해 83년 2.08명을 기록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최초로 인구 수준 유지를 위해 필요한 대체출산율(2.1명) 이하로 떨어지게 되었다.

「 양육은 개인 부담 아닌 공공 부담이라는 공감대 형성해
아동의 성장·발육 뒷받침하는 공적 지원 이루어져야
모든 학생을 입시에만 열중하게 하는 건 시대착오적
진학·취업·삶 잇는 풍토 만들고 민주시민 덕성 길러야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나라는 83년 1월 1일부터 96년 12월 31일까지 무려 14년 동안 셋째 아이부터는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는 출산 억제 정책을 썼다. 당시 누군가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추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미래의 출산율 하락을 염려했더라면 그런 어리석은 정책을 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2002년 2월 통계청장으로 부임한 후 들여다본 2003년 합계출산율은 1.19명으로, 저출산 추세가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를 근거 삼아 ‘저출산·고령화’를 주제로 방송 출연이나 신문 기고도 많이 했으며, 『한국인 당신의 미래』라는 책을 출간하기까지 했다.

효과 없는 출산장려금

퍼스펙티브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의 최근 통계를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021년 합계출산율 0.81명은 유엔 인구 조사 대상 198개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우리가 출산율 저하를 문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구는 국토 면적과 더불어 한 나라 국력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인구는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공급 능력이며 수요라는 양면성이 있는 만큼 인구가 많아져야 국내총생산(GDP)도 늘어나고 수요도 유지되어 나라 경제가 지속해서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 인구 문제를 그런 맥락에서 보면 출산율을 높이는 일 못지않게, 낳은 자녀를 제대로 교육해 생산성을 높이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정부는 오랫동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예산도 많이 쓰고 대책도 많이 내놓았다. 지방자치단체는 앞다투어 출산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왜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을까? 아이 출산을 고민하는 부부에게 지금 정도의 출산장려금이 그다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이는 낳을 때만 돈이 드는 게 아니다. 양육 과정에서 그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어간다. 직접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가 직장 생활을 한다면 기회비용 또한 엄청나다. 더욱이 엄마의 경우에는 아이를 돌보는 일과 직장 생활을 양립하는 일이 여간 힘든 과제가 아니다.

북유럽의 ‘아동 중심’ 보육 정책

한때 출산율이 하락했다가 비교적 높은 수준에 있는 프랑스·스칸디나비아 국가 등은 우리에게 좋은 사례가 된다. 이 나라들은 ‘아이 키우고 싶은 나라, 아이가 행복한 나라’를 만든다는 목표에 따라 철저하게 ‘아동 중심’의 관점에서 보육 정책을 펼쳐 왔다. 아이는 가정이 아니면 외부 보육시설에서 돌보게 된다. 그런데 아이 부모가 가정 육아를 희망하면 육아휴직 등의 제도를 활용하게 하고, 직장을 쉬게 되더라도 일정 수준의 생활비를 보전해준다. 외부의 공적 보육시설도 부모가 안심하고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큼 잘 되어 있다. 요컨대 아동을 돌보는 부모가 ‘일·가정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도 유럽의 앞선 나라들처럼 양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지든 외부 전문 시설에 의존하든 개인 부담이 아닌 공공 부담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자녀 양육에 관한 한, 부모들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주자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일·가정 균형’이 지켜지는 문화가 제대로 확립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모든 아동의 건강한 성장과 발육을 뒷받침하기 위해 공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정책들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이와 더불어 ‘낳은 아이 잘 키워서 제 몫을 하게 하는 보육과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이는 첫째 아이 키우는 부모가 둘째를 낳고 싶게 만드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양육은 가정·학교·국가 모두의 책임

그동안 우리는 출산을 장려하는 쪽에 주로 신경을 쓰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서 본인도 행복하고 나아가 나라의 힘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정책에는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단순히 출산을 장려하여 인구만 늘어난다고 나라의 힘이 저절로 커지진 않는다. 이는 인구가 엄청나게 많은 인도가 국력 면에서 취약한 현실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모범적인 나라들을 보면 차세대가 자라서 자신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면서 제 몫을 다하도록 기르는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인공지능 (AI)을 활용하여 교육의 질을 높이기도 하고, ‘학력보다 인성’이라 할 정도로 인성을 강조하고 있다. 핀란드나 스웨덴의 경우는 국가 교육 비전의 중점을 학생들의 건강과 삶의 질, 경제적 독립,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 등에 두기도 한다.

초·중·고에서부터 ‘부부 한 쌍당 아이 둘은 낳아야 미래가 있다’는 인식, 그리고 ‘각자가 제 몫을 하는 것의 중요함’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학생 누구나 자신의 잠재력을 토대로 진학·취업·삶을 이어가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의 발전과 성공을 넘어 공동체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하고, 책임 있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지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배려·사랑·연대의식이 경쟁력이란 말이 있다. 모든 학생을 입시 준비에만 열중하게 놓아두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면, 출산 장려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서 행복한 삶을 영위함과 동시에 제 몫을 충실히 하도록 키우는 쪽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한 아이가 온전하게 자라 제 몫을 다하도록 돌보고 가르치는 일은 가정·학교·국가 모두의 책임이어야 한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각자가 제 몫을 하는 나라’의 실현이 미래 세대 행복과 우리의 국력 신장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 국가가 출산·양육 책임진 선진국, 출산율 높이는 데 성공

「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 전 시카고대 교수는 가족 문제를 경제학적 측면에서 규명하려고 노력한 학자다. 그는 인간은 비용과 편익의 관점에서 행동한다고 전제하고, 저출산도 출산과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cost)이 얻는 편익(benefit)보다 더 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날수록 출산율은 떨어진다”는 이른바 베커 가설을 내놓았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대한 실증 연구 결과, 1980년대만 해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은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2010년을 기준으로 보면 합계출산율이 높은 OECD 국가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도 높아서 베커 가설과 배치했다. 이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출산과 양육을 국가가 책임지고 떠맡아야 한다는 데 대한 인식이 형성돼 가정 내에서든 가정 밖 시설에서든 양육에 대한 공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비교적 높은 수준의 출산율을 실현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도 높일 수 있었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질 높은 육아를 위해 노력했다. 출산 전·후 휴가, 배우자의 출산휴가,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제도, 육아휴직 제도 등이 법적 토대를 갖추고 운용 중이다. 하지만 부모들의 체감 정도가 높지 않은 데다가 그 이용 또한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책은 만드는 것 못지않게 제대로 실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 제도가 직장에서 눈치가 보여 신청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가정 양육 또한 믿고 맡길 가까운 사람이 있거나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을 만큼 경제적인 여건이 따라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경력 단절 등을 우려하여 외부 보육시설에 의존하려는 부모도 있을 수 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저출산 추세로 생산 활동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아이 부모가 안심하고 의지할 수 있는 육아 지원책을 실행함으로써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도 제고하고 출산율도 높일 수 있는 과감한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오종남 서울대 과학기술최고과정 명예주임교수·인간개발연구원 회장·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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