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질식하는 청년들의 사회, 심수미 기자가 현장에서 본 것

이마루 입력 2022. 12. 5. 00:10 수정 2023. 1. 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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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누군가는 들뜬 마음으로 놀러나온 거리 위에서. 우리가 계속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질식하는 청년들의 사회

그날도 토요일이었다. 지난 10월 15일 SPC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임사를 당했다. 사고 발생 시각은 새벽 6시경. 2인 1조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동료 작업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참극이 빚어졌다. 부검 결과 주요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된다. 사고 발생 직후 누군가 빨리 발견해 꺼낼 수만 있었다면 살릴 수 있었다는 소리다.

그로부터 2주 뒤 토요일,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다. 핼러윈데이 인파에 놀란 사람들이 초저녁부터 ‘압사가 우려된다’며 112에 신고를 했지만, 4시간 넘게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15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고, 190명 넘게 다쳤다. 부상자 가운데 30명은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다. 사망 원인은 대부분 흉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된다. 이미 지난 일이고 아무 소용 없어져버렸지만, 112 신고가 누적되기 시작한 순간 최소한 몇 개 골목을 상하행으로 나눠 보행자들을 일방통행시키거나, 이태원역 일대 차량을 통제해 보행자들이 다닐 수 있는 면적을 넓혀주거나, 최소한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만이라도 빨리 조치가 취해졌으면 어땠을까…. 계속해서 그날을 곱씹어보게 된다.

제빵공장 노동자의 질식사를 취재할 때도 순간순간 숨이 잘 안 쉬어졌는데, 이태원 참사 이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심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옴짝달싹 못한 채로 막연히 ‘이러다 풀리겠지’라고 생각하며 참고 기다리고 버텼을 수백 명을 생각하면 나도 숨이 막힌다.

괜히 왈칵 울고 싶어지는 순간도 자주 찾아왔다. 회사 앞에는 어린이집이 있다. 어른 허벅지 높이도 되지 않는 서너 살짜리 꼬마들이 안전줄에 묶인 채로 선생님 통솔 아래 병아리 떼처럼 산책 다니는 모습을 쉽게 마주치곤 한다. 그 얼굴만 봐도 억장이 무너졌다. 얼굴에 여드름이 난 중학생들이 버스에서 수다를 떠는 장면을 봐도, 엄마와 똑같이 생긴 고등학생이 마트에서 나란히 장을 보는 모습을 봐도 가슴이 철렁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건 20대다. 저런 애기들처럼 곱게 자라다가 이제 갓 성인이 돼 거리로 달려나갔을 앳된 얼굴을 상상하면 한없이 안타까워진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10대 시절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딴짓이 하고 싶을 때면 단골로 하는 게 ‘어른이 되면 무엇 무엇 해봐야지’ 하는 따위의 상상이다. 나도 그랬다. ‘클럽데이에는 꼭 홍대를 가봐야지’ ‘봄에는 여의도 벚꽃축제에 가야지’ ‘크리스마스엔 명동성당에 갔다가 거리를 돌아다녀야지’ ‘12월 31일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종각에 가야지’… . 청소년이어서, 용돈이 부족해서, 잡지나 TV에 나오는 사람들만큼 멋을 부릴 수 없어서 시도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축제의 ‘클리셰’들은 당시 내게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더욱 달콤해 보였다. 그래서 수능을 치르고 성인이 되자마자 체력이 닿는 대로 열심히 돌아다녔던 것 같다. 지금은 누가 돈을 쥐여주고 가라고 해도 갈 수 없는 체력이 됐지만.

올해 핼러윈데이를 앞둔 주말, 이태원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은 대부분 비슷했을 거다. 2년 넘게 이어온 ‘코로나 거리 두기’가 비로소 풀렸고, 기분 좋은 가을밤이었다. 참사 당일의 골목을 초저녁부터 비췄던 CCTV를 후배와 함께 몇 번이고 돌려봤다. 마음먹고 코스프레한 사람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하철역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든지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일터에서, 서울 한복판 길거리에서, 조용히 구조를 기다리다 질식했다.

두 사건 모두 수사기관과 정부의 진상 조사가 진행 중이니 정확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은 차차 논의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 젊음들과 ‘질식사’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문처럼 남아 있다. 구직난 속에서 위험천만한 일을 수락하거나, 좁디좁은 고시원이나 원룸에 몸을 욱여넣거나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과 광역버스에 부대끼며 장거리 통근을 하면서 일상 속 ‘질식’에 무뎌진 건 아닐까. 대부분의 숨진 이들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 역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경찰과 서울시의 공무원 두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조심스럽지만 추측해본다. 지면을 빌어 고인이 되신 모두의 명복을 빈다. 이제 더 이상의 비극은 없기를, 우리 모두 충분한 애도와 추모를 거쳐 발전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로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심수미제48회 한국기자상 대상과 제14회 올해의 여기자상을 수상한 JTBC 사회부 기자. 30여 년간 인권의 사각지대를 취재한 수 로이드 로버츠의 〈여자 전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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