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만 요란한 조두순 집 문제…"딴 데서 살아라" 전쟁 해법은 [김재련이 고발한다]

김재련 2022. 12. 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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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김근식과 가까운 곳에서 살 수 없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회 모습. 그래픽=김현서 기자

8세 여아를 성폭행해 12년간 복역하고 2년 전 출소한 조두순.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배우자와 살고 있는 그는 최근 옆 동네로 이사하려고 했다. 배우자가 새 주거지 임대 계약까지 마쳤지만 그 동네 주민의 극심한 반발에 부닥쳐 이사 계획이 무산됐다. 조두순 부부가 지금 거주하는 곳의 월세 임대차 계약은 이미 시효가 지났다. 이웃들은 그가 하루라도 더 빨리 떠나기를 바란다.

연쇄 미성년자 성폭행범인 김근식이 16년의 수감 생활을 끝내고 출소하게 돼 있던 지난 10월 중순, 그가 경기도 북부의 한 도시에서 살려고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 지역 시장이 도로를 봉쇄해서라도 그의 정착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김근식은 출소 직전에 추가로 드러난 혐의 때문에 구금이 연장돼 시장의 물리적 저지는 실행되지 않았다. 여성 8명을 성폭행한 죄로 징역 11년을 선고받은 박병화. 그는 지난 10월 말에 출소해 경기도 서남부 지역에 살고 있는데, 그곳 주민들이 관청 등을 상대로 퇴거 조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세 사람은 끔찍한 성폭력 범죄자들로, 범행에 상응하는 높은 형벌을 받았다고 보기 어려우며, 다수의 시민이 재범을 우려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출소 임박 시점부터 그들이 어디에 살게 될 것인지가 사회적 관심사가 됐다.

2020년 12월 서울남부교도소 앞에서 조두순의 사회 복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길에 누워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어디엔가에 장소를 정해 영원히 사회와 격리해야 하나? 그게 법적으로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면 이들이 이웃 주민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거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과연 그런 곳이 있나? 내가 품은 질문들이다.

그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피해자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직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내려진 형벌의 무게는 피해자가 겪고 있는 고통의 무게를 넘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 사회가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든 법과 제도의 기본 정신은 형벌을 통해서 범죄자의 성행을 교정·교화하는 것이다. 그 세 사람도 법으로 정한 형기를 모두 채우고 출소했다. 범행에 상응하지 못하는 수준의 형벌이 내려졌어도 법적 절차에 따라 정해진 벌을 다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용서하기 어려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합법적 처벌을 받은 뒤에도 기본적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는 게 우리 헌법의 정신이다.

물론 흉악범들이 출소 뒤에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범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 대해서는 신상정보 공개, 취업 제한, 전자발찌 착용 등의 보안처분을 가할 수 있다. 범죄 전력자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면서 그들의 재범을 막으려는 사회적 장치다.

2년 전 가을 조두순의 출소가 임박하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이런 보안처분 정도로는 재범을 온전히 방지할 수 없으며, 그가 거주할 곳 인근의 주민들이 심한 불안감 속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그러자 국회에 여러 법안이 발의됐다. 죄질이 매우 나쁜 성범죄자 등을 형기 만료 뒤에 수용시설에 일정 기간 격리하도록 하는(보호수용제) 법안이 나왔고, 조두순 같은 사람의 활동을 거주지 주변 200m 이내로 제한하는 법안도 제출됐다. 그 당시 조두순이 교도소에 있던 12년 동안 이 사회는 무엇을 하다가 그제서야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펄쩍펄쩍 뛰게 됐느냐는 반성론이 일었다.

보호수용제를 놓고 한동안 갑론을박이 오갔다. 같은 죄를 두 번 처벌하는 것이라는 반대론이 거셌다. 그러자 수용시설에서 출퇴근을 하는 중간 형태의 모델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자 그것이 효과적 통제 수단이 되기 어렵다, 이것 역시 이중 처벌이다 등의 지적이 잇따랐다. 딱 거기까지였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뜨겁게 달궈졌다가 금세 식어버린 냄비처럼. 그렇게 2년여가 흘렀고, 이 사회는 여전히 조두순·김근식·박병화의 거주지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

달라진 게 하나 있기는 하다. 최근 법무부가 13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성폭행해 형을 선고받은 자는 형기를 채워 수감 생활을 한 뒤에 재범 위험성을 판단해 치료감호가 가능하도록 하는 치료감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이에 동의한다. 그런데 피해자 연령 기준이 꼭 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 범죄자도 재범 위험성이 높은 경우 치료감호제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실제로 법제화가 돼도 엽기적·상습적 성범죄자의 출소 후 거주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13세 미만이어야 하고, 재범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진단이 돼야 하며, 치료 목적의 한시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숙제는 별로 줄지 않는다. 조두순·박병화 같은 사람들이 교도소나 치료감호소에서 사회로 복귀할 때마다 여전히 '딴 데 가서 살아라' 전쟁을 치를 것이다.

진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치인·법조인·행정가 등이 머리를 맞대고 시민 의견을 들으며 진지하게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게 사회적 합의를 이뤄 문제를 푸는 것이 제대로 된 나라의 모습 아닌가. 모두가 동의하는 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이 문제를 좀 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현실적 답을 찾아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가 출소한 지난 10월 31일 그의 거주지 앞에 배치된 경찰 인력. 뉴스1

그 전에 모두가 꼭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다. 근본적으로 성 범죄자의 재범 위험성을 낮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범죄 연구를 보면 성 범죄자의 경우 심리적 문제, 정신적 문제, 가족관계, 경제적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재범에 영향을 미친다. 취업 제한, 신상정보 공개, 전자발찌 착용 등의 보안처분은 심리적 압박감을 키우고, 경제활동 기회 차단하고, 가족관계 해체에 영향을 미치는 제재 일변도의 것들이다. 이런 처분이 오히려 재범 위험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캐나다에는 'COSA'(Circles of Support and Accountability)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이 있다. 전문가들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성폭력 범죄자의 출소 이후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회복적 사법 모델이다. 멘토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상담을 하며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사회 복귀 의지를 북돋는 효과를 낸다. 출소자의 재범 위험성을 낮추고, 건전한 사회 복귀의 길을 열어준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한 정책이다. 조두순·박병화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를 전문가가 주기적 대화를 통해 파악한다면 사회는 그만큼 안전해진다.

성폭력 범죄자이든, 다른 종류의 범죄자이든 잘못된 행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이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이 계속 공격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그들이 다시 사회에 복귀하는 것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도와야 한다. 이것이 성숙한 문명 사회의 모습이다. 조두순·박병화·김근식이 우리 사회에 던진 숙제를 계속 그대로 덮어둘 수는 없다.

김재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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