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대통령 지지율 ‘함수관계’

2022. 12. 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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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읽기]
지난 11월 28일(한국 시간) 열린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가나와의 경기에서 조규성이 두 번째 헤더 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스포츠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정치학적, 사회학적 연구는 적지 않다. 독일에서는 ‘베른의 기적’이라 불리는 1954년 월드컵 우승이 정치와 스포츠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1954년은 독일이 패전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면치 못하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독일의 월드컵 우승은 독일 국민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렇듯 스포츠와 정치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와 관련 돌프 스테른베르거(Dolf Sternberger) 하이델베르그대 교수는 “국가가 정치적 존재인 한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스포츠는 항상 그 안에 존재한다”고 정의했다. 정치와 스포츠의 관계는 독일 언론인 디륵 슈머의 언급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스포츠만큼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하는 존재는 없다”고 단언했다. 스포츠가 ‘국가적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미다.

스포츠의 결과에 따라 국민적, 민족적 자부심이 고양되기도 하고 반대로 훼손되기도 한다. 자부심이 고양되면 해당 국가의 정치 권력은 수혜를 입는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이룩한 덕분에 2002년 1월 당시 37.5%에 그쳤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 지지율이 월드컵이 개최된 5월에 44.2%까지 치솟았다(리서치앤리서치 기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잊지 못한 국민은 월드컵 직전까지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2004년 9월 13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당시 응답자의 84.6%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 이상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듯 16강 진출에 실패하자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은 급락했다.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의 2006년 정례 여론조사를 보면, 월드컵 직전이라고 할 수 있는 5월 9일 31%였던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은 월드컵 막바지인 6월 25일 14.1%로 폭락했다. 물론 지지율 폭락에 다른 요소가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러나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 동안에는 국민적 관심사가 축구에 쏠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월드컵 성적이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이런 현상은 이명박 정권에서도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직후부터 광우병 파동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 진행되던 2008년 8월 15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심층 면접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에 대해 69.5%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올림픽 기간(2008년 8월 8~14일) 동안에도 국민 뇌리 속에는 광우병 공포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올림픽 직후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했다.

예를 들어 2008년 8월 1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은 16.05%였다. 그러나 폐막 직전인 8월 21일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35.2%까지 치솟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8개로 종합 순위 7위를 기록하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런 결과가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2010년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은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은 월드컵 직전 지지율 40.3%에서 43.9%로 상승했다(KSOI 기준). 한마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스포츠 덕을 상당히 많이 본 전임 대통령이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은 우리나라가 종합 순위 8위를 하기는 했지만, 대중적 인기가 높은 축구나 배구, 핸드볼 등의 구기 종목에서는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이후 44년 만의 일이다. 이런 여파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올림픽 직전 33%였던 지지율이 올림픽 폐막 직후 30%로 하락했다(한국갤럽 기준).

앞선 사례를 놓고 보면, 대통령 지지율 하락 요인을 스포츠 때문만이라고 한정할 수는 없지만 스포츠와 대통령 지지율 사이에 일정 부분 상관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같이 한 달 정도 지속되는 국제적 스포츠 행사일 때는 더욱 그렇다.

월드컵이 한창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은 잘 싸워주고 있다. 과거에는 결과론적 산물인 등수와 성적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지만, 지금은 국민의식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성적을 중시하기보다는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뛰었고 또 선전했느냐를 갖고 평가하는 성향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성적 중심이었기 때문에 16강 진출이나 성적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노무현 정권 당시, 국민 대다수는 우리 축구 대표팀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당시 월드컵 직전의 여론조사(한국갤럽이 2014년 6월 12일 발표)를 보면 당시 16강 진출 가능성에 대해 응답자의 42%는 16강 진출을 확신했던 반면, 44%는 탈락을 예상했다. 두 여론조사를 비교해보면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가 큰 상황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할 경우 대통령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이 더욱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법칙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대로 16강에 진출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 상태에서 실제로 16강 진출에 성공했을 경우에는 대통령 지지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16강 진출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많았지만 16강 진출에 성공했을 때와 비교할 때 긍정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윤 대통령 지지율을 예상할 때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요소는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스포츠의 영향력을 능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과거 이명박 정권 시절을 돌이켜보면 올림픽 덕분에 광우병 수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올림픽 시기도 광우병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당시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국민 대다수가 갖고 있었다. 즉, 국민 개개인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였다는 것이다.

현재 윤 대통령 지지율 상승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이태원 참사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자 문책의 소홀함, 김건희 여사 논란, 그리고 MBC 사태에서 비롯된 윤 대통령의 대(對)언론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중, 이태원 참사에서 비롯되는 안전에 대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국민이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과 관련됐다고 여길 만한 문제는 없다. 때문에 국민이 월드컵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경우, 대통령 지지율 상승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복병이 있기는 하다. 화물연대 파업에 맞서 정부가 업무복귀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런 정부의 행위에 대해 국민이 긍정적인 평가를 할 것인지 또한 윤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7호 (2022.12.07~2022.12.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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