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고객 정보, 중개 프로그램 통해 새나간다
프로그램 공급 업체 서버에
이름·주소·주민번호 등 저장
행안부 “문제없다” 판단에
법조계 “동의 안 받아 위법”
부동산중개사무소들이 전화상담 고객의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부동산중개프로그램 공급업체에 위탁 관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개인정보에는 계좌번호 등 민감 정보도 포함돼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행정안전부는 문제가 없다며 조사를 종결했다.
부동산중개사무소들은 연 20만~100만원의 이용료를 내고 부동산중개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부동산중개사무소에 전화를 걸면 이 프로그램이 깔린 공인중개사 컴퓨터에 ‘고객관리 프로그램’ 창이 뜬다. 전화를 건 번호가 맨 위에 표시되고, 아래에 노출되는 빈칸에 이름과 주소 등 개인정보를 공인중개사가 기재하게 돼 있다.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 계약금 등 민감한 정보도 포함된다.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오면 기존에 기록한 정보가 자동으로 표출된다. 녹음 버튼을 누르면 통화 내용도 저장된다.
이 정보들은 부동산중개프로그램 공급업체의 서버에 저장된다. 상담 전화한 고객은 자신도 모르는 새 민감 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부동산중개프로그램 공급업체에 넘기는 셈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20개의 업체들이 이런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는데, 여러 부동산이 공동중개를 하는 일이 많은 업계 특성상 지역별로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서버업체는 여러 중개사무소에서 작성한 특정 고객의 개인정보 조각들을 취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중개사무소에선 이름을, B중개사무소에선 계좌번호를, C중개사무소에선 주민등록번호를 얻는 식이다.
행안부 개인정보보호정책과(현 개인정보위원회에 통합)는 2019년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이에 대한 공익제보를 이첩받아 다음해 1월 종합점검을 시행했다. 종합점검 뒤 행안부는 중개사무소가 고객 정보를 넘길 때 고객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행안부의 판단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프로그램 공급업체가 넘겨받는 계좌번호와 통화 녹음파일 등은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실확인자료 및 이에 부수되는 자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제3자가 전기통신의 당사자인 송신인과 수신인 동의를 받지 않고 통신비밀 내용을 수집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1항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했다.
행안부도 국토교통부에 보낸 공문에선 위법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행안부는 “모든 부동산중개프로그램의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요구하는 의무사항들을 준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들 프로그램이 이용하고 있는 공인중개사무소가 정보 주체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보장이 미흡하고 개인정보 유출 등 침해사고의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이 사건을 권익위에 공익제보한 D씨는 4일 “행안부가 같은 점검 결과를 놓고 권익위엔 ‘동의를 받을 필요도 없다’고 통보하고, 국토부엔 법 위반 사실이 있다고 통보한 것은 의도적인 사실 왜곡”이라고 했다. D씨는 지난해 행안부 담당 공무원 두 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이들을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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