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노동혐오

서의동 기자 2022. 12. 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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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총파업 11일째인 4일 시멘트 업체가 모여있는 인천 중구 서해대로 가변 주차장에서 화물연대 차량의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일본의 혐한(嫌韓)이 어떤 건지는 영화 <GO>를 보면 감이 잡한다. 재일한국인 주인공이 일본인 여학생과 사귀다가 ‘한국인’임을 털어놓자 여학생은 선을 긋는다. “한국인은 피가 더럽대. 아빠가 가까이하면 안 된댔어.” 영화 <기생충>에서 박 사장이 운전사로 고용한 기택에게선 정체 모를 냄새가 난다. 박 사장은 아내에게 말한다. “선을 넘을 듯 말 듯하면서 안 넘어. 그런데 냄새가 선을 넘지.” 혐오는 꺼림칙한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다. 어떤 대상이 몸 안으로 들어와 자기를 더럽힐지 모른다는 느낌과 이어진다. 차별에는 이성이 개입하지만 혐오는 감각적이다. 뭔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모멸한다.

혐오는 한국 정치의 필수 아이템이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에 이어 이번엔 노동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때부터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 ‘120시간 노동’ 같은 말로 시전했으니 안 봐도 뻔했다. 쟁의행위에 대한 과도한 손배소를 제한하자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황건적(黃巾賊) 보호법’이라고 했다. 어떻게든 노조에 ‘도적(賊)’ 딱지를 붙이고 싶었던 것 같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민주노총을 ‘민폐노총’이자 ‘기획파업을 사주하는 검은손’이라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화물연대 파업을 “극소수 강성 귀족노조 수뇌부가 주도하는 이기적인 집단행위”라고 했다. ‘일요일 밤 일을 시작하면 그다음주 토요일에 퇴근하고 중간중간 2~3시간 쪽잠을 자는’ 초장시간 노동(시사IN “화물차를 쉬게 하라”) 실태를 이들은 알고나 있을까. 윤석열 정부 노동관은 ‘반노동’이 아니라 아예 상대도 않겠다는 ‘혐노동’이다. 노사 간 대화를 이끌어야 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쌍용차 노조는 자살특공대”라던 김문수가 앉아 있다. 분단과 전쟁이 만든 레드 콤플렉스 탓에 ‘노동’은 70년 넘도록 시민권이 없다.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전태일기념관 운영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이 격하(格下)되는 중이다. 애써 쌓아올려도 무너지는 건 금방이다. 이 폭주의 결말이 두렵다. <기생충>에서 박 사장은 혐오의 선을 넘다 파멸했다. 더 이상 선을 넘지 말았으면 한다.

서의동 논설위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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