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인 명단’ 피해자 중 극소수…기한 없이 추적 조사해야

신심범 2022. 12. 4.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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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숙·재생원’ 진상규명 어떻게 되나

- 부산시·지자체에 핵심자료 존재 가능성
- 2년 전 용역 때도 심층조사 필요성 언급
- 당시 연구원 “자료 찾을 전담인력 절실”

1960년대 부산지역 최대 부랑아 시설이었던 ‘영화숙·재생원’에는 한 해 1200명이 수용됐다. 국제신문이 국가기록원에서 입수한 1976년 영화숙 입소 아동 19인 명단은 피해 생존자의 극히 일부다. 1962년부터 10년 이상 자행된 인권유린의 실체 대부분은 여전히 부산시와 기초지자체 문서 보관함 속에 잠들어 있다. 입소자 명단이나 신상기록 등 핵심 자료 또한 빛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숙·재생원은 부산시 등의 비호 아래 만들어졌다. 부산 지자체는 진상규명을 위한 자료 발굴에 나설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2년 전 부산시가 예산을 투입해 발간한 보고서에도 영화숙 진상규명 필요성이 제시돼있다. 자료 발굴을 위해 상시 전담 인력을 꾸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976년 8월 (재)영화숙이 사하출장소장에서 지원받은 양곡을 반납하라는 공문을 받고, 잔류 아동 명단(오른쪽) 등을 첨부해 반환을 거부한 문서. 신심범 기자


■ 영화숙 입소 명단 어떻게 확인됐나

입소 기록은 보건사회부가 영화숙의 법인 허가를 취소하면서 양곡 반환을 요구하는 과정이 담긴 문서철에서 나왔다. (재)영화숙은 1962~1971년 부산시로부터 위탁받아 성인 부랑인 수용 시설인 재생원을 운영했다. 이후 아동 불법 감금·폭행 등의 논란이 불거져 1971년 9월 재생원 운영권을 시에 반환했다. 이때를 전후해 영화숙과 재생원에 수용된 상당수가 다른 시설로 옮겨졌다.

영화숙이 부랑인 자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고 본 시는 시설 폐지 또는 사업 전환을 요구했다. 영화숙의 실질적 운영자인 이순영 원장은 불량아 직업학교를 운영할 계획이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영화숙은 법인 계속 운영을 위한 사업계획서 제출 등을 하지 않았고, 결국 이듬해 1월 보건사회부는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지자체가 비축 양곡 반환을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관할 지자체인 부산 서구는 영화숙 측에 백미 547㎏, 정맥(보리) 8㎏을 반환하라고 했다. 영화숙은 옮겨가지 못한 아동 수용인 19명에게 나눠줘 반환이 불가능하다고 회신했다. 1976년 5월 17일 백미·보리를 합해 약 800㎏을 비축해뒀던 영화숙은 매일 8㎏씩 소진했고, 같은 해 8월 25일 비축분이 바닥났다고 보고했다.

■ “기한 없는 진상규명 절실”

1976년 1월 25일 영화숙이 부산시장에게 보낸 공문으로 서구 일대 공유 수면 매립 승인 과정에서 부산시 등과 갈등을 겪은 내용이 담겨있다. 신심범 기자


영화숙·재생원의 진상규명을 위한 자료 확보 필요성은 이미 2년 전 시 연구용역에서 제기됐다. 2020년 5월 ‘부산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영화숙 피해 진상규명의 중요성’이 언급된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중 영화숙에 수용된 경험자가 확인된 만큼, 형제복지원에 국한해 조사하기보다는 부산의 부랑인 수용시설 전반에 대한 조사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다.

보고서에서 연구자들은 ‘형제복지원 피해 면접참여자 일부가 영화숙에 수용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영화숙에서도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했던 사건과 유사한 내용들이 발생했으며, 영화숙과 형제복지원이 유기적인 관련성이 있었을 수도 있으므로 이에 관한 진상조사도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실태조사 종료 이후에라도 지속적인 진상규명과 학술 연구를 위해 자료들을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시 기록관에 보관 중인 영화숙 관련 문서철도 일부 확인했다. ▷재단법인 영화숙 법인대장 ▷이순영 원장 관계 철 ▷소송 기록 총 3종으로, 1955년부터 1982년까지 영화숙과 관련한 문서를 묶은 기록들이다. 영화숙이 부산 서구(현 사하구) 장림·신평동 일대 공유수면을 매립할 때 시와 빚은 갈등, 매립지가 시유지로 환수되는 과정에서 진행된 보상금 소송 기록 등이 설명돼 있다. 아쉽게도 이들 자료는 ‘연구용역 기간 내 조사를 마쳐야 한다’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면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사정으로 진상규명의 핵심인 영화숙·재생원 입소자 명단이나 신상기록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보고서가 나온 지 2년이 지났지만, 시는 영화숙·재생원에 관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당시 실태조사 책임연구원이었던 동아대 남찬섭(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간을 정해놓고 자료를 조사하는 연구용역 방식 대신 문서를 탐색하는 전문 조사관을 채용해 상시로 자료를 발굴해야 한다. 민간 영역에도 자료들이 퍼져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추적하는 전담인력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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