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의 탈인간] 흩어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한겨레 입력 2022. 12. 4. 18:25 수정 2022. 12. 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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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의 탈인간]

‘이태원 참사’로 지난 10월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사고 현장이 통제되는 가운데 인근 거리에 귀가하지 않은 핼러윈 인파가 가득 차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한민의 탈인간] 김한민 |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팬데믹 이후 웬만한 나라에서 공공장소 2미터 거리두기가 권장됐다. 핀란드도 마찬가지였는데, 역병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며 방역 조치가 풀리자 이런 농담이 돌았다. “정부는 오늘부로 정상화를 선포하니, 모든 핀란드인은 평소처럼 6미터 거리두기로 돌아간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어도 버스 정류장 지붕 바깥에 서서 타인과 거리를 두는 풍경이 흔한 나라가 핀란드다. 가장 ‘번잡한’ 수도 헬싱키의 인구가 60만쯤 되니, 그 6분의 1이 핼러윈에 이태원이라는 작은 동네에 모였다고 말하면 헬싱키 시민들은 귀를 의심한다.

최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극단적으로 줄어들 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참사를 겪은 우리는, 되풀이돼선 안 되는 비극이 재현된 사실에 깊이 절망하고 있다. 안전 체계를 상당 수준 갖춘 나라에서도 군중 압사가 간혹 발생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책임 추궁과 법 개정 같은 제도적 대응은 물론 문화적 변화까지 이뤄져야 재발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대규모 축제 때 경찰 통제에만 의존하기보다 특정 장소에 집중되지 않게 분산해서 즐기는 문화를 정착시킬 순 없을까? 압착 사고 예방법 중 하나는 초기 단계에서 무리 이탈자를 늘리는 일이라고 한다. 통행이 다소 불편하다 싶을 때가 바로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이를 감지해 흩어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위험도 준다는 논리다. 단순한 지침 같지만 지옥 같은 출퇴근길에 치여 사는 우리가 과밀함을 기피하는 감각을 익히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붐벼도 굳이 피하지 않는, 아니 붐빔을 선호하는 감각이 길러진다. 그러다 보면 식당, 가게, 행사는 얼마간 붐벼야 안심이 되고, 썰렁함이 최대 기피 대상이 된다. 클릭 수가 몰리는 곳에 더 몰리도록 설계된 온라인 공간(특히 소셜네트워크)도 이런 쏠림 본능을 증폭시킨다. 그런데 쏠리는 것만 본능은 아니다. 동물의 세계엔 분산 경향도 강하다. 어떤 벌, 개미, 흰개미, 박쥐, 바닷가재 종은 전염병 등의 위험을 감지하면 자발적 거리두기를 한다고 한다. 우리의 ‘흩어지는 본능’을 회복해 압사 예방은 물론 사회의 전반적인 과밀화 경향까지 줄이는 것,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 질문에 이르자 어느 날 농부가 되겠다며 곡성에 간 소설가 김탁환이 떠오른다. 공간은 넉넉하고 사람이 귀한 그곳에서 그는 모 사이의 거리가 보통 논의 세배인 생태농법을 추구한다. 한적한 들판을 걸으며 그와 나눴던 대화를 기억한다. 부의 대도시 편중, 인구 과밀, 만성화된 병목현상, 대형 쇼핑몰 위주의 밀집 주상복합, ‘인서울’ 대입 과열 경쟁, 가축동물의 밀집사육, 자연과 생태적 거리두기에 실패해 발생한 코로나19… 그렇게 온갖 과밀이 끊임없이 위험신호를 보내왔음에도 한번도 증상 대응 이상은 없었다. 근본 대책은 어떤 거리두기, 퍼짐, 분산, 분배에 있음을 알면서도.

어떤 몰림은 꼭 필요하다. 가령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는 시위는 수반되는 위험도 감수할 가치가 있으리라. 하지만 어떤 몰림은 관성이다. 무엇이 나의 길인지 모를 때 우리는 남들이 많이 하는 선택이 곧 안전한 선택이라 여긴다. 문제는 그렇게 택한 안전이 가장 위험한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 말이 가장 들어맞는 맥락은 기후·생태 위기일 것이다. 경제성장에만 집중된 자본을 재분배하지 않으면 만인이 만인에 대한 무기로 돌변하는 사태가 예견되는데도 제 관성을 못 버리는 세계. 지구 기후의 역사와 원리를 가장 잘 아는 수많은 학자가 끊임없이 경고하고 만류해도 자기파괴적, 반생태적 돈벌이의 방향으로 앞다투어 몰려가는 세계. 그 전방이 내게는 마치 폭 3미터의 골목처럼 아찔하게 좁고 위험해 보인다. 더 늦기 전에, 공멸의 방향을 피해, 지금이라도 흩어질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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