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전 칼럼] 영원한 트레블린카

한겨레 입력 2022. 12. 4. 18:25 수정 2022. 12. 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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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칼럼]나치가 유대인에게 했던 일들은 중단되었다. 하지만 똑같은 일이 더 빠른 속도로 동물에게 계속 자행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의존하는 현대 기술, 그러니까 축산업이다. 세계대전의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대학살이 오늘날 우리 일상을 지탱하는 기본 질서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인류 역사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가 우리의 식탁 아래 거꾸로 매달려 작동되고 있다는 기이한 감각에 휩싸인다.
〈동물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무심함과 무자비함 속에 동물에 대한 폭력과 착취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도살장에 있는 돼지들의 모습. 한겨레 류우종 기자

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비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도살장 앞에 가서 그곳으로 끌려가는 소, 돼지들을 마주하는 일이다. 딱 두번 참여했을 뿐이지만 상상 속에서 수시로 그날로 붙들려 간다. 그때마다 나는 어떤 질문에 사로잡혔다. 저렇게 큰 동물을 대체 어떻게 죽일까? 작은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후 그도 역시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에게 죽을힘을 다해 저항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고양이가 원치 않는 일, 이를테면 약을 먹이는 일 따위를 하려 해도 협상이든 기만이든 순전한 무력이든 노력과 기술이 필요했다. 저 돼지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대체 저 공장 안은 어떻게 설계되었기에 저토록 빠르게 도살이 이루어지는 걸까? 바라만 보기에도 충분치 않은 시간 동안 공장 안에서 누군가는 그 속도로 동물들을 무려 살해하는 것이다.

동물들이 이 세계에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지 알아갈 때마다 나는 중얼거렸다. “이건 전쟁이잖아?”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전쟁에 대해 특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는 이렇게 읊조렸다. “저건 동물들의 이야기잖아?” 이유 없이 조롱당하고 무력하게 총을 맞고 피 흘리며 죽는 인간들에게서 동물이 겹쳐질 때 나는 이전보다 훨씬 생생하게 전쟁의 무시무시함을 느꼈다. 역시 이상한 일이었다. 이 연상을 이해하고 싶어서 <동물 홀로코스트>를 읽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책이다. “동물과의 관계에서 모든 사람들은 나치이다. 그 관계는 동물들에게는 영원한 트레블린카(유대인 처형수용소)이다.” 나는 단 하나의 문장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책을 읽었다.

1865년 미국 시카고에 2300여개의 축사가 연결된 유니언 스톡 야드가 개장했다. 공장식 축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육업자들은 증가하는 육식 수요를 충족하고자 컨베이어벨트를 도입했다. 이 새로운 시스템이 동물을 죽이고 해체하는 속도는 놀라웠다. 기념비적 규모의 죽음이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의 머리 위로 체인이 쩔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 잘리고 내장 발린 동물들이 끝없이 행렬을 지어 움직였다. 이 효율적 도살에 영감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였다. 젊은 시절 시카고 도살장을 방문했을 때 이 시스템에 영감을 받아 일관식 조립라인을 개발한 그는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다.

헨리 포드는 유럽의 ‘도살자’들에게 특별한 기여를 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죽이는 데 사용한 일관식 조립라인을 개발했고, 홀로코스트를 불러일으킨 잔악한 반유대주의 운동도 했다. 독일에 영향을 미친 미국의 이 두 가지 현상은 국민의 질을 개량시키려는 폭넓은 문화적 현상의 일부였다. 그것은 바로 우생학. 우생학은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최우량종만 번식시키고 나머지는 거세하고 죽이는 동물육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우생학의 광풍으로 1930년 미국 주들의 절반 이상이 ‘저능아, 간질 환자, 정신박약자’에 대해 강제 불임 수술을 하는 단종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우생학에 깊은 인상을 받은 독일의 나치는 1939년 치명적 단계로 들어섰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체되고 병약하여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더럽히는 독일인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T-4계획을 단행한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빠르게 죽이는 방법을 토론한 결과 가스실을 고안했다. 1940년 6개의 가스실을 개장했고 1942년까지 27만명이 살해됐다. T-4는 유대인 집단학살의 서장이었다. 미국과 독일은 금세기 대학살에 독특한 기여를 했다. 미국은 도살장을, 나치 독일은 가스실을 제공한 것이다. 수많은 동물이 네 발로 끌려간 길로 두 발의 인간들도 끌려갔다. 아우슈비츠는 실로 거대한 도살장이었다. 다만 돼지를 죽이는 대신 돼지라고 규정된 사람들을 죽였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했던 일들은 중단되었다. 하지만 똑같은 일이 더 빠른 속도로 동물에게 계속 자행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의존하는 현대 기술, 그러니까 축산업이다. 세계대전의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대학살이 오늘날 우리 일상을 지탱하는 기본 질서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인류 역사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가 우리의 식탁 아래 거꾸로 매달려 작동되고 있다는 기이한 감각에 휩싸인다. 책을 읽으면서 사실 내가 정말로 궁금했던 건 도살장 내부가 아니라 40여년 동안 이 엄청난 학살을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내 머릿속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었다. 그 역사에 동물이 포함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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