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백지운동, 봉쇄를 넘어 어디로

한겨레 입력 2022. 12. 4. 18:20 수정 2022. 12. 4. 18: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창]

지난 11월29일(현지시간) 홍콩 홍콩대 교정에서 중국 본토 유학생들이 ‘백지 시위’를 하고 있다. 중국에선 지난 24일 신장 우루무치의 고층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사망 10명) 때 방역을 위해 설치한 각종 봉쇄용 장치들이 신속한 진화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베이징 등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 흰 종이를 펴들고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EPA 연합뉴스

[세계의 창] 왕신셴 |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아연구소 소장

최근 중국에서 지난 30여년 동안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지난달 24일 신장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고강도 통제로 주민들이 대피하지 못해 10명이 죽고 9명이 부상했다. 현지 정부는 사과하는 대신 시민들의 자구 능력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분노가 일었고 사망자를 추모하고 봉쇄 정책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는 상하이와 베이징, 청두, 광저우, 난징, 우한 등 대도시로 번졌고, 전국 대학 50여곳에서 백지 시위가 발생했다.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 이후 중국 최대의 시위로 불린다. 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이번 시위는 중국 당국의 고강도 방역 정책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다. 그동안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적지 않았다. 지난 4~6월 약 두달 동안 상하이 전체가 봉쇄됐고, 허난성 정저우의 폭스콘 공장 노동자들은 공장 내 코로나 확산에 도보로 귀향했다. 어린이와 환자가 봉쇄로 제때 진료받지 못해 죽었고, 임신부는 유산했다. 중국인들은 10월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 때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면 방역 강도가 점차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비록 지난달 중순 중국 국무원이 방역 완화에 초점을 맞춘 20가지 조치를 발표했지만, 전염병 확산으로 다시 전국 각지의 봉쇄 강도가 높아졌고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코로나 재확산과 고강도 방역 이후, 중국 당국에 대한 신뢰에 변화가 생겼다. 지난 5월 중국 소셜미디어 ‘즈후’에 올라온 ‘올해 코로나19, 당신 생각은 어떻게 변했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많이 본 글’ 최상단에 올랐고, “전염병보다 무한히 확장된 공권력이 더 무섭다”는 응답이 누리꾼의 큰 공감을 받았다. 정부 방역 정책의 효과와 공신력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두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불만의 주체가 주로 청년과 중산층이라는 점이다. 두 그룹은 엄격한 봉쇄로 인해 일상에 큰 타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도 크게 낮아졌다. 또 하나는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불만이 지방에서 중앙 정부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최근 각지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이 두가지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 시위와 지난 20~30년 중국의 사회적 시위 사이에는 몇가지 차이가 있다. 과거 많은 시위가 큰 정치적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이유는 계급이나 지역을 초월한 공통된 의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제로 코로나에 대한 불만이 공통적인 의제가 됐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시위가 먹고사는 경제·사회적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자유와 민주주의, 독재 반대 등 정치적 요구가 함께 터져 나왔다. 과거 시위 대상은 대부분 지방 정부였지만 이번에는 ‘공산당 퇴진’ ‘시진핑 퇴진’이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과거 시위에는 저항을 촉진하고 퍼뜨리는 역할을 하는 ‘상징’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내용도 쓰지 않은 에이(A)4 용지, ‘백지’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외국 매체가 이번 시위를 ‘백지 혁명’이라 부르며 상당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예측한다. 그러나 중국 시민사회의 역량과 지속성을 과대평가하거나 중국 공산당의 통제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현재 시위 세력은 조직되거나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주된 요구 사항은 정치적인 압박보다 코로나 예방 정책에 집중된다. 중국 당국은 최근 천원칭 당 중앙정법위원회 서기가 “법에 따라 적대세력과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위법 행위를 단호히 단속하겠다”고 밝힌 이후 각지에서 시위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방 정부 쪽으로 ‘일률적’으로 돌리고 있다. 또 장쩌민 전 총서기의 사망 소식에 여론의 초점을 돌리면서 동시에 고강도 방역 정책을 적당히 완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동시다발적인 조치 이후, 이번 시위는 추가적인 동력을 잃게 될 수 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