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 공포에…성장사업 떼어내 '실탄'확보 안간힘

박윤예 기자(yespyy@mk.co.kr) 2022. 12. 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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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인적분할에 나서는 기업이 증가한 것은 경영 환경이 날로 불확실해지고 있는 영향이 크다.

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잘나가는 사업만을 따로 떼어내는 것이 자금 조달 등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주식·채권 시장이 악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최근 분위기를 고려하면 사업 간 시너지를 위해 단일 법인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는 경우 성장이 정체된 사업부문 때문에 잠재력이 큰 사업 역시 저평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올해 전체 인적분할 13건 중 8건이 채권시장 경색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난 9월 이후 이뤄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례로 이수화학은 인적분할을 통해 최근 배터리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전고체 배터리 사업을 담당할 신설 법인 이수스페셜티케미칼(가칭)로 인적분할한다.

기존 법인은 석유화학제품 생산·판매를 맡는다.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 내부의 전해질이 액체가 아닌 고체 상태로, 주행거리를 큰 폭으로 늘릴 수 있어 전 세계 배터리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이수화학은 전고체 배터리에 들어가는 황화리튬(Li2S)을 양산하는 업체다. 그만큼 시장 기대도 높아 올해 들어 코스피가 18% 하락하는 동안 이수화학 주가는 76% 급등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복합적인 사업 구조에서 성장 사업만 분할하면서 향후 성장성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AJ네트웍스는 물류용 팰릿(깔판) 렌탈 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한다. 물동량이 늘면서 팰릿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으나 렌탈 사업 특성상 초기 투자비용이 크고 신규 사업자들의 진입장벽이 높아 현재 시장은 AJ네트웍스와 한국파렛트풀이 양분하고 있다. 두 회사의 관련 사업 매출은 지난해 2019년 대비 34% 늘어났다.

조정현 하나증권 연구원은 "목재 팰릿 비중이 높은 AJ네트웍스가 점유율이 더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며 인적분할을 통해 기업가치 저평가 요인이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으로 유니드 등은 기존에 실적 부진 사업을 인적분할할 예정이다. 한 증권 업계 관계자는 "실적이 저조한 부문을 성장 산업과 떼어내 주가는 물론 채권시장 등을 통한 자금 조달에 숨통이 트일 수 있기를 기대한 포석"이라고 평가했다.

인적분할이 늘고 있는 데는 지주사 전환에 따른 세금 유예 혜택 일몰(종료)이 내년 말로 예정돼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지주회사 전환을 염두에 둔 기업이 인적분할 재상장을 통해 양도소득세 명목의 세금을 당장 내지 않고 향후 신설 회사의 주식을 팔 때까지 세금을 이연해주는 제도다. 당장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 혜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한 기업들이 인적분할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대주주에게 물려받는 주식의 상속세율이 60%에 육박하기 때문에 오너 일가는 상속을 미리 준비해 상속세 절세 효과를 노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사주가 많은 기업의 경우 인적분할로 인해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자사주 마법'도 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사주 마법은 회사의 인적분할 과정에서 기존 회사의 자사주(의결권 없음)에 신설 회사의 신주(의결권 있음)를 배정함으로써 지배주주 지배력이 강화되는 현상으로, 지배주주의 추가적인 출연 없이 지배력이 강화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돼왔다"며 "자사주 마법을 이용한 인적분할과 이어지는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통해 지배주주의 기존 회사와 신설 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인적분할 이전에 비해 각각 15%포인트, 11%포인트 증가해 지배력이 크게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인적분할을 발표한 기업(이사회 결의일 기준) 13곳 가운데 단순 인적분할은 8곳,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은 5곳(38%)이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2년간 상장기업의 인적분할은 총 193건으로 집계된다. 이 중 92건(47%)은 지주회사 전환과 관계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지정된 상장기업이 150여 개임을 감안하면 인적분할이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또 물적분할이 힘들어지자 그 대안으로 인적분할을 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가 분할 비율에 따라 기존 회사와 신설 회사의 주식을 모두 배분받는다.

이후 신설 회사는 재상장되고 기존 회사는 변경 상장돼 새로 거래된다. 반면 물적분할은 회사를 둘로 나눈 뒤 기존 회사가 신설 회사 주식을 100% 소유하는 형태로, 기존 주주는 신설 회사 주식을 배정받지 못한다.

최근까지도 물적분할이 대세를 이루면서 소액주주 등이 강하게 반발했고 각종 규제가 등장했다. 2020년 55건까지 증가했던 물적분할은 올해는 현재까지 34건에 그쳤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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