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100년은 돼야 제몫 … 벨 생각 없소

이효석 기자(thehyo@mk.co.kr) 2022. 12. 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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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안 74만그루 심은
'1세대 임업인' 유형열 대표
70년대 獨·日 출장길에 본
울창한 숲에 부러움 느껴
덕유산 일대 271㏊ 숲 조성
한국산림 공익 가치 221조원
"저탄소 바란다면 나무심어야"

한반도 등줄기 백두대간을 타고 흐르는 혈맥은 금강산, 설악산, 속리산을 따라 서남쪽으로 뻗어 덕유산에 가 닿는다. 덕유산은 전라북도 무주군과 장수군, 경상남도 함양군과 거창군을 포함한 영호남의 경계를 품는다. 1000m가 넘는 산 15개가 병풍처럼 에워싼 곳이 거창군이다.

거창군 북상면과 위천면 덕유산 일대 해발 500~1000m. 유형열 북상임산 대표(83·사진)의 임야도 그곳에 있다. 유 대표는 1970년대부터 50년간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에 매진해온 '1세대 임업인'이다. 그가 심은 나무만 74만그루이며, 식재 면적만 271㏊에 달한다. 개인 산주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 임야에는 쭉쭉 뻗은 낙엽송을 비롯해 튼실한 잣나무가 빼곡히 있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10개년 녹화사업을 하기 전 우리나라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었다. 유 대표가 숲에 빠진 데는 한일합섬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출장길에 독일과 일본의 울창한 숲을 본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몹시 부러웠다고 한다.

그가 처음 임야를 매입한 건 1968년이다. 처가가 거창에 있었는데 유 대표는 면장을 하던 장인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땅을 사들였다. 그 땅에 낙엽송이라는 침엽수를 심었다. 당시 낙엽송 12~15년생은 건설 현장 가설물을 설치할 때 쓰는 비계목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처음에는 백전백패였다. 유기질이 없던 초기 토질에 나무를 심으면 봄 건조기에 대부분이 말라 죽었다.

1984년 유 대표는 회사를 그만두고, 덕유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산을 돌봤다. 1990년대부터는 어린 나무 주변이나 잡종지에 더덕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골짜기마다 자생하는 고로쇠도 가꿨다. 산삼을 파종하기 시작했고, 자연산 두릅과 고사리 답지도 운영했다. 복분자, 오미자, 곰취, 산마늘 등 약초도 키워 팔기 시작했다.

사유림은 개인 재산이지만 공익적 가치 때문에 각종 규제가 많다. 그러나 정부 지원 폭은 좁아 자연재해를 입어도 복구는 산주 개인의 몫으로 이뤄지는 게 다반사다. 단기간에 소득을 보기 어려운 데 비해 가지치기, 솎아베기 등 숲 가꾸기 비용이 계속 발생해 좀처럼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말처럼 유 대표는 나무를 팔라는 유혹에는 단호한 편이다. 낙엽송은 인삼밭 지주목으로, 잣나무와 전나무는 가구와 내장재로 인기가 많다. 최근에는 수입 목재 가격이 급등했다. 하지만 나무는 못해도 100년은 돼야 제값을 받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50년생 나무를 팔면 그루당 30만원이지만, 그게 80년이 되면 가격이 80만~100만원으로 성큼 뛴다. 그는 앞으로도 나무를 베어 팔 생각은 없다고 한다.

유 대표는 긴 미래를 내다본다. 조림의 긍정적 외부 효과를 믿고, 언젠간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리라 생각한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221조원에 달한다. 국민 1인당 연간 428만원의 공익적 혜택을 받는 셈이다. 최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줄이기가 전 지구적 관심이 된 시점엔 조림의 가치가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들어 내는 데 가장 고전적 방법인 나무 심기보다 좋은 건 없다"고 힘줘 말했다.

유 대표는 독림가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큰 상을 받기도 했다. 1986년 정부로부터 모범독림가로 선정됐고, 2008년 국가산업발전 산림사업 유공으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산림청으로부터 '이달의 임업인'에 뽑히기도 했다.

[거창/이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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