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부터 츄까지…정산 논란의 망령

하재근 문화 평론가 2022. 12. 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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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열풍에 찬물 끼얹는 구시대적 엔터 업계 현실

(시사저널=하재근 문화 평론가)

대한류 시대라는 2022년에 정산 논란이 다시 터졌다. 과거 가요계에선 정산 논란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한류 시대 이후 개선됐다고 여겨졌다. 한류 대형 기획사들은 정산을 정확하게 한다고 한다. 그런 사례가 알려지면서 이것이 업계 전반의 풍토인 걸로 인식됐다. 그리고 대형 스타들은 소속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 모든 인식을 뒤집는 사건이 터졌다. 바로 이승기 음원 수익 '0'원 논란이다. 

2004년 데뷔한 이승기가 지금까지 음원 수익을 받은 적이 없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터졌다. 디스패치가 2009년 10월부터 2022년 9월까지의 이승기 음원 수익을 확인했더니 0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소속사인 후크 엔터테인먼트가 이승기 음원으로 올린 매출은 96억원이라고 했다. 계약대로라면 이 중에서 58억원이 이승기 몫인데 한 푼도 지급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톱스타에게도 그런 일이?" 충격 일파만파  

더 놀라운 것은 여기에 2004년 6월부터 2009년 8월까지, 약 5년 동안의 수익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5년여의 자료가 사라졌다고 보도됐다. 보통 대중가요 가수는 젊었을 때 인기가 가장 뜨겁다. 이승기도 데뷔 직후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 기간 동안 《내 여자라니까》 《다 줄거야》 《여행을 떠나요》 《결혼해줄래》 등 대박급 히트곡이 잇따라 터졌다. 그 기간까지 더하면 총 음원 수익은 훨씬 많아질 것이다.  

과거엔 스타라도 소속사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을 때가 많았지만 한류 시대 이후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런 일이 사라졌을 거라고 여겨졌다. 한류 이후 스타의 위상이 급상승하면서 이젠 기획사들이 스타를 '모시는' 분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톱스타인 이승기가 소속사에 갑질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음원 수익도 못 받고 일만 했다는 주장에, 충격과 함께 의심하는 반응도 있었다. '설마 정말 그런 일이?' 

그때 소속사 대표가 입장을 내놨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정리 단계인 점과 앞으로 법적으로 다뤄질 여지도 있어 입장 표명을 자제"한다고 했다.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할 텐데 입장 표명을 자제한다고 해서 의혹이 더 커졌다. 11월24일 이승기 측의 입장이 나왔다. 정산을 못 받은 게 맞다는 것이다. 소속사 대표 등으로부터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모욕적이고 위협적인 언사를 전해 들었다고도 했다.  

그러던 중 소속사 대표가 회사 직원들 앞에서 "내 나머지 인생을 이승기 XX는 데 쓸 것"이라고 폭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승기의 밥값조차도 사적 용무라며 많이 쓸 수 없도록 압박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사람들은 대스타라도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소속사를 향한 여론이 악화됐다.  

그러자 11월25일, 소속사 측에서 새로운 입장을 냈다. 2021년에 쌍방이 정산 내역을 확인하고 정산했으며 합의서까지 작성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진실 공방으로 흘러갈 분위기가 됐다.  

권진영 후크엔터테인먼트 대표ⓒ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11월28일 이승기 측에서 소속사의 입장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소속사에 불리한 보도도 잇따랐다. 먼저, 소속사 대표가 정산서 작성을 막았고 실제로 음원 수익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소속사 직원의 주장이 보도됐다. 이승기의 부동산 투자금을 대여금으로 바꿔 수십억원대 투자 수익을 주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승기 밥값조차 압박했던 소속사 대표가 자신은 회삿돈으로 호화생활을 해왔다는 주장도 보도됐다. 소속사와 대표를 향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러자 11월30일 소속사 대표의 입장이 나왔다. "어떤 다툼이든 오해든 그 시작과 끝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며 "이승기씨 관련 다툼에도 온전히 책임지는 자세로 낮추며 제가 져야 할 책임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개인 재산을 처분해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뭘 잘못했는지 명확하게 밝힌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맥락상 정산 논란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100% 인정인지는 알 수 없는데 최소한 개인 재산을 처분해 책임져야 할 정도로 잘못이 있긴 하다는 것이다.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후크 엔터테인먼트는 이름이 알려진 중견급 회사다. 이승기는 톱스타다. 그런데도 정산 문제가 이렇게까지 혼탁하단 말인가? 중견회사와 톱스타 사례마저도 이렇다면 군소회사, 일반 연예인들의 사정은 어떻단 말인가? 

최근 한류 아이돌인 이달의 소녀 멤버 츄와 관련된 논란도 있었다. 소속사에서 츄가 스태프에게 갑질했다면서 퇴출시킨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소속사에 대한 의심이 나왔다. 보통 갑질 논란이 터지면 소속사가 답답할 정도로 고심하며 사태를 무마시키려 하다가 한참 후에야 어떤 결단을 내린다. 이번엔 그런 논란 자체가 없었는데 갑자기 퇴출 발표가 나왔다. 누리꾼들은 혹시 츄가 정산 문제를 제기하자 소속사가 츄에게 불이익을 가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이달의 소녀 멤버 츄ⓒ더스타 제공

한류 아이돌까지…K팝 위신 추락 불가피 

이승기 음원 수익 문제에 이어 한류 아이돌까지 연이어 정산 논란이 터진 것이다. 이 사안의 진실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런 논란이 터졌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실망스럽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류 시대 이후 우리 대중문화 업계가 많이 투명해졌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과거엔 가수가 히트하면 그 소속사 대표가 돈을 펑펑 쓰고 다닌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번에 이승기 소속사 대표가 이승기 밥값마저 억제하면서 본인은 호화생활을 했다는 주장이 보도된 것이 그 과거 속설을 떠올리게 했다. 그동안 우리 업계는 어떤 발전을 했던 것인가? 현재 회삿돈 유용 의혹은 경찰이 수사 중이라고 한다. 

이승기 측은 "모든 문제는 어린 나이에 데뷔했던 이승기씨의 경험 부족과 미숙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미성년 시절부터 소속사의 관리를 받았기 때문에, 그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제대로 따질 수 없었고 사회 경험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K팝 가수들의 대부분이 미성년 시절부터 소속사로부터 스파르타식 관리를 받는다. 그런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이승기 사례를 보면, 매니저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처지가 천양지차로 갈리는 구조로 보인다. 후크 엔터테인먼트의 업계 평판이 긍정적이었고, 그 대표의 이미지도 매우 좋았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 크다.  

이승기 음원 수익 논란이 터진 후 언론보도에 '노예계약'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했다. 이런 일이 해외에 알려지면 결국 K팝의 위신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업계를 향한 불신이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연예인 지망생의 피해가 우려된다. 내역 공개와 정산은 기본 중 기본인데, 그걸 제대로 안 해서 수십 년째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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