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佛 유명극장이 먼저 환대 … 韓流는 변방 아닌 주류였다

박대의 기자(pashapark@mk.co.kr) 2022. 12. 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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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V&A)박물관이 내년 6월까지 한국 대중문화를 조망하는 '한류! 코리안 웨이브' 전시 모습.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 홈페이지】

지난 10월 20일부터 약 일주일간 영국과 프랑스로 떠났던 출장은 한류의 위치를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사실 이번 출장의 목적은 한류의 국제적 위상을 파악하는 것보다 재직 중인 세종문화회관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은 개관 50주년을 맞는 2028년을 목표로 재정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대극장과 체임버홀로 구성된 현재의 모습이 뮤지컬, 오페라 등을 위한 2300석 규모의 대극장과 1800석 규모의 클래식 콘서트홀, 연극과 무용이 가능한 600석 규모의 중극장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나는 해외 극장들이 재정비 기간에 관객들의 요구 사항을 어떻게 수용했는지를 묻고, 장기간 설 곳을 잃은 전속 단체들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했는지, 우리 전속 단체가 공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주요 공연장들을 찾았다.

촉박한 일정에 현지 유명 극장 대표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러웠지만, 오히려 그들의 환대를 받으며 면담이 이뤄졌다. 더 놀란 것은 한국 문화의 실제 목소리를 듣고 싶다며 예술감독도 함께 자리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들을 회의 테이블에 나오게 한 것은 그곳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한류 열풍 때문이었다.

그들과 대화하고 실제 전시장과 극장에서 한국 문화를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지금 한국 문화는 서구 예술계의 주류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점이 여실히 느껴졌다. 필자가 이번 유럽 방문에서 한류의 현재 위치를 확고히 깨닫게 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세계 최대 공예·디자인 박물관으로 꼽히는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V&A)박물관에서 열린 '한류! 코리안 웨이브(Hallyu! The Korean Wave)' 전시였다. 지난 9월 시작해 내년 6월까지 열리는 한류! 코리안 웨이브는 전 세계 무대에서 펼쳐지는 한류를 통해 다채롭고 역동적인 한국 대중문화를 조망하는 전시다.

이 전시가 K팝이나 드라마처럼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소재만 소개했다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을 터. 총 4개의 섹션은 한국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시기를 벗어나 문화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는지 시대순으로 소개한다. 한국의 역사적 맥락을 통해 한류의 성공 배경을 엿본다는 점이 특징이다. 단편적으로 현재 유행하는 한국 대중문화만을 조명하는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 대중문화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역사적이고 기술적인 관점에서 대중에게 소개한다는 점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의미 있는 방식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 처음 마련된 이 같은 한국 문화 전시가 국내 정부나 기관이 아닌 V&A가 주도적으로 기획했다는 점이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한국 문화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시사점을 줄 것이다.

두 번째는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방문해 들은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계획이었다. 1947년 출범한 이 페스티벌은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과 세계 양대 공연축제로 불린다. 매년 출품되는 수천 건의 작품 중 선정작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와 달리 애초에 공식 초청을 받은 작품만 선보일 수 있는 행사다.

행사 관계자들은 내년 8월 열리는 행사에서 한국 작품을 대거 초청하는 '코리아 위크'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성사되면 한국 공연은 12년 만에 이 행사에 오르게 된다. 2011년 극작가 오태석 씨가 이끄는 극단 목화의 연극 '템페스트'와 안은미무용단의 현대무용극 '프린세스 바리', 서울시립교향악단 등 3개 공연이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이 행사의 무대에 올랐다. 세계 최고의 공연 축제로 불리는 이 행사에서 한국 문화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업계에 종사하는 입장에서는 특이한 현상으로 보였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이야기이고, 그 바탕에는 한류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세 번째는 영국 런던의 사우스뱅크센터 마크 볼 예술감독이 전해준 '동아시아 페스티벌' 계획이었다. 2024년에 열릴 이 행사는 그동안 유럽에 소개되지 않은 동아시아 국가의 전통 문화를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극장은 음악, 연극, 무용, 오페라, 미술 전시 등 종합적 예술 복합체로 유럽에서 가장 큰 문화예술 종합단지로 꼽힌다. 이곳에서 아시아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는 한국 문화가 핵심이 될 것이다. 중국과 일본, 대만, 홍콩 등 여러 나라의 문화가 소개되는 행사에서 한국은 특별 프로그램이 마련될 정도로 주목받을 예정이다.

중요한 점은 사우스뱅크센터의 관심이 고전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볼 감독은 지금 한반도에서 우리가 보고 즐기고 있는 컨템퍼러리(현대적)의 특징을 내후년 행사에서 살려보고 싶다고 했다. 앞서 볼 감독은 2018년 런던국제연극제에 우리의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을 개막작으로 세울 만큼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한국 문화의 흐름을 세계 문화의 중심지에 소개한다는 것은 한국 문화의 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될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출장에서 지켜본 한국 문화 관련 행사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행사의 주도권을 해외에서 쥐고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한국 문화와 관련된 행사가 지속적으로 해외에서 열려 왔던 만큼 이들의 움직임이 완전히 새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전까지 한국 문화 관련 행사가 한류 확산의 분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국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기획해 일방적으로 해외에서 선보여왔던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 이들이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해외에서 선보일 공연을 기획할 때 교민 사회 정도를 대상으로 한 소극적인 형태였던 것과 달리 이제는 유럽 주요 극장들이 시즌 구성에 한국 문화를 포함하며 당당히 초청받는 형태로 해외에 진출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이 국제적으로 예술계를 주도해온 기관이나 단체의 주도로 이뤄지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예술의 흐름을 주도해왔던 곳에서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려 한다는 것은 국제 예술계에서 한류를 국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모였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이제 근본적인 요소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 문화가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할 것이라는 시선이 있지만, 과연 유행을 두고 더 깊이 탐구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을까.

세계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이들이 한국을 새로운 예술적 가치의 생산기지로서 가능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한국을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콘텐츠를 공급받을 수 있는 지역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그 지역의 관객들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에 대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역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좀 더 새로운 한국 문화를 지역에 소개해주기를 바라는 수요자의 요구가 공급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필자는 과거 '문화 사대주의'를 탓하며 국내 공연장의 텅 빈 객석을 걱정하며 살아온 세대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해외에서 먼저 한국 문화를 무대에 올리려는 움직임이 낯설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배경이 궁금해진다. 분명 방탄소년단(BTS)이나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인기가 한몫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의 범주가 더 이상 대중문화에만 국한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유럽 3개국 4개 도시의 초청을 받아 순회 공연을 마무리하며 한국 대표 악단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했고,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20세기 현대예술을 주도한 브루클린아카데미오브뮤직(BAM)의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북미 무대에 오른다. 서울시무용단도 내년 여름 미국 공연예술의 심장으로 불리는 링컨센터에서 공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들이 해외 무대에 오르면서 한류의 장기화에 숨을 불어넣을 것이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매일경제 명예기자 / 박대의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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