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엔 희망 면역항암제 암 세포엔 절망

강민호 기자(minhokang@mk.co.kr) 입력 2022. 12. 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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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1983년 사망원인 통계를 집계한 이래 40여 년간 암은 부동의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도 암은 사망 원인의 26%를 차지하며 '저승사자'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최근 10여 년간 암이라는 저승사자에게 맞서는 새로운 치료법이 주목받고 있다. 면역계를 활성화해 암과 대응하는 '항암 면역치료'가 그 주인공이다.

항암 면역치료는 한국과 미국의 유명 정치인 덕분에 대중에게도 잘 알려졌다. 2015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면역치료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로 흑색종을 치료한 데 이어 국내에서는 폐암 판정을 받았던 김한길 전 국회의원이 면역치료제 효과로 건강이 호전된 모습을 대중 앞에 선보인 바 있다.

면역항암제는 3세대 항암제로 분류되며 새 시대를 열고 있다.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세포도 공격하면서 다양한 부작용을 발생시키는 1세대 화학항암제, 암세포가 가진 특징을 판별해 공격하기 때문에 정상세포를 건드리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내성에 취약하며 환자군이 한정적이라는 단점을 가진 2세대 표적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다는 평가다.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면역항암제는 우리 몸에 이미 있는 기능을 이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다"며 "면역에는 기억 기능이 있어서 잘만 활성화된다면 장기간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재용 강남세브란스 암병원장도 "기존 항암제는 골수 기능 억제나 감염을 동반하게 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며 "(특히) 고령 환자는 체력적인 한계로 기존 항암제를 쓰지 못할 때가 많은데 면역치료제는 부작용이 거의 없어서 나이 제한 없이 사용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면역관문억제제, 면역세포치료제, 항암백신, 항체·약물접합체 등 다양한 형태의 항암 면역치료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일선 치료 현장에서 암 환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는 면역관문억제제가 있다. 면역관문억제제를 활용한 치료는 혼조 다스쿠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1992년 PD-1 단백질을, 제임스 앨리슨 미국 MD앤더슨암센터 교수가 1996년 CTLA-4 차단을 통한 암세포 제거 메커니즘을 발견하며 시작됐다. 이 둘은 면역반응 억제 조절 기작을 이용해 획기적인 암 치료법을 제안한 암 연구 선구자로서 업적을 인정받아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단백질 PD-1, PD-L1, CTLA-4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공격을 중지시키는 면역관문 단백질이다. '관문'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단백질들은 세포 표면에 붙어 일종의 제동장치 역할을 한다. 길목을 막고 폭주하는 자동차나 행렬을 통제하는 관문처럼 T세포 등 면역세포가 과도한 면역반응을 일으켜 발생할 수 있는 류머티즘관절염, 크론병 등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을 막는 역할을 한다. T세포의 수용체인 PD-1이 정상세포의 PD-L1과 결합하며 T세포가 정상세포를 공격하지 않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CTLA-4도 반대 쌍에 해당하는 단백질과 함께 PD-1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

문제는 똑똑한 암세포가 면역관문 단백질을 활용해 자신을 정상세포로 위장할 때 발생한다. 평상시에는 인체에서 주기적으로 생산되는 암세포를 T세포와 같은 면역세포가 죽이기 때문에 암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하지 못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진화한 암세포는 면역관문 단백질을 활용해 T세포를 속여 공격을 막는다. PD-L1은 발전된 암세포 표면에도 존재하는데 암세포의 PD-L1과 T세포의 PD-1이 결합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신호를 보낸다. 이들 단백질은 결국 암세포가 정체를 숨기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암세포와 면역세포의 결합을 막아 신호전달을 차단할 수 있다면 T세포 등 면역세포가 정상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면역 활동 정지 신호를 수신하는 T세포의 수용체인 PD-1을 막아버리는 항체를 만들거나, 면역 활동 정지 신호를 송신하는 암세포의 단백질 PD-L1을 막는 항체를 만드는 전략을 찾아냈다. 면역 관문에서 암세포에서 송수신되는 신호를 차단함으로써 T세포는 활성 정지 없이 면역 공격을 계속할 수 있다.

관문 작용을 막는 면역관문억제제는 면역항암제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현재 국내에는 CTLA-4 저해제인 BMS의 여보이(성분명 이필리무맙), PD-1 저해제인 오노약품공업의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와 MSD의 키트루다, PD-L1 저해제인 로슈의 티쎈트릭(성분명 아테졸리주맙), 머크·화이자의 바벤시오(성분명 아벨루맙),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 등이 출시됐다.

조 원장은 "현재 허가된 면역항암제 제품은 정맥주사 형태만 있다"며 "흑색종이나 신장암 등 면역치료 반응이 좋은 몇몇 암은 단독 요법으로 허가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면역관문억제제를) 국내에 환자가 많은 위암 등의 치료에 있어서는 기존 치료법과 병행해서 쓰거나 기존 치료법의 효과가 미미할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면역관문억제제를 활용한 치료법에도 풀어야 할 숙제는 있다. 면역세포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조 원장은 "알레르기 증상 등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며 "다만 1~5%의 낮은 수준으로 발생하고 대부분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 내외의 암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점도 단점으로 언급된다. 또한 흑색종, 신장암 등 일부 암에서만 높은 효과를 보이는 점도 한계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환자의 특색과 발병 장기에 따라 변이가 많은 암 세포의 특징 등을 비춰 보면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조 원장은 "20% 내외면 암 치료에 있어서 대단히 높은 수치"라고 언급했다.

김태돈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도 "암 치료에 최고의 치료법은 없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복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면역치료뿐만 아니라 화학항암제, 표적치료제 등과 함께 다양한 방법이 조합된 치료법을 쓰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실용화된 대표적인 사례인 면역관문억제제 외에도 면역세포치료제, 항암백신 등 다양한 면역치료제 등을 연구 중"이라며 "효능과 안정성을 갖춘 방식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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