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람’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

한겨레21 입력 2022. 12. 4. 16:18 수정 2022. 12. 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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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생 쿤티에(가명)씨는 2015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입국한 약 5만 명 중 한 명이었다.

2019년 쿤티에씨는 아이를 한국에서 낳았다.

아이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쿤티에씨는 남편과 같이 다시 한국으로 와서 일했다.

쿤티에씨는 깻잎밭에서 4년 넘게 일한 전문성 덕분에 금방 일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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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1990년생 쿤티에(가명)씨는 2015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입국한 약 5만 명 중 한 명이었다. 경상도에 있는 깻잎밭에서 일했다. 인구 10만 명인 이 소도시의 깻잎밭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여성만 1천 명 가까이 됐다.

하루 10시간 일하고, 한 달에 두 번 쉬었다. 주말이나 장이 서는 날이면 이곳 시내는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로 북적였다. 캄보디아 전문 식당이 세 곳이나 있어 작은 사랑방 구실을 했다.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대도시의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남성 노동자들도 이곳으로 놀러 왔다. 이 식당에서 쿤티에씨는 친구 소개로 현재 남편을 만났다.

국경을 넘나들며 일궈낸 가족

쿤티에씨와 남편은 농한기를 이용해 캄보디아로 가서 결혼식을 올린 뒤, 다시 한국에 와서 각자의 자리에서 일했다. 그러다 임신한 쿤티에씨는 덜컥 걱정이 앞섰다. 임신하면 해고하는 사장님이 많았기 때문이다.

“걱정 많이 했어요. 사장님이 일 그만두고 나가라고 할까봐요. 그렇게 쫓겨나는 노동자가 많아요. 다행히 저희 사장님이 괜찮다고, 일하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했어요.”

2019년 쿤티에씨는 아이를 한국에서 낳았다. “캄보디아에 가서 아이를 낳고 싶었는데, 비행기 타지 말라고 해서 한국에서 아이를 낳았어요. 산후조리원에 2주 있었어요. 80만원을 냈어요, 80만원.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내가 일해요. 그럼 누가 아이를 돌봐줘요?”

고용허가제로 온 20~30대 이주여성 노동자가 아이를 낳으면 맡길 데가 없어서 본국으로 아이를 보냈다. 쿤티에씨도 어쩔 수 없이 한 달 된 아이와 남편과 함께 캄보디아로 갔다. 아이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쿤티에씨는 남편과 같이 다시 한국으로 와서 일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용허가제가 보장한 4년10개월의 체류기간이 거의 끝나갔다. 2020년 3월, 출국을 앞두고 비행기표를 샀다. 캄보디아로 돌아간 뒤 특별 한국어 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다시 한국에 올 계획이었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고 비행기편은 취소됐다. 결혼과 아이 양육을 위해 넘나들던 국경이 닫혔다. 한국어 시험도 취소돼 언제 재개될지 몰랐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쿤티에씨는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다. 한국에 남아 3~4년 정도 더 일하고 본국에 돌아가기로 했다. 비자 만료로 불법체류 상태가 되어 단속 때 잡히면 출국 조처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 오기로 한 이주농업 노동자가 입국을 못했다. 깨밭에 깻잎은 커가는데 사업주들은 당장 일손이 필요했다. 사업주는 월급도 더 많이 주고, 기숙사도 무료로 제공하는 조건을 내세웠다. 쿤티에씨는 깻잎밭에서 4년 넘게 일한 전문성 덕분에 금방 일을 구했다. 합법체류 했을 때보다 더 좋은 조건이었다.

아이에게 좋은 교육 시키고 싶어요

고용허가제도 내에서 이주노동자는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업종 간 이동을 하지 못하며, 가족이 같이 살 수 있는 가족결합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그러나 미등록 상태가 되면 법의 보호는 못 받고 추방될 위험은 있지만, 고용허가제라는 제도의 구속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직장도 옮길 수 있고 가족과도 함께 살 수 있다. 쿤티에씨는 1년6개월 넘게 깻잎밭에서 일하다가 남편이 일하는 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했고 같이 살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미등록 상태가 되어서야 ‘합법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불법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불법사람이니까 경찰한테 잡힐까봐 무서워요. 그래도 여기에서 남편이랑 같이 열심히 벌어서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어요. 남편이랑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우춘희 <깻잎 투쟁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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