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흙이 좋아 대기업 때려치고 귀농 … 내 삶 자체가 HERB [명사와 걷다]

신익수 기자(soo@mk.co.kr) 2022. 12. 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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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대한민국 1호' 허브나라농원 이호순 원장
이호순 허브나라 원장이 데이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관광공사】

"총합 '100세'에 왔는데, 벌써 30년이 지나버렸네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 산39. 남편 나이 51세, 아내 나이 49세, 도합 100세의 부부가 허허벌판의 땅에 '100세 귀농'을 했다. 산골짜기를 통째 향기로 채우고 싶어 허브를 심었다. 대한민국 허브농원 1호 '허브나라농원(Farm HERBNARA)'. 아들 승택이가 명명한 그것은 대한민국 국대급 허브 핫플레이스가 됐다. 1943년생이니, 이제 여든인 허브 달인 이호순 명사. 인간의 몸이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는 해발 700m. 터 좋은 봉평의 산 중턱에, 그것도 150여 종의 허브와 꽃나무가 가득한 허브 세상이라니. 부럽다는 말부터 쏟아냈다.

"그게, 오해거든. 지금? 신선놀음하러 와서 하인 노릇 하는 중이지.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건 농사였지, 농업(비즈니스)이 아니었거든. 1호 허브농장이면 뭐해. 아예 비즈니스로 시작한 2호와 3호 허브농장들은 엄청 잘 먹고사는데."

이호순 허브나라 원장은 이런 식이다. 편한 길을 두고도 굳이, 에둘러 간다. 한 해 20만명이 몰려오는 평창 최고의 허브 핫플레이스인데도, 시스템식으로 경영을 하지 않는다. 그저, 흙이 좋고 땅이 좋아 허브를 키운다. 이 좋은 경치에 독채 빌라 좀 짓고 분양 좀 하라고 부추겨도 요지부동이다. 살아온 방식이 그랬다. 서울대 공대 재학 중에도 농대를 맴돌며 청강을 밥 먹듯 했다. 남들 부러워하는 대기업 계열사 간부직도 때려치웠다. 아내(이두이)와 결혼 조건이 '귀농'이었는데, 그 약속을 지켜 낸 셈이다.

평창 허브나라농원 전경. 【사진 제공=한국관광공사】

그는 지금도 새벽 6시 기상이다. 한 시간 농원을 돌고, 직접 가꾼다. 벌써 30년째다. 일일이 허브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고 직접 손질을 한다. 농원 투어 해설사를 둘 법도 한데, 그것도 이 원장이 직접 마이크를 달고 한다. 한 땀 한 땀 사람 손이 닿아야, 겨우 자라는 허브를 키우다 보니, 뭐든지 직접 하고 나야 직성이 풀린다.

150여 종의 허브가 살고 있는 허브나라. 그가 가장 아끼는 허브는 뭘까. "가장 평범한 게 가장 좋아. 페퍼민트. 여기가 해발 700m거든. 다른 애(허브)들은 일주일만 지나도 다 죽어. 한데, 페퍼민트는 달라. 다년초식물이라, 뿌리를 갈라 놓으면 또 자라고, 자라고."

허브와 살다 보니,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허브다.

"제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HERB'죠. H는 건강한 삶(Healthy life), E는 맛깔스러운 삶(Enjoy the tasty life), R는 신나는 삶(Refresh life), B는 나누어 아름다운 삶(Beautiful life)입니다. "

대한민국 허브명인 1호. 허브농원 개념을 처음 도입한 허브 산파인데도, 그는 여전히 겸손하다. 다섯 스승에게 공을 돌린다.

첫 스승은 유달영 서울대 교수.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 집에서 우연히 유 교수가 쓴 '인생 노우트'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만 농사에 빠져버렸던 것. 서울대 공대에 지원할 때도 한 달 이상을 농대 원서를 쓴다고 부친과 싸운 일화도 있다.

"부친이 하늘에 계시니 (신익수 기자한테만) 말해줄게. 대학생활의 절반도 공대가 아닌, 농대에서 했어. 농대를 다니는 줄 아는 친구들까지 있었다니까. 그러다 덜컥 농대 시험 보러온 와이프까지 만난 거지. 와이프가 시골에서 농사짓는 걸 결혼 조건으로 내걸었지. 그 덕에 내가 51세, 와이프가 49세 때 '총합 100세' 귀농을 하게 된 거지."

두 번째 스승은 법정 스님이다. 법정 스님이 오대산을 오가던 시설, 우연히 허브나라농원에 들렀다. 그때 스님께 배운 게 무소유, 즉 '빌림'이라는 개념이다. 세 번째 스승은 정신적 동지나 마찬가지인 이시형 박사. 이 박사가 '세로토닌하라'며 주창하는 게 '의사가 없는 생활'이다. 그 주장에 가장 맞아떨어지는 게 허브. 허브는 풀도 되고 약초도 된다. 허브와 사니 의사 없이 건강하다는 게 이 원장의 지론이다.

네 번째 스승을 물었다. 놀라운 답이 날아든다. 그 네 번째 스승이 마을 사람들이라는 것. 그가 말한다. 전과 11범이라고. 전부 마을 사람들에게 고발을 당한 결과물이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지. 텃세라고만 봤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이렇게 자연을 빌려 사는 것, 그건 주변 마을과 함께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 동네가 곧 지방이고 지방이 곧 나라인 셈이거든."

그는 지금, 비로소 마을 주민과 '더불어' 산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 스승은? 그가 웃더니 답변을 이어간다. 천재지변이라는 것. "2006년 물난리 때야. 그동안 갈고닦았던 허브나라농원이 싹 쓸려 가버렸어. 망연자실, 끙끙 앓고 있는데,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 언제 문 여냐고. 허브나라 보고 싶다고."

그는 그때 깨닫는다. 허브나라는 자기(이호순)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그는 지금도 돌려주는 작업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바로 허브나라농원 투어다. 체험 프로그램은 두 가지다. 가이드투어와 팜투어. 가이드투어는 이 원장이 직접 마이크를 메고 뛴다. 농원을 둘러보고 나서 허브티를 즐기는 당일 프로그램이다. 팜투어는 팜파티와 허브 만들기 체험, 숙박 등을 한데 아우른 1박2일 코스. 그가 추구하는 건 '보는 농사'다.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보고 즐기며, 힐링을 하는 '농원' 개념을 만든 것이다. 그가 허브나라농원을 '10개 테마가든'으로 꾸민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중 이 원장이 아끼는 공간은 터키 갤러리 '한터울'. 샛노란 한련화 앞에서 지나가는 아이에게 걸음을 멈추고 말한다. "얘야. 저 꽃 따서 먹어 봐. 먹는 꽃, 알지?"

식용 허브인 한련화는 비타민C가 많아 감기에 특효약이라는 부연 설명까지 이어진다. 오, 참을 수 없다. 기자의 손이 아이보다 빨랐다. 슬쩍 씹어 먹는데, 웬걸. 쓰다. 고소하다는 듯, 이원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 웃음, 인자하다. 눈가의 주름에도 웃음에도 상큼한 민트향이 진동한다. 참으로,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허브꽃이다.

[평창/신익수 여행전문기자]

▶명사 이호순과 허브나라 투어 하려면

허브나라농원(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계곡길 225) 가이드투어가 당일치기다.

명사의 설명을 들으며 허브나라농원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허브티를 마시며 명사와 담소를 나눈다. 소요 시간은 40분. 팜투어는 1박2일이다. 식사와 허브티를 곁들인 팜파티, 허브 만들기 체험이 포함된다.

식사는 허브닭찜, 허브샐러드 등 허브가 들어간 음식 위주. 2~3명 또는 4명 단위의 그룹 형태로만 예약을 받는다. 장평시외버스터미널이나 KTX 평창역에 내리면 무료 픽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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