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피난 온 흑두루미 1만 마리를 지켜라…순천만 들판에 볍씨 100t 뿌린다
전남 순천시 순천만에서는 올겨울 흑두루미 1만여 마리가 겨울을 나고 있다. 흑두루미는 전 세계에 1만7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국제 멸종위기종이다. 그동안 흑두루미의 최대 월동지는 1만3000여 마리가 찾는 일본 규수 가고시마현의 이즈미였다. 한국 순천에는 3000~4000여 마리가 날아왔다.
올해 순천만 흑두루미는 지난해보다 6000마리 정도 증가했다. 갑자기 늘어난 흑두루미는 조류에게 치명적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하고 있는 일본에서 ‘피난’을 왔다. 순천시가 한국으로 피신한 흑두루미 보호를 위해 다양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순천시는 4일 “순천만에서 월동하고 있는 흑두루미 1만여 마리에게 먹이를 제공하기 위해 매주 볍씨 10t씩, 총 110t을 올 겨울 농경지에 뿌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순천만의 ‘흑두루미 먹이 주기’는 지난해보다 빨라졌다.
순천시는 그동안 축구장 81개 넓이의 농경지를 ‘흑두루미 희망농업단지’로 지정하고 이곳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한 볍씨를 철새의 먹이로 이용해 왔다. 올해도 추수 직후 논바닥에 볍씨를 뿌려 뒀다.
하지만 지난 11월 중순부터 흑두루미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먹이가 거의 떨어졌다. 11월10일 2921마리 였던 순천만 흑두루미는 11월15일 4009마리, 11월21일에는 9841마리로 급격하게 늘었다. 이들 흑두루미의 상당수는 일본 이즈미에서 날아왔다.
일본 이즈미에서는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이후 하루 최대 90여 마리, 총 10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폐사했다. 북서쪽으로 대거 이동하는 흑두루미 떼를 관찰했던 일본 관계자들은 ‘순천만 피신’을 확인한 이후 “흑두루미를 살려야 한다. 순천만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순천시는 볍씨를 먹이로 주면 흑두루미들의 영양 상태가 좋아져 면역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AI 감염 우려가 있는 흑두루미들이 먹이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위험에 처한 흑두루미가 대거 한국을 찾아온 것은 순천만의 생태와 서식환경이 우수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순천시는 1996년 흑두루미 70여 마리가 처음으로 순천만을 찾은 이후 다양한 보호 대책을 세웠다.
들판 전선에 걸려 흑두루미가 죽는 일이 잇따르자 2009년 전봇대 282개를 모두 뽑아냈다. 주변 농경지는 농약 등을 하지 않는 농업단지로 바꿨다. 볏짚을 놔두고 서식지에 차량 불빛을 차단하는 울타리도 설치했다.
황선미 순천시 순천만보전팀 주무관은 “흑두루미도 사람과 같다. 건강해야만 조류인플루엔자를 이겨낼 수 있다”면서 “일본에서 찾아온 흑두루미들이 앞으로도 꾸준히 순천만을 찾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서식공간 확대 등을 위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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