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줄 김건희’ 도이치 재판서 드러난 흔적, 계좌·파일·녹취록

정혜민 2022. 12. 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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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김건희 여사.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던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전 회장 등의 주가조작 사건이 지난 3일로 재판에 넘겨진 지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간 공판 과정에 김 여사가 주가조작에 관여한 흔적이 수차례 드러났지만,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조사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증거 조사가 거의 마무리돼 이 사건은, 내년 1월께 선고가 이뤄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조병구)가 심리하는 이 사건 공판에서 김 여사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부터였다. 지난 4월1일 공판 당시 주가조작 2단계 시기(2010년 9월~2011년 4월) ‘주가조작 선수’로 알려진 김아무개씨는 “김건희 명의의 디에스(DS)증권 계좌에서 블록딜로 도이치모터스 주식 합계 20만6천주가 매도됐는데 알고 있나. 증인이 한 것인가”라는 검찰의 추궁에 자신이 한 일이 맞다고 인정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 윤석열 대통령 쪽은 주가조작 1단계 시기(2009년 12월~2010년 8월) ‘선수’ 이아무개씨와 김 여사의 연관성만 인정했는데, 보다 장기간에 걸쳐 주가 조작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재판에선 김씨와 최근 구속된 블랙펄인베스트먼트 임원 민아무개씨 사이 문자메시지가 공개되기도 했다. 검찰 조사를 받던 민씨는 지난해 해외도피했다가 최근 돌연 귀국해 구속됐다. 2010년 11월1일 김씨가 민씨에게 “3300원에 8만개 매도하라고 하셈”이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김건희 여사 계좌에서 정확히 8만주가 쏟아졌다.

그 직전, 민씨 등이 같은 가격으로 매수 주문을 걸어뒀던 터라 김 여사의 매도 물량은 고스란히 이들에게 넘어갔다. 당시 도이치모터스는 하루 거래량이 500~1000주 수준에 불과했다. 작전세력끼리 물량을 돌리면서 일반투자자가 따라오도록 유도하는 전형적인 통정매매 수법으로 보인다.

블랙펄 이아무개 대표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었던 지난 4월8일 공판에서는 ‘김건희 파일’이 공개되기도 했다. 2011년 1월13일 작성된 해당 엑셀파일에는 김건희 여사 명의 증권 계좌의 인출액과 잔액 등이 적혀 있었다.

검찰은 이 파일과 관련해 “(매도) 가격이 싸게 됐다는 문제로 권오수와 김건희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그런 사실이 있었나”라고 물었다. 이에 이씨는 “(주가조작 선수) 김씨가 주식을 블록딜한 다음 김 여사 전화가 와서 왜 허락 없이 주식을 팔았냐고 난리 친 적 있었다고 들었다”고 전한 바 있다.

해당 문자와 김건희 파일은 8월26일 블랙펄 이아무개 부장, 지난 12월2일 민씨의 증인신문 과정에도 계속해서 등장했다. 민씨는 “당시 (주가조작 선수) 김씨가 사무실을 방문해 수기로 적은 내용을 주고 엑셀로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커피를 마시고 (파일을) 프린트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지난 5월27일 공판에서는 김 여사가 직접 주식 매수를 지시한 듯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등장하기도 했다. 재판에 공개된 녹취록(2010년 1월12일)에 따르면, 증권사 직원은 김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할 지 물었고, 김 여사는 “사라고 하던가요? 그럼 좀 사세요”라고 답했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쪽은 일부 주식거래 내역만 공개하면서 2010년 1월14일~5월20일 주식계좌를 일임했으나 손실을 보다가 관계를 끊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해명과 다른 시기에 주가조작 선수들과 연계해 거래한 정황이 다수 공개된 셈이다.

당초 김 여사 계좌 5개가 주가조작에 동원된 사실이 권 회장 등 공소장 범죄일람표에 기재되면서, 김 여사가 자금을 대는 ‘전주’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검찰은 아직도 김 여사에 대해 조사조차 않고 있는 상태다. 일반적으로 주가조작 사건에서 자금을 대는 ‘전주’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돈을 댄 전주가 가장 많은 이익을 보지만 주가조작을 한다는 사정을 알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려워 처벌하기 어렵다”면서 “공모관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혐의를 부인하는 전주를 처벌한 사례도 없지는 않다. 2008년 서울중앙지법은 고가매수, 통정매매 등을 활용한 주가조작으로 1천억원을 챙긴 일당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전주 8명에게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바 있다. 앞서 검찰도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또 다른 ‘전주’ 부동산개발업자 손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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