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취지는 진취적이지만 감동이 없는 우주경제 로드맵

박근태 기자 2022. 12. 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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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우주시대의 청사진을 담은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공개했다. 2032년 달에 착륙하고 광복 100주년을 맞는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겠다는 구상과 함께 5대 우주기술 강국으로 도약을 위한 기술 확보와 산업 육성, 인재 양성, 우주 안보 실현과 국제공조라는 6개 정책 방향을 내놨다.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놓은 우주항공청을 2023년 말까지 설립해 “우주경제 로드맵을 구체화하겠다”라고도 했다.

우주경제라는 용어는 10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도 SF영화에서나 통할 법한 개념이었지만 요즘은 이를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졌다. 지금은 세계 경제 트렌드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다. 지구나 우주에서 사용할 상품의 생산과 유통, 달이나 소행성의 자원 채굴과 같은 서비스 활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을 바탕으로 우주가 지구와 같은 큰 시장을 형성하고 더 확장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더 많은 기업과 사람을 우주로 데려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월 대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우주경제 시대를 활짝 열겠다”고 밝혀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대통령이 언급한 ‘우주경제’라는 말도 낯설지만, 우주개발을 경제라는 좀 더 넓은 틀에서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30년간 추진해온 기술확보 중심의 우주정책으로부터 전환을 예고하는 말처럼 들렸다. 사실 한국 우주개발은 최근까지도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도 로켓과 위성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은 환경에서 독자기술 확보에 주력하다 보니 연구개발(R&D) 관점에 묶여 있었다. 정부만이 수요를 창출하고 기업은 이윤 창출이 아닌 정부 R&D 사업에 참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산업 경쟁력이나 효율성을 따질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바깥으로 돌리면 이미 많은 기업이 우주에서 경제 활동을 펼칠 기회를 얻고 있다. 호주나 아랍에미리트(UAE), 룩셈부르크 같은 국가들은 독자 발사체도 없고 경제 규모도 작지만 통신, 소프트웨어, 자원 채굴, 로봇, 제조, 금융 분야에서 우주시대를 열 기업을 발굴해 적극 육성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자국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분업구조와 글로벌가치사슬(GVC)에 편입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이 우주정거장 계획, 달 유인개발 계획을 앞다퉈 내놓고 있고 아랍에미리트(UAE)같은 작은 나라도 화성 이주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구 밖’ 경제는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실제로 우주경제는 매우 구체적이며 튼튼하게 확장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10월 보고서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우주 경쟁을 촉발했지만 지금은 90개국이 우주 활동을 벌이고 있고 1만개 기업과 5000명의 투자자가 우주경제에 참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우주재단은 세계 우주경제 규모가 올해 4989억 달러로 확대됐으며 2020년 이후 6.4%의 매출 증가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로켓과 위성 기업은 물론 제조·IT·바이오·금융·보험·법률 등 다양한 영역이 참여하면서 풍성한 경제 생태계로 거듭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 같은 우주전문기관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국제기구도 이런 이유로 우주경제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아예 국제우주정거장(ISS)이 돌고 있는 400~500km 상공의 지구저궤도(LEO)를 많은 미국 기업이 기회를 얻을 새 영토로 보고 ‘LEO 경제’로 부르고 있다. 미국 주도의 유인 달 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도 다양한 국가와 기업을 참여시켜 ‘달 경제권’으로 묶겠다는 구상도 추진하고 있다. 우주경제 로드맵도 이런 세계적 흐름을 반영해 국내 우주개발의 새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국의 우주경제 로드맵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우주시대를 여는 첫 경제 밑그림이라고 하기엔 그 이름값만큼의 감동이나 기대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일단 국민 반응이 영 시원찮다. 대통령 지지도와 어려운 경제 상황 영향도 있겠지만 발표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런 반응은 충분히 예견된 결과처럼 보인다. 이번에 공개된 로드맵에는 무엇보다 국민의 폭넓은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충분한 설명이나 설득의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우주개발 정책 공약이 또 다시 나열됐지만 여전히 ‘왜’는 빠졌다. 윤 대통령은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4차례나 우주경제를 언급했지만 한국이 우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와 우주경제란 무엇이고 왜 우주경제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지 설명을 하지 않았다. 우주경제 시대가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설명도 없다. 기술만 있으면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란 공급자 중심의 사고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런 ‘무작정 던지고보자’식 우주정책은 30년간 한국의 우주개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대부분의 전임 대통령들도 왜 달에 가는지, 왜 우주발사체가 필요한지 장기적 비전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우주개발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우주 전문가들조차도 왜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는지, 인공위성을 쏘아올려 무엇을 하려는 건지 설명은 항상 뒷전이었다. 기술부터 확보하고 난 뒤 활용은 생각해보자는 공급자 사고 방식의 정책이 반복되면서 우주는 관료와 일부 전문가의 전유물이 됐다. 다수 국민이 우주개발을 지지하면서도 자신의 삶과 우주시대를 연결시키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내용의 로드맵이 나온 배경에 대한 설명도 없는 건 좀 너무했다. 우주강국, 성공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는데 성공의 기준도 모호하다. 로드맵에는 담긴 목표가 어떤 근거로 산출됐는지, 또 현재 태동기에 있는 한국 우주산업이 어떤 과정과 단계를 거쳐 발전시켜야 할지 방향과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상업 우주시장을 키워 지구저궤도에서 미국의 유인우주 활동이 유지되도록 하겠다는 미국의 LEO경제 목표와 확연히 비교된다. 경제 영토를 우주로 확장하자거나 미래 세대에 달 자원과 화성을 터전으로 선사하겠다는 주장이 자꾸만 공허한 문구로 보이는 이유다.

이 로드맵이 30년 넘게 우주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현장 경험, 세계 우주개발의 흐름을 충분히 반영해 우리 상황에 맞게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로드맵을 수립에 참여한 전문가 폭이 좁았고 원대한 비전을 호소력 있게 전달할 방안을 만드는데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첫 우주경제 로드맵이 이처럼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를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급자 중심의 우주정책으로는 결코 광활한 우주를 감당할 풍성한 경제 정책을 쏟아내기 어렵다. 더 긴 시간을 두고 더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반세기 전 경제개발5개년 계획 수립 과정에서 여러 부처와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주 전문가들조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라는 특정 부처 산하에 우주항공청을 두려는 결정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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