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논의되는 ‘삼성생명법’···이번에는 통과될까

박채영 기자 2022. 12. 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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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삼성 본사/ 김창길 기자

소위 ‘삼성생명법’으로 알려진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세번째 논의되고 있다. 보험사가 보유한 주식을 시가로 평가하도록 하는 법안인데, 통과될 경우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을 대부분 매각해야 한다. ‘총수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지배구조도 영향을 미칠 법안이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왜 삼성생명법이라 불리는가?

삼성생명법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이용우 의원이 2020년 6월에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삼성생명법은 19대,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달 29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삼성생명법을 논의하려 했지만 야당이 단독으로 예산안을 의결한 것을 문제 삼은 여당이 회의에 불참해 일단 논의가 무산됐다.

삼성생명법은 보험사가 소유한 주식과 채권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 보험업법의 계열사 주식 취득 한도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내용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이 삼성생명이라 ‘삼성생명법’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특정 계열사의 주식을 총자산 3% 이상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보험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보험사의 자산이 특정 계열사에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보유 주식을 시가로 평가하는 은행, 증권사와 달리 보험사는 ‘보험업감독규정’에 따라 분자가 되는 보유자산은 취득원가로, 분모가 되는 총자산은 시가로 평가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특정 계열사 주식을 총자산 3% 이상 갖는 것이 가능하다.

삼성생명의 경우 삼성전자 주식 8.51%(5억815만주·9월 말 기준)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다. 하지만 1980년에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취득원가는 1주당 1072원에 불과하다. 때문에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가치도 5444억원으로 삼성생명 총자산(314조원)의 3%(약 9조원)에 크게 못 미친다. 보험업법의 계열사 주식 취득 한도 규제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최근 6만원 내외를 오가고 있는 삼성전자의 주가를 기준으로 하면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가치는 약 31조원에 달한다. 삼성생명 총자산의 10%에 육박한다. 삼성생명법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약 22조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용진 의원실
삼성생명법과 삼성의 지배구조

삼성생명법이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삼성의 지배구조도 뒤흔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1.63%에 불과하지만, ‘총수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 주식 17.97% 보유하고 있는데,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19.34%)다. 이 회장 본인도 삼성생명 지분을 10.44%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에 대한 삼성물산과 본인의 지분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9월 말 기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때문에 삼성이 보험업법의 맹점을 이용해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달 29일 성명서에서 “삼성생명의 과도한 삼성전자 주식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이유 때문”이라며 “보험업법이 삼성 총수 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삼성을 지배하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하는데 쓴 금액의 일부는 삼성생명 보험 가입자의 돈이라는 점도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인 1980년은 유배당 보험 상품이 주로 팔리던 때이다. 유배당 보험은 보험료가 비싼 대신 보험사가 주식이나 채권 투자로 수익이 나면 배당을 주는 상품이다. 때문에 삼성생명법을 발의한 박 의원 등은 “이 회장이 삼성생명 유배당 가입자들에게 배분해야 할 돈을 지배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생명법 통과되면 삼성전자 주가 폭락한다?

삼성생명법을 두고 일각에서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이 시장에 쏟아지면 국내 주식시장에 충격이 예상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삼성생명법은 주식 매각에 5~7년의 유예 기간을 설정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대량 매각해야 하면 삼성이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면 삼성전자 주식이 폭락할 것이라는 말은 주식을 아무도 안 산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며 “다른 계열사가 삼성생명 주식을 사들이거나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를 대체할 투자처가 없는 점과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세금 등을 이유로 삼성전자 주식 매각에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용진 의원이 지난 10월24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금융위원회에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구체적인 매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승호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 부사장도 지난 10월6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산운용을 하는 데 있어서 아무래도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산운용의 효율성을 저해시키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삼성생명의 자산 쏠림에 따른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는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삼성생명법 토론회에서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의존도와 위험 노출이 지나치게 큰 상황”이라며 “단적으로 올해 들어 삼성전자 주가가 크게 하락함에 따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가치에도 큰 변동이 있다”고 말했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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