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한 명씩 있던 ‘나쁜 놈’···그 친구도 영웅이죠”···‘약한 영웅’ 유수민 감독[인터뷰]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 영웅 클래스 1>은 예고편이나 제목만 봤을 때의 인상과 드라마를 보고 난 감상이 사뭇 다른 작품이다. 남학생들이 때리고 부수는 이야기는 여러 콘텐츠에서 반복됐고,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도 최근 많았다. <약한 영웅 클래스 1>의 주인공들도 매 에피소드에서 서로 치고 박고 싸우고, 마약·도박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그러나 <약한 영웅 클래스 1>은 인물의 마음과 인물들간 관계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남다른’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드라마 <D.P.>를 만든 한준희 감독이 크리에이터를 맡고, 신예 유수민 감독이 극본을 쓰고 연출했다. 유 감독은 단편영화 <악당출현>으로 제16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액션·스릴러 부문인 ‘4만번의 구타’ 섹션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한 감독이 유 감독을 눈여겨 봤다고 한다. 한 감독은 네이버 웹툰 <약한 영웅>을 영상화하는 프로젝트를 유 감독에게 제안했다. 마침 원작의 팬이었던 유 감독이 응했다. 유 감독은 원작에서 주인공 연시은의 과거로 짧게 등장하는 ‘벽산중’ 시절에 주목해, ‘벽산고’ 세 친구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유 감독을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유 감독은 원작의 팬이었던 이유를 “연시은이라는 특별한 캐릭터에 끌렸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싸우고, 인물이 가진 성질도 매력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주인공 연시은(박지훈)이 몸이 약하고 체구가 작지만 주변 사물이나 인물의 심리를 이용해 상대를 제압한다는 설정은 원작 그대로다. 다만 가족 관계나 유년 시절은 등은 유 감독의 상상으로 만들어냈다. 그는 “시은이는 부모님이 바빴을 것”이라며 “공부를 잘하다 보니 부모님은 상장을 가져올 때 예뻐했을 것이고, 몸이 약하니 친구를 사귀는 건 조금 어려웠고 결국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았을까 했다”고 말했다.
연시은은 자신을 괴롭히거나 방해하는 이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한다. 원작에서는 이런 특성 때문에 이야기가 ‘사이다’로 전개된다. 적이 나타나면 혼내주고, 더 질 나쁜 적이 나타나면 더 잔인하게 되갚아주는 식이다. 만화 속 연시은은 점차 더 강해지고,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증명해나간다.
드라마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연시은은 친구가 생기고, 관계 안에서 갈등이 생겨난다. 재앙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온다. 결말은 ‘사이다’보단 ‘고구마’에 가깝다. 유 감독은 “좀 더 현실성이 있고,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수호(최현욱), 범석(송경), 시은 세 사람의 관계와 드라마에 집중하다보니 고구마가 된 게 아닐까 한다”고 했다.
친구 안수호와 오범석에게도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설정이 추가됐다. 수호는 돈을 벌기 위해 매일 아르바이트를 한다. 범석은 국회의원 아들이지만, 알고 보면 이미지를 위해 입양됐을 뿐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한다. 유 감독은 “수호는 원작에서 공부를 잘 하는 캐릭터지만 영상으로 했을 때 ‘보는 재미’가 적을 수밖에 없어서 액션에 맞는 캐릭터로 바꿨다”며 “범석이는 원작에서 ‘노골적인 나쁜 놈’이다. 어릴 적에 그런 친구들이 한 명씩은 있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생각하며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다”고 했다. 드라마는 세 명의 서사를 모두 비중있게 다룬다. 유 감독은 “드라마인 덕분에 긴 호흡으로 세 명의 서사를 모두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범석은 원작과 가장 다른 캐릭터다. 원작에서는 한결같이 찌질하고 나쁜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드라마에서는 가장 감정 변화가 큰 인물이자 서사를 이끌어가는 ‘키맨’이다. 드라마는 수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훔쳐보거나, 즐겁게 떠드는 친구들을 지켜보며 소외감을 느끼는 장면 등을 통해 범석의 미묘한 감정을 드러낸다. 범석은 ‘왜 나 SNS 맞팔 안 해줬어?’라고 묻지 못하고 남탓을 한다. 범석이 집과 학교에서 당한 폭력이 열등감과 뒤섞여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진다. 유 감독은 “범석이 품은 감정은 한 줄기가 아니다. 여러 줄기의 감정이 꼬여있는 아이”라며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홍경 배우와 함께 현장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범석은 모두를 망치는 최악의 선택을 하지만, 시청자는 범석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펜타닐, 도박 같은 ‘요즘 애들’의 범죄를 다루면서 ‘요즘 애들 무섭다’로 흘러가지 않는 것도 이 작품의 미덕이다. 결국 아이들이 범죄에 손을 대는 건 길수(나철)와 같은 어른들 때문이다. 유 감독은 “요새 청소년들이 연루되는 범죄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통해서 알게 됐다. 실제 고등학생들을 만나 취재도 했다”며 “학생들은 똑같은 것 같다. 지금은 펜타닐이라면 옛날에는 본드 불고, 부탄가를 불었다. 지금이나 저 때나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는 학교 밖 청소년들도 비중있게 등장시킨다.
인물들이 하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잃어버리며 드라마는 끝이 난다. 유 감독은 “범석이도 영웅이라고 생각한다”며 “영웅의 필수조건은 ‘자기 희생’인 것 같다. 범석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죽여버린다고 해도 수호의 병원비 등 때문에 해외로 떠난다. 그것도 영웅의 행동 아닐까 한다”고 했다. 연시은에 대해서는 “1화를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소설 <데미안>의 구절로 시작했다. 이미 여러 작품에서 쓰인 문장이지만,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동양에는 비슷하게 ‘줄탁동기’라는 말이 있다. 새끼가 알에서 깨기 위해서는 엄마가 함께 알껍데기를 쪼아줘야 한다는 말이다. 수호가 시은이를 깨운 것 아닐까 한다. 비유들이 잘 맞았다”고 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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