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멘터리] '멀티버스' 영화는 공상일까 과학일까?

이주형 기자 입력 2022. 12. 4. 10:03 수정 2022. 12. 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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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53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과학 저술가인 브라이언 그린은 다음과 같이 "멀티 유니버스"라는 책의 서문을 시작합니다. 

"20세기와 21세기를 겪으면서 우리가 얻은 과학적 교훈은 너무나 자명하다. 자연의 실체는 일상적인 경험과 완전 딴판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실체가 우리의 경험과 다르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보는 게 보는 게 아니고, 진짜 이데아는 따로 있다는 플라톤의 얘기와 비슷한 걸까요?
 
* * *

     최근 극장가의 화제작은 한국 영화로는 "올빼미", 외화로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가 꼽힙니다. 특히 예술 영화로 분류된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35만 명을 동원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흥미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영화의 특별판(이지만 사실상 같은 작품인)인 "양자경의 더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지난 주 추가 개봉하면서 "에브리씽-"”과 "양자경-"이 지난달 25,28,29일에 동시에 흥행 톱10 안에 나란히 자리한 겁니다. 

"에브리씽-"의 인기 비결은 아무래도 SF, 액션, 코미디, 드라마가 뒤섞인 '멀티버스(Multiverse)' 영화라는 점입니다. "에브리씽-"은 대규모 VFX 작업을 거친 마블 스타일의 멀티버스가 아니라 저예산으로 기발하게 B급 정서의 멀티버스를 구현했는데 이 점이 오히려 관객들을 웃고 울리는 촉매가 되고 있습니다.

"양자경의 더 모든 날 모든 순간" 포스터

그런데, 우리 말로는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로 불리는 멀티버스를 일상적인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없지요. 그렇다면 멀티버스는 과학적 근거가 전무한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요? 앞서 브라이언 그린의 말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자연의 실체는 일상적인 경험과 완전 딴판이라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멀티버스 이론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브라이언 그린만 해도 '누벼이은 다중우주', '인플레이션 다중우주',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등 9개의 이론으로 분류하고 있고요, MIT 물리학 교수 맥스 테그마크는 "맥스 태그마크의 유니버스"란 책에서 4가지 레벨의 다중우주 이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에브리씽-"과 "닥터스트레인지"같은 마블 영화가 기반한 멀티버스는 '양자역학의 다세계해석'에서 비롯된 이론입니다.

양자역학도 어려운데 다세계해석은 또 뭐냐구요? 거칠더라도 최대한 단순화해서 설명해볼테니 따라와주세요. (사실 양자역학이나 다세계해석은 이해하기 힘든 게 자연스럽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 딴판이니까요!) 

먼저 양자역학입니다. 100년 전 탄생한 양자역학은 마치 천동설을 무너뜨린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처럼 뉴턴 이래 고전역학의 결정론을 무너뜨렸습니다. 고전역학은 물체의 위치와 속도 등 현재 상태를 알면 그 물체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있다고 보지만, 양자역학은 물체가 이리로 갈 확률 몇 퍼센트, 저리로 갈 확률 몇 퍼센트 등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여기 100개의 상자가 있고 100명의 관측자가 있다고 칩시다. 물리적 조건이 똑같은 모든 상자 안에는 전자가 하나씩 들어있습니다. 일정 시간이 흐른 뒤 관측자들이 상자 뚜껑을 열어 전자의 위치를 확인합니다. 고전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모든 상자에서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의 위치는 제각각입니다. 어떤 전자는 상자 우상단에, 어떤 전자는 상자 좌하단에 있습니다. 상자를 열어서 '관측'해보면 전자의 위치는 매번 달라집니다. 아니 그럼 너클볼도 아니고 도대체 우리는 물체가 어디로 움직일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물체의 운동 예측도 불가능한 게 무슨 과학이냐? (라는 얘기가 들리는 듯 합니다)

양자역학은, 실험을 반복하면 예를 들어 전자가 75%의 확률로 우상단에, 15%의 확률로 좌하단에, 10%의 확률로 중앙에 있다는 것을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다고 계산합니다. 이것이 바로 실제로 미시세계가 움직이는 현.실.이자 과.학.입니다. 그런데 상자를 열어서 '관측'하는 순간 파동함수가 붕괴하면서 이른바 '중첩 상태'에 있던 전자는 하나의 위치로 결정됩니다. (양자역학에 대한 표준해석)

양자역학과 관련한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래픽 이미지


휴대폰, TV, 컴퓨터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현대 문명의 이기들이 전부 다 이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직관적인 인식으로 이해가 힘들지만 원자보다 작은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의 세계까지 포괄합니다. 여전히 이해가 어렵다고 해도 절망은 금물입니다. 천재의 대명사인 아인슈타인마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양자역학의 확률론을 끝까지 부정했으니까요. 

그런데 '코펜하겐 해석'이라 불리는 양자역학의 표준해석에는 구멍이 하나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여러 곳에 '중첩상태'로 분포하던 전자의 위치가 관측하는 순간 하나의 위치로 결정된다면 나머지 나타날 수 있었던 (확률적) 가능성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냐는 거죠. "세상물정의 물리학",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를 쓴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았습니다. 

"우주가 중첩 상태로 있지만 매번 어떤 선택에 의해서 우주는 딱 한 길로만 따라간다는 것이 양자 역학에서의 표준해석이에요. 그런데 그 저를 포함한 일부 물리학자들이 이 해석에 대해서 느끼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어요. 전자 같은 입자는 여기 있을 수도 있고 저기 있을 수도 있고 뭐든 가능한 상태의 중첩으로 있어요. 그런데 만약에 펼쳐져 있는 양자역학적인 상태의 크기가 백 광년이라고 가정을 해봐요. 표준해석에서는 백 광년의 거리로 엄청나게 펼쳐져 있는 양자역학적인 상태를 측정하면 그 순간 거대하게 펼쳐져 있던 양자역학적인 상태가 딱 한 점으로 모이게 돼요. 그걸 파동함수가 붕괴했다고 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거예요. 백 광년 떨어져 있을 정도로 멀리 펼쳐져 있던 양자역학적인 상태가 우리가 관측했다는 것에 의해서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약간 묘한 느낌인 거죠. 하지만 그게 표준 해석이에요."

바로 이 지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세계해석(Many Worlds Interpretation)'이 등장합니다. 1956년 프린스턴 대학의 대학원생이었던 휴 에버렛이 제안했던 이 해석은 관측하는 순간 하나의 결과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결과들이 각자 분리된 우주에서 모조리 실현된다고 주장합니다. 멀티버스가 탄생하는 거죠. 김범준 교수의 설명 들어보시죠.

"예를 들어 동전을 던지면 앞면 아니면 뒷면이 나오잖아요. 다세계해석에서는 동전을 던졌을 때 내가 앞면을 보면 나는 동전이 앞면이 나온 우주로 분기한 거고, 동전의 뒷면이 나온 우주에도 또 다른 내가 있는 거죠. 다만 평행우주들은 서로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어요. 그런데 '에브리씽-'이란 영화가 기발한 게 그거죠. 평행우주 사이를 넘나들 수 있다고 설정한 거예요."

김 교수에게 양자역학과 달리 검증도 반증도 불가능한 다세계해석을 과연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읽은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라는 책에서는 사고 실험을 하나 제안해요. 다세계해석이 맞다는 걸 우리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어떤 분이 매주 로또를 사잖아요. 그런데 이번 주에 1등, 다음 주에도 1등, 그 다음 주에도 1등, 1년 365일 매주 로또 1등에 당첨됐어요. 그러면 그건 아주 높은 확률로 다세계해석이 맞다는 것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왜냐하면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무한히 작잖아요.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된 우주가 있고 그거 말고도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되지 않은 수백 만 개의 우주로 분기할텐데 만약 1등 담청이 여러 번 반복돼서 이어진다면 정말로 평행우주로 분기되는 게 맞고 어느 우주에선가는 내가 로또 1등에 일 년 내내 당첨되는 일도 가능한 거죠."

김 교수의 설명을 들어도 솔직히 황당무계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다세계해석은 현재 물리학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수십 년 동안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으나 "이론 자체가 너무 미묘하고 확인하기 어렵다"고 브라이언 그린은 책에 썼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미 사실로 입증된 이론"이라고 주장하고, 일각에서는 "대담하지만 수학적 근거가 없는 가설"이라고 주장해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라고 덧붙이면서요.

"양자역학 해석의 문제라고 부르는데요, 그 중 표준해석이 교과서에 등장하고 있는 코펜하겐 해석이고요 다세계해석은 교과서에 안 나와요. 그런데 최근에는 많은 아주 뛰어난 물리학자들조차도 '이게 맞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라는 고민을 시작하는 단계라고 보면 돼요."
 
김범준 교수는 다세계해석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바뀌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2~3년 전에 물어보셨다면 저는 '안 믿는다, 교과서에 나오는 코펜하겐 해석이 확실히 맞다. 그게 표준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약간 고개를 갸웃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저한테 다세계해석이 맞는 거냐 아니면 또 다른 해석이 맞는 거냐 물으시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코펜하겐 해석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것이 있다는 거에는 제가 동의하고 있는 거죠."
 
멀티버스가 아예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얘기가 아니었다니. 놀랍습니다. 양자역학도 놀랍고, 수학도 놀랍고, 이해가 잘 안 가는 저의 아둔함도 놀랍습니다.
 
* * *

     지난 1년 래 한국 영화 시장 흥행 톱 10안에는 두 편의 멀티버스 영화가 들어있습니다. 관객 7백55만 명을 동원해 3위에 올라있는 "스파이더맨:노웨이 홈"과 5백88만 명으로 6위를 기록한 "닥터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입니다. 아시다시피 둘 다 마블 영화인데, 마블은 2021년 시작한 페이즈4에서 2026년 페이즈6까지의 시기를 아예 '멀티버스 사가(Multiverse SAGA)'라고 명명했습니다. 마블 영화도 그렇고 "에브리씽-"도 그렇고 최근 멀티버스 개념을 탑재한 영화들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뭘까요.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심으로 미디어 시장이 빅뱅하면서 콘텐츠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에 있습니다. 스트리머마다 치킨게임하듯 가입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인데, 빠른 속도로 많은 화제작을 만들어서 저쪽 손님은 끌어오고 우리 손님은 계속 붙잡아둬야 하는 거죠. 사실 좋은 콘텐츠는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기획개발 과정이 오래 걸리는데 멀티버스 세계관이라면 이 기간도 최대한 단축하고 이야기의 가지를 치기도 수월해집니다. 예를 들어 아이언맨은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 죽었지만 다른 평행우주를 도입한다면 살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우주의 로다주는 늙어가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아이언맨 역할을 할 수 없겠지만요)

"닥터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포스터 중

또 멀티버스 세계관은 한번 발을 들여놓은 시청자나 관객들을 계속 붙잡아두기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관객 입장에서도 재미있게 보던 이야기를 보는 게 안전하니까요.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장민지 교수는 '멀티버스, 콘텐츠 IP확장을 위한 세계관 재생산 전략'이라는 논문에서 '스토리텔링에서 멀티버스 개념이 중요한 건,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나 에피소드로 확장되기만 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이야기를 활용하되 전혀 다른 이야기를 생산해낼 수 있는 전략을 차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마블 세계관 내에서는 완전히 완결된 서사가 없음을 뜻하'고 '완결되더라도 언제든 비/완결적 서사로 반복되어 변형될 수 있'다는 겁니다. 다세계해석은 무한한 평행우주를 가능케 하니까요.
 
* * *

"F=ma". 200년 넘게 물리학계를 지배했던 뉴턴의 고전역학은 100년 전 양자역학이 나오면서 물리학의 기둥 자리를 내줬습니다. 물론 지구와 달 같은 천체나 실생활에서 야구공 같은 물체의 운동은 여전히 고전역학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원자, 전자같은 미시세계는 고전물리학의 법칙이 통하지 않습니다. 양자역학으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뉴턴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나는 해변가에서 노니는 소년일 뿐이었다. 놀다가 매끄러운 조약돌이나 예쁜 조개 껍질을 발견하곤 기뻐했지만, 내 앞에 놓인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미지의 세계였다."

우주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해볼라치면, 우리 인간은 아직 모르는, 끝내 모르고 말 섭리가 정말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것 같은 막막함이 밀려옵니다. 그걸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과학자이고 철학자입니다. 김범준 교수는 말합니다.

"과학자들에게 과학이라는 것은, '우리 서로 안 믿기로 해요'가 기본이거든요. 어떤 사실이나 주장도 주장 자체로 믿는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과학은 의심하는 것, 실험과 제 3자의 검증을 거치지 않는 주장은 믿지 말자 라는 게 공통된 생각이에요. 그런데 일반인들은 과학이라고 하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어서 그게 좀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과학이라는 건 신뢰할 수 있는 정도가 굉장히 다양한 여러 지식의 체계거든요."
 
그러니 우리는 섭리 앞에, 진리 앞에, 사실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아주 분명하게 보이는 세계도 미시세계로 들어가면 모든 것은 확률일 뿐입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어느 평행우주에서 바위로 태어난(우주 탄생기에 아주 미미한 조건 하나만 바뀌었어도 인류는, 아니 생명은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주인공 에블린 역을 맡은 양자경과 딸인 조이는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김범준 교수도 이 대사가 인상 깊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새로운 발견은 우리가 얼마나 작고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일깨울 뿐이야."
(Every New Discovery Is Just A Reminder—We're All Small And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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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joo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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