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수의 삼라만상 94] 고독은 인생의 달콤한 양념

정리=박명기 기자 2022. 12.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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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중국에서 하던 마지막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돌아왔다.

급하게 사무실 책상 하나만 빌려 쓸 수 있냐?고 주변에 부탁했지만 여의치 않아 서울 신도림 다리 건너 독서실에서 한 달을 생활한 적이 있었다.

아내에게는 다른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한다며 숨기고 독서실에서 온종일 시나리오 쓰고 책만 읽다가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듣는데, 김민기의 '봉우리' 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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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중국서 귀국한 후 신도림 독서실서 들은 노래 '봉우리' 추억

12년 전 중국에서 하던 마지막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돌아왔다. 급하게 사무실 책상 하나만 빌려 쓸 수 있냐?고 주변에 부탁했지만 여의치 않아 서울 신도림 다리 건너 독서실에서 한 달을 생활한 적이 있었다. 

아내에게는 다른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한다며 숨기고 독서실에서 온종일 시나리오 쓰고 책만 읽다가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듣는데, 김민기의 '봉우리' 가 흘러나왔다. 

시간은 겨울로 접어들고 살얼음이 얼어가던 시기였다. 신세가 처량했는지 노래 '봉우리'를 들으며 누가 들을까 봐 칸칸이 막은 독서실 작은 책상에 엎드려 몰래 입을 막고 울던 기억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안될까?" 사람들에게 대한 실망과 자책 그리고 만들다 만 시간에 대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김민기의 노랫말에 "내가 보았던 봉우리가 아닌 그저 작은 언덕이었던..." 지금 생각해보니 그 노랫말에 힘들여 보낸 시간을 지우려고 했나 보다.

그 이후로도 많은 봉우리를 보았고 오늘도 봉우리를 오르고 있다. 노랫말에 봉우리를 넘어가면 바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라고 하는데, 언젠가는 바다를 보겠지.. 하며 노래에 기억을 묻었다.

이제 다시 겨울이다. 그때의 겨울만큼 내 마음은 나를 지켜준 이들이 있기에 춥지 않다.  결국 봉우리에 털썩 주저앉아 쉬면 그만인데 왜 수 많은 봉우리를 왜 오르려 했을까. 

삶 속에 바퀴 빠진 이야기 서너 개 정도 가져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된다. 편안한 길만 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주변을 돌아보니 그때 봄날이었던 사람들이 차가운 겨울을 맞고 있고, 차갑게 얼었던 사람 중에 봄날로 해빙기에 서 있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주 다녀온 바다, 푸른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지나간 시간도 어려움도 모두 삶 속에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을 거라며, 여물지 않은 상처들을 모아 우도의 봉우리에 담아 묻었다. 

그 때의 작은 독서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혼자 미소가 지어진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 한 달간의 고독이 이렇게 달콤한 양념이 되어 인생에 맛을 더해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만화가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30년 넘게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자신의 원작 OTT 애니메이션 '알래스카'를 영화사 '수작'과 공동으로 제작 중이며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다. 그림과 글과 엮어낸 산문집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2022년 1월 출간했다.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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