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보물’은 어떻게 한국 관람객을 매료시켰나

김찬호 기자 2022. 12. 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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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6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매표소 앞 전경 /김찬호 기자

[주간경향] 유럽을 지배한 왕가의 역사가 한국에서 ‘재탄생’했다.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만날 수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의 이야기다. 역사를 미술, 조각 등의 예술품으로 만나는 경험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의 주요 전시물 96점을 통째로 한국으로 옮겨왔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라는 이름의 전시는 지난 10월 25일 시작했다. 주간경향 역시 1501호에서 이를 소개한 바 있다. 한 달여나 지난 시점에서 해당 전시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합스부르크전이 ‘이례적인’ 흥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최 측인 국립중앙박물관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현장에서 표를 사면 입장 가능했던 전시는 30분 단위로 회차를 구분해 입장객 수를 제한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회차별 입장 가능한 인원은 150명이다. 사전 인터넷 예매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현장 판매분을 구매해야 한다. 이에 따라 입장권 현장 판매를 시작하는 오전 10시 무렵이면 매표소 앞에 긴 줄이 늘어선다.

합스부르크전의 이례적인 흥행은 몇가지 궁금증을 만든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최고의 예술품들은 어떻게 한국에 왔을까”, “전시품 선정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이 정도 규모의 전시는 어느 정도 예산이 들어갈까” 등이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지난 11월 26일, 28일 두차례 방문했다.

취재는 일반 관람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진행했다. 당연히 매표소에서 줄을 서고 정해진 시간에 입장했다. 다만 하루에 판매하는 표가 한정돼 있었다. 박물관 측에서 “취재를 위해 허용된 방법을 이용하지 않고, 한정된 현장판매표를 구매하는 것이 오히려 관람객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매표소 앞까지 줄을 섰고, 표는 구매하지 않았다.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기자의 ‘어설픈’ 감상은 배제했다. 대신 합스부르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한 양승미 학예사의 ‘기획의도’와 ‘이것만은 꼭 시간을 들여 감상하라’는 추천작품만 소개한다. 해당 추천작품 중에는 이동 동선 때문에 관람객들이 놓치기 쉬운 작품도 있으니 반드시 확인해보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박물관 협조를 구해 전시작품 사진은 최대한 많이 촬영했다. 합스부르크전의 성인 한 사람 입장권 가격은 1만7500원이다. 연인들이 관람하고자 하는 경우 최소 3만5000원이 든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하면 자녀 연령에 따라 최소 4만7000원에서 최대 7만원까지 지불해야 한다. 부담되는 가격이다. 게다가 전시는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만 열린다. ‘입장료가 비싸서’, ‘서울에 살지 않아서’ 관람이 힘든 분들과도 전시를 공유하고자 했다.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의 긴 역사만큼 전시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았다. ‘숨겨진 이야기’들은 전시를 더욱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게 도울 것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왼쪽)와 그의 황후 ‘엘라지베트(시시)’ /김창길 기자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의 ‘재탄생’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요 활동 무대는 현재의 오스트리아다. 1892년 조선과 수교를 맺었기 때문에 올해가 한-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이다. 처음 합스부르크전 이야기가 나온 것도 양국 수교를 기념하자는 취지였다. 지난해 초 오스트리아 대사관이 제안했고, 빈미술사박물관이 참여하며 논의가 진척됐다. 공익 차원의 일인 만큼 국립중앙박물관도 적극 참여했다. 문제는 전시 작품의 선정, 규모, 세부일정 조정 등의 지난한 작업을 누가 담당할 것이냐였다. 양승미 학예사가 이 복잡한 업무를 맡았다.

합스부르크전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한국인에게 합스부르크 왕가가 익숙하지 않다. 유럽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문이라는 점 외에 ‘무슨 무슨 몇세’로 이어지는 족보와 시대상까지 파악하고 있는 이는 드물다. 생소함은 전시를 지루하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한국으로 들여올 수 있는 작품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양 학예사는 “빈미술사박물관은 임대 가능한 70여점의 소장품을 번호를 매긴 목록형태로 줬다. 이에 대한 정보를 찾아 시대순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작품이 갖는 의미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나하나 해야 했다”고 말했다.

양 학예사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공부하는데 꼬박 1년여를 쏟아 부었다. 이 과정에서 성과도 생겼다. 우선 작품 70여점으로는 제대로 된 전시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빈미술사박물관을 설득해 최종 96점을 들여올 수 있었다. 또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자 홍보 포스터에도 쓴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를 받아올 수 있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숨어 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왼쪽)과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두 작품 모두 1656년 작품으로 전문가들은 동시에 그렸을 가능성을 제기한다./프라도 미술관, 김창길 기자

작품의 주인공인 테레사 공주는 어릴 적 페르디난트 3세의 아들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하기로 정해졌다. 며느리가 될 테레사 공주가 잘 성장하는지 궁금했던 페르디난트 3세는 벨라스케스에게 테레사 공주를 그리게 했다. 그 결과 테레사 공주의 3세, 5세, 7세 시절의 초상화가 만들어졌다. 현재 빈미술사박물관 전시 중인 작품들이다. 본래 빈미술사박물관은 테레사 공주의 3세 무렵 그림을 제안했다. 양 학예사는 5세 무렵 그림으로 바꾸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이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벨라스케스의 또 다른 작품 ‘시녀들’ 속 공주가 5세 무렵 테레사 공주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작품은 모두 1656년에 그려졌다. 결국 전시에는 테레사 공주의 5살 무렵을 그린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가 걸렸다. 양 학예사는 “관람객들이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것, 더 의미가 있을 만한 것을 들여오기 위해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현실적 난관도 해결해야 했다. 전시 수준의 향상은 곧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이는 곧 입장권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전시는 수익 사업이 아니다. 입장권 가격을 낮추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고, 손실이 크게 나지 않는 범위에서 가격을 정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지불 비용과 세부항목은 협약에 의해 공개가 불가능하다. 다만 이번 전시 목표 관람객은 26만명이다. 성인 입장권 가격은 1만7500원이다. 해당 정보들을 토대로 전시에 들어간 예산은 대략 추정해볼 수 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왼쪽)와 그의 첫 번째 왕비 ‘엘리자베트’/김창길기자

합스부르크전은 11월 말 기준 8만여명이 관람했다. 1일 평균 관람객 수는 2200여명이다. 2023년 3월 1일까지 전시가 열리는 만큼 목표치를 뛰어넘는 흥행이 유력한 상황이다. 특히 개막식에 참석한 사비나 하그 빈미술사박물관 관장은 “해외에서 열린 합스부르크전 중 가장 좋았다”고 평가했다.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번 전시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내세우고 있지만,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왕가의 역사’가 아닌 ‘수집의 역사’다. 왕들에 대한 역사적·정치적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빈미술사박물관과 달리 국립중앙박물관은 오직 예술적 관점에서 시대를 재편집했다. 정치적 평가가 좋지 않은 루돌프 2세를 수집가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식이다.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을 ‘재탄생’시켰다는 말에는 이러한 의미가 포함돼 있다.

전시장을 찾는 것은 단순히 ‘진품’을 보기 위함만은 아니다. 오히려 본질은 여러 작품을 연결하고 배치해 새로운 의미를 만든 전시기획의 ‘독창성’에 있다. 합스부르크전이 많은 관람객을 모으고,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는 것 역시 기존 역사를 분리하고 재조립해 만든 전시의 ‘독창성’에 있다.

■전시품을 공부하고 가야 하나

그렇다면, 이번 전시를 이해하기 위해 별도의 공부를 해야 하는걸까. 그렇지 않다. 1부, 2부 하는 식으로 전시가 구분돼 있지만 반드시 순서를 지켜 관람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전시품을 알고 관람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양 학예사는 “전시를 관람할 때는 전시품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며 “해당 작품의 역사적 의미나 가치 등에 대해서는 나중에 도록 검색 등을 통해 확인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시장을 갈 때면 불현듯 스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 이에 설명을 듣고 난 후 비로소 보이게 된 것들과 ‘이것 만큼은 꼭 감상하라’는 양 학예사의 추천작품을 준비했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합스부르크 가문 문양과 A,E,I,O,U 암호문 /김찬호 기자

우선,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독특한 문양과 세로로 쓰인 A, E, I, O, U라는 문자다. 해당 문양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고유 상징이다. 암호 같은 문자는 실제로 합스부르크 가문이 남긴 각종 문서, 물건 등에 등장하는 것이다. 문자는 어떤 문장의 첫머리글자라는 해석이 많은데 Austria Est Imperatre Orbi Universae(라틴어 ‘오스트리아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가 가장 유력하다. 입구부터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신감을 소개함과 동시에 얼마나 대단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관람객의 기대감을 키운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서 전시 중인 갑옷들/김창길 기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곧바로 눈에 띄는 것은 각종 갑옷이다. 갑옷 표면에 새겨진 문양과 섬세한 주름이 마치 아름다운 의복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갑옷은 당시 유행한 ‘패션’을 반영하고 있다. 생각보다 갑옷이 불편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설명 영상도 있다. 갑옷을 단순히 몸을 보호하는 도구가 아닌 미적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다.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독수리 장식 갑옷(왼쪽)과 루돌프 2세의 ‘리본 장식’갑옷. / 김창길 기자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독수리 장식 갑옷. 현존하는 르네상스식 갑옷 중 가장 크다. /김창길 기자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전시장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루돌프 2세의 수집품이 전시된 공간을 감싸는 음악은 실제로 당시 궁정 악장이었던 필리프 드 몽테의 미사곡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품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앞에서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흘러나온다. 루벤스의 작품은 별도의 공간에 전시돼 있다. 그림을 비추는 조명 외에 빛이 없기 때문에 바로크 음악을 감상하는 기회로도 활용해볼 수 있다. 또 오스트리아 쇤부른 공전을 테마로 한 공간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곳에는 하이든의 48번 교향곡 2악장이 흘러나온다. 실제로 하이든이 마리아 테레지아를 위해 작곡한 헌정 교향곡이다. 이처럼 전시장 곳곳에 감상을 위한 보조장치들이 숨어 있다.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로 보낸 조선의 투구와 갑옷/ 김창길 기자

전시장 끝에는 특별한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로 보낸 조선의 투구와 갑옷이다. 조선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교를 기념하는 역사적 증표다. 투구 앞면에는 발톱이 5개인 용이 있고 뒷면에는 봉황 무늬가 있다. 양 학예사는 “합스부르크 600년과 우리 민족과의 교차점을 알리고 싶었다”며 “투구와 갑옷 역시 요제프 1세의 주요 수집품으로 분류돼 높이 평가받는 예술품”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초입의 합스부르크 왕가 갑옷과 비교해보아도 좋다.

■‘이것만은 놓치지 말자’ 양승미 학예사 추천작품

#1 루돌프 2세의 ‘십자가 모양 해시계’

김창길 기자

크기는 작지만 이 해시계에는 시각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3가지나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뒷면에 있는 12가지 별자리와 도시의 위도 정보로 일출과 일몰 시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측면에 숫자가 새겨진 9개의 눈금이 있는데 해가 뜨고 지면서 만들어진 그림자와 눈금이 닿는 위치가 시간별로 달라집니다. 즉 눈금에 닿는 그림자를 통해 시각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면 디스크에 0도부터 360도까지 기록된 지명의 시각을 알 수 있습니다. 디스크를 잘 보면 비엔나, 프라하도 보이고요. 360도 위치에는 카나리아 제도가 있습니다. 스페인 사라고사, 튀르키예 이스탄불, 케냐 몸바사, 이란 호르무즈해협 등 16세기 대항해 시대 항로로 이용된 도시들이 새겨져 있어 각 도시의 시간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십자가 모양 해시계’는 예술, 수학, 과학, 기술의 결합체입니다.

#2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야자열매 주전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은 취향이 독특해 세계적으로 희귀한 소재의 예술품을 많이 모았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야자열매 주전자와 잔입니다. 야자열매는 16세기 바다에 둥둥 뜬 채로 유럽 사람들에게 처음 발견됐습니다. 치유에 효능이 있다는 둥 여러 속설이 퍼지면서 굉장히 귀한 소재로 각광받았어요. 특히 야자열매를 소재로 해서 금세공을 추가한 공예품은 상당히 고가에 거래됐고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귀한 예술품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이런 야자열매를 소재로 한 공예품이 총 6점 남아 있는데 그중 2점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게 됐습니다.

#3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김창길 기자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어머니는 페르디난트 3세 황제의 딸이었습니다. 즉 오스트리아 황제가 테레사 공주의 외할아버지였는데요. 그런데 테레사 공주는 페르디난트 3세의 아들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즉 자신의 외삼촌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 셈이죠. 그래서 페르디난트 3세는 손녀이자 며느리가 될 테레사 공주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벨라스케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는데 빈미술사박물관에는 테레사 공주의 3세, 5세, 7세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습니다. 그중 5세의 테레사 공주를 선보이게 됐습니다.

#4 피터르 파울 루벤스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김창길기자

바로크 미술의 거장 피터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그리스로마신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졌어요. 주피터와 머큐리, 즉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프리기아라는 마을을 찾았습니다.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허름한 나그네들을 문전박대했지만 오로지 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만이 이들을 정성껏 대접해주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가장 좋은 포도주와 과일을 내왔는데요, 아무리 포도주를 따라도 그 양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필레몬이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눈앞의 사람들이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바우키스는 거위라도 잡아 신들에게 대접하려 하지만 주피터는 한 손을 들어 제지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이야기를 한 화폭에 녹여낸 것은 루벤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장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 역동적으로 표현해내는 것, 이 작품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루벤스의 진가입니다.

#5 18세기 궁정행사의 기록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김창길기자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약혼 축하 연회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작센의 공작 알베르트와 연애결혼을 하고자 했으나 아버지 프란츠 1세는 이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1765년 프란츠 1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약혼식은 이듬해에 이루어졌습니다. 연회장 뒤에 쳐진 검은 천막은 프란츠 1세를 추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행사의 목적은 황실의 가족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운데 ㄷ자형 테이블에는 12명의 황실 가족들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1번부터 12번까지의 명단도 작성돼 있습니다. 중앙에는 프란츠 1세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제프 2세 부부가 앉아 있고 왼편에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사람이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입니다. 이 자리에는 2코스에 76가지 음식이 나온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로 음식을 먹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합스부르크전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지난 11월 26일 방문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매표소 앞 모습. 오전 10시임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다./김찬호 기자

지난 11월 26일 아침,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앞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10시 정각이었다. 현장티켓판매라는 알림판이 있는 곳까지 줄은 이어져 있었다. 줄의 끝에서는 매표소가 보이지도 않았다. 표를 사는 곳까지 이동하는 데 35분 남짓 걸렸다. 판매원이 “11시 입장권이 구매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주말 전시관람을 목표로 한다면 오전 10시까지는 매표소로 가는 것이 좋다. 정해진 인원수를 초과해 표를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늦게 갈수록 입장 가능한 시간이 뒤로 밀린다. 실제로 이날 정오 무렵, 매표소에 다시 물었더니 “오후 4시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표를 사고도 약 4시간 가까이 입장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11월 26일 방문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매표소 앞 모습. 약 35분 정도 줄을 선 뒤에야 매표소 앞까지 갈 수 있었다./김찬호 기자

기획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면 입장권을 확인하는 별도의 책상이 있다. 매 시각 30분 이곳에서 표를 확인하고, 함께 입장하는 방식이다. 한쪽 편에는 100개의 물품보관함이 있다. 두꺼운 외투와 가방은 이곳을 이용하면 된다. 무료다. 물품보관함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이다. 물품보관함에 붙은 검은색 도어를 손으로 쓸어내리면 숫자가 나타난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 전시되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안에는 두꺼운 외투, 가방을 넣을 수 있는 보관함이 100개 마련돼 있다./김찬호 기자

또 다른 한편에는 전시를 설명해주는 오디오가이드가 있다. 저녁 9시까지 관람시간을 연장하는 수, 토요일 기준 대여는 전시 종료 1시간 전인 오후 8시까지 가능하다. 반납은 전시 종료 15분 전인 오후 8시 45분까지 해야 한다. 이용료는 3000원이다. 타인이 사용한 오디오, 이어폰 등에 거부감이 든다면 본인 스마트폰으로 ‘가이드온’ 앱을 미리 다운받고, 전시탭에서 합스부르크전을 선택해 이용하면 된다. 앱을 이용해도 비용은 3000원으로 동일하다.

전시품을 보기 위해 전시장 안에서도 긴 줄이 늘어선다./김찬호 기자

관람객들이 몰리는 만큼 전시실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줄이 형성된다. 전시실 안에서는 굳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타인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이동해도 된다는 뜻이다. 줄이 형성되는 것은 한 작품도 놓치지 않고 보려는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문제는 줄을 서다 보니 이동 과정에서 적체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특히 해당 전시는 플래시&보조광만 사용하지 않으면 촬영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날 96점의 전시품을 모두 촬영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꼼꼼하게 전시품을 보려면 전시장을 모두 도는 데 최소 1시간 30분 정도는 서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입장 전 화장실 이용은 필수다. 전시실 앞쪽에선 관람객들이 줄까지 서며 꼼꼼하게 관람했지만, 뒤로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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