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놀라는 반전의 모과나무…못 생긴 열매 향·약효,꽃 일품[정충신의 꽃나무카페]

정충신 기자 2022. 12. 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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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는 모과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봄철 연한 홍색 꽃에 빗방울이 맺혀 눈부시다. 2020년 4월18일 촬영
서울 용산 대통령실의 모과나무에 빗방울이 맺혀 있다.2020년 4월 18일 촬영
모과나무 줄기 껍데기 호피(虎皮) 무늬는 매혹적이다. 2021년 4월16일 촬영
서울 용산 대통령실의 모과나무 꽃이 피어있다.2021년 4월16일 촬영
서울 용산 국방부 영내 우람한 모과나무에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2020년 11월23일 촬영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형제상 옆 모과나무에 봄철 꽃이 피어있다. 실향민이 키우다가 기녀모간에 기증한 것이다. 2021년 4월12일 촬영

정호승 시 ‘모과’ "썩어가며 나는 모과향은 모과의 영혼의 향기"

호성과(護聖果), 목과(木瓜), 목리(木梨), 만수과(萬壽果) 별명

천연 방향제…기관지 보호, 근육 이완, 피로 해소, 항균, 항산화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가을 창가에 노란 모과를 두고 바라보는 일이/내 인생의 가을이 가장 아름다울 때였다/

가을이 깊어가자 시꺼멓게 썩어가는 모과를 보며/내 인생도 차차 썩어가기 시작했다/썩어가는 모과의 고요한 침묵을 보며/나도 조용히 침묵하기 시작했다/썩어가는 고통을 견디는 모과의 인내를 보며/나도 고통을 견디는 인내의 힘을 생각했다/모과는 썩어가면서도 침묵의 향기가 더 향기로웠다/나는 썩어갈수록 더 더러운 분노의 냄새가 났다/가을이 끝나고 창가에 첫눈이 올 무렵/모과 향기가 가장 향기로울 때/내 인생에서는 악취가 났다>

정호승 시인이 지난 10월 등단 50주년을 맞아 낸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창비)에 나오는 시 ‘모과’다. 모과는 썩으면서 달콤한 방향물질을 내뿜는다. 열매를 먹고 씨앗을 퍼뜨려 줄 동물을 유혹하기 위한 모과의 종 보존 전략이다. 시간이 지나면 향을 내는 정유 성분이 밖으로 나오면서 표면이 끈적거리고 향이 더 짙어진다.

시인은 "썩어가는 모과향은 모과의 영혼의 향기다"고 했다. 그는 어느 가을날 집 앞 나무에서 떨어진 모과를 주우면서 시인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가지에서 떨어졌다는 건, 모과 입장에선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향기를 내뿜죠. 시인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육신이 썩어 문드러져도 제가 남긴 시에선 계속 향기가 나기를 꿈꾸는 거죠."

모과는 강원·경북 지역에서 ‘모개’라는 사투리로 통한다.

<모과나무 아래 서면/쪽찐머리 서리 허연 할머니가 보인다/할머니의 가래 썩인 동요가 들려온다//‘울퉁불퉁 모개야 아무 따나 크그라’/할머니를 따라 배운 어머니의 동요/시인 나를 키운 자장가가 들려온다//서릿바람 마주 서서 당당하던 할머니/북풍에 문풍지 우는 밤도 겁 안내던 어머니/키가 작아서 담이 큰 이 땅의 아낙들의/달콤새콤 그윽한 모과 향내 풍겨온다//모든 아픔을 고쳐주고 낫게 하는/어머니란 이름의 한국여성과 그 향기여//‘울퉁불퉁 모개야 아무 따나 크그라’/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가 즐겨 부른 옛 동요가/까맣게 잊었던 쉰 목소리 그 자장가/시인 나를 키운 새콤한 그 노래여>

경북 안동 출신 유안진 시인의 ‘모과나무 아래 서면’이다. 유아사망률이 높던 시절,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손주들이 ‘아무렇게나(아무 따나)’ 건강하게만 잘 자라고 살아남아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못생긴 모과나무에 비유했다. 잘 생기고 귀엽다고 하면 병마에 걸리거나 해코지 당할까봐 노파심에서 손주들을 울퉁불퉁 못생긴 모과나무에 비교한 것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모과는 울퉁불퉁한 외모에 단단하고 떫은 과육, 시큼털털한 맛을 가지고 있어 한 번 맛보면 인상을 찌푸리기 쉽지만 알고 보면 모과는 향기부터 효능까지 우려낼수록 매력이 넘치는 과일이다. 모과나무는 겉보기에 못생겼지만 단단하고 향기가 좋고, 한약재로 쓰인다. 수백 년 장수하는 모과나무는 쓰임새가 무척 많은 나무다.

모과가 울퉁불퉁하고 흠집이 많은 것은 향나무에 기생하는 나방의 애벌레 때문이라고 한다. 애벌레는 모과 속에서 즙액과 과육을 먹으며 자르는데, 모과는 벌레가 먹은 수액과 과육을 보충하며 크기 때문에 벌레가 기생하는 쪽으로 툭 불거진다고 한다. 벌레가 성충이 돼 모과를 뚫고 향나무에 가서 번데기가 되고 나방이 돼 다시 알을 낳으러 모과를 찾아온다. 모과는 애벌레가 뚫고 나간 구멍을 메우며 노랗게 익어가고, 상처를 단단히 메우기 때문에 벌레가 먹었던 자리는 칼이 안 들어갈 정도로 단단해진다. 그러니 향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모과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흠이 없이 매끈하고 곱고 예쁘다고 한다.

모과를 처음 볼 때 4번 놀랐다고 한다. 고운 꽃에 비해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모양의 열매가 달려서 놀라고, 못생겼지만 그윽한 향기에 놀라고, 향기가 좋으나 시고 떫은 맛에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 놀라고, 볼품없는 나무 외관이나 열매에 맛은 없으나 사람에게 아주 이로운 한약재로 쓰이는데 놀란다고 한다.

‘모과나무(Chinese quince)’는 중국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된다.나무 껍데기는 독특한 얼룩무늬 군복 또는 호피(虎皮) 무늬를 띤다. 모과나무는 4월 중순이나 5월에 연한 홍색의 꽃이 수줍은 듯이 핀다. 장미목 장미과의 꽃답게 다섯 장의 분홍색 꽃잎이 수더분하고 앙증맞은 ‘귀요미 홍장미’로 눈을 황홀하게 한다. 우람하고 큰 나무 덩치에 비해 꽃이 너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모과꽃의 진면목을 알고 나면 또한번 놀라게 된다. 가지에 듬성듬성 하나씩 달리는 꽃은 장미처럼 눈에 확 띄는 강렬한 색깔이 아니고 수더분한데다 강렬한 색감의 나무껍데기와 나뭇잎에 가려있고, 개화 기간도 짧은 편이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가을에 노랗게 익는 열매는 잎이 다 떨어진 10월 하순이면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모습이 적나라하다.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 모양이 참외 같다고 하여 ‘목과(木瓜)’라는 한자 이름을 얻었다. 목과에서 우리말 모과로 변했다.

향이 좋고 기침과 가래에 효과가 있는 모과는 차로 마시기에 좋다. 모과의 주요 효능으로는 기관지 보호, 근육 이완, 피로 해소, 항균, 항산화 등을 들 수 있다. 모과에는 비타민 C와 함께 사포닌, 사과산, 구연산, 플라보노이드 등이 많이 들어있어 피로 해소와 감기 예방에 효과를 보인다. 모과는 한방에서 약용으로도 사용하는데, 토하거나 설사할 때, 근육이 뒤틀릴 때, 소화 불량, 목덜미가 뻣뻣해져 옆으로 돌릴 수 없을 때, 각기병 등에 쓰인다.

모과 열매는 천연 방향제다. 바구니에 모과를 담아 방이나 차 안에 두면 은은한 향기에 상쾌한 기분이 든다. 모과의 향기는 모과 껍질의 미끈거리는 정유 성분 때문이다. 이 정유 성분에 있는 휘발성 물질이 모과의 독특한 향을 만들어내는데, 알코올, 테르펜(terpene), 에스터(ester) 등이 주성분이다. 테르펜은 침엽수에서 방출하는 피톤치드 성분 중 하나다. 상쾌한 향기와 함께 약리 효과를 가진 방향성 물질이다.

모과를 이용한 음식을 만들 때 모과 씨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모과 씨에는 아미그달린이라는 물질이 있는데, 아미그달린은 체내에서 시안화수소로 바뀐다. 시안화수소는 청산가리 성분으로 다량 섭취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독성 물질이다. 고열로 끓이거나 달여서 먹는 경우 아미그달린은 제거될 수 있지만, 되도록 씨앗은 제거하는 것이 안전하다. 모과는 색이 노랗고 붉은 기가 살짝 도는 것이 좋고, 향이 진한 것을 고르는 게 좋다.

모과나무 이름은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서 각각 다르다. 모과나무라는 이름 외에 호성과(護聖果), 목과(木瓜), 목리(木梨), 만수과(萬壽果) 등 여러 별명이 있다. 그 이름에 각각의 전설이 있다. 호성과는 노승과 같은 성인들을 보호하는 과일이라는 뜻이다. 목리는 향은 아주 좋았지만 시고 떫은 맛 때문에 아무도 먹지 않아 전부 버리는 과일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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