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에 3000원, 몸값 비싼 밥도둑…日미슐랭 셰프가 찾는 이 집 [백년가게]

김현예 입력 2022. 12. 4. 05:00 수정 2022. 12. 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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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예의 백년가게

「 시간의 힘, 믿으십니까. 백년을 목표로 달려가는 가게, 혹은 이미 백년을 넘어서 수백 년의 역사를 쌓은 곳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본 동네 곳곳에 숨어있는 ‘백년가게’를 찾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따끈한 밥 한 술을 꿀떡 넘어가게 만드는 이것. 어린 시절 겨울이면 밥상에 김치와 함께 소복이 올랐던 김이다. 고소한 들기름내가 풍기는 짭조름한 그 김의 추억을 다시 되짚어보게 된 건 순전히 한 노포 덕이었다. 일본 도쿄(東京) 츠키지(築地) 시장 인근의 마루야마노리점(丸山海苔店).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김 전문점으로, 올해로 168년을 맞은 곳이다.


김 한 장에 한국 돈 3000원, 일본 최고급 김


마루야마노리에서 가와노베 타쿠 부점장이 장갑을 끼고 시식용 김을 꺼내고 있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손님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난 10월 27일 오전 9시 반. 마루야마노리점을 찾아 호기롭게 ‘가장 좋은 김’을 보여달라고 하니 가와노베 타쿠(川ノ邊 拓·26) 부점장이 흰 장갑을 끼기 시작한다. 조심스레 김 포장지를 열더니 작은 스테인리스 집게로 시식용 김을 꺼냈다. 이렇게 신중에 신중을 기해 꺼낸 김 한 장을 부점장이 투명 유리 접시에 내어온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최상품 김 맛을 알려면 비교가 필요하다”며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상(上)품 김도 한 장 곁들여온다. 엄숙하고 진지하다 못해 마치 명품관에서 초고급 명품 가방을 대하는 기분마저 든다.

가와노베 부점장의 설명이다. “향이며 색감, 입 안에서 풀어지는 느낌, 두께, 식감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제품이라고 생각해요.” 마루야마노리점 츠키지 매장에 있는 김은 40여 종. 이 중 최상품으로 꼽는 초고가 제품이 바로 이것으로, 창업자 히코베(彦兵衛) 이름을 땄다. 일본 김 산지에서도 한 장당 값이 300엔이 넘으면 최고급으로 치는데, 이 제품은 5장 들이에 1600엔이니 장당 320엔. 한국 돈 약 3000원이니 극상품인 셈이다. 감칠맛이 깊고, 바삭한 식감이 일품이다. 입 안에선 금방 녹아버리는데, 은은한 향마저 돈다. 비교용으로도 내놓은 김 역시 뒤지지 않았다. 도톰한 데다 바삭한 식감이 강해 맥주 한 잔과도 잘 어울릴 법했다.

마루야마노리에서 최고가로 판매되는 김을 가와노베 부점장이 들어보이고 있다. 한 봉지에 1600엔으로 김 5장이 들어있는데, 한 장에 한국 돈 3000원이 조금 넘는다. 김현예 특파원

미슐랭 별들이 찾는 미식의 김


마루야마의 김은 일본에서도 김 산지로 꼽히는 3대 어장에서 자란 김을 쓴다. 아리아케(有明), 도쿄만(東京湾),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다. 산지마다 다소 특징이 다른데 아리아케산은 단맛이, 도쿄만에서 자란 김은 풍미가, 세토나이카이에서 채취한 김은 부드럽고 윤기가 난다. 수확한 제철 김은 현재는 공장에서 기계로 구워 다음날 바로 직배송을 하는데, 장인이 김 굽는 일을 담당한다. 아주 적은 양을 조금씩, 저온에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구워내는데, 당일 기온과 습도에 따라 굽는 방법과 시간이 다르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루야마 김은 일본에서도 유명 초밥집에서 쓰이는 고급품으로도 꼽힌다. 2021년 미슐랭 도쿄판에 오른 초밥집 30곳 중 60%가 이곳 김을 쓴다. 일본 전역에서도 이곳 김을 쓰는 음식점만 3000곳이 넘을 정도다.
마루야마노리 김을 사용해 실제로 요리사가 손님들에게 내고 있는 김 튀김. 사진 마루야마노리

‘깡통에 담긴 김’의 시작


처음부터 츠키지에 자리 잡은 건 아니었다. 1854년 전신인 가와구치야(川口屋)가 츠키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니혼바시(日本橋)에 문을 열면서 시작했다. 당시는 에도 시대로 서민들에게도 김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때였다. 니혼바시엔 김 도매집들이 몰려있었는데, 가와구치야도 그중 하나였다. 초대 사장 히코베는 애써 만든 맛있는 김을 잘 보관하는 방법을 골똘히 연구했다. 그러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수입품에 쓰이던 양철 깡통. 당시만 해도 일본에선 김을 항아리에 담아두었는데 깡통은 그에겐 획기적인 보관 도구였다.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할 수 있으니 김 맛이 쉽게 변하지 않았다. 운반도 편했다. 이렇게 히코베가 고안안 ‘깡통 김’이 널리 퍼지면서 도쿄에서 시작한 김은 교토까지 퍼지는 계기가 됐다.

김 이야기를 하던 가와노베에게 원래부터 김을 좋아했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는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다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자신은 일본 문화에 깊이 아는 것이 없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TV 광고 한 번 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곳”인 마루야마에 합류한 지 올해로 3년. 다양한 제품을 추천하거나 김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줄줄 읊을 정도가 됐다.

일본 도쿄 츠키지 시장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마루야마노리. 가와노베 부점장은 "다양하게 김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예 특파원

20대 청년인 그에게 200년을 향해 달려가는 마루야마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표정이 이내 진지하게 변한다. “김을 즐기는 데는 밥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가와노베의 김 이야기가 이어진다. “일본도 한국처럼 쌀밥 문화라서요, 김을 밥과 함께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그러다 김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요리사들이 속속 내놓기 시작하면서 김 특유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방법도 늘어나고 있어요.”

스마트폰으로 보여준 김 요리는 실제로 다채로웠다. 도톰한 김을 튀김으로 만들어 손님에게 내거나, 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게 김을 고명으로 담뿍 얹은 요리, 수프 형태로 따뜻하게 즐길 수 있는 요리 등 다양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다양한 김 개발이란 얘기도 했다. 소고기와 먹어도 뒤지지 않는 김, 튀겨도 맛이나 식감이 살아있는 김, 김만 넣어 끓이기만 해도 훌륭한 한 그릇의 국이 될 수 있는 것은 김의 진화 때문이라는 얘기다.

인터뷰를 마치고 몇주 뒤. 가와노베로부터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김 요리 사진 석 장이었다.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던 가와나베의 열정과 함께 마루야마노리점은 또 다른 백 년을 쌓아가고 있는 듯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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