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가 살아온 듯' 임윤찬 첫 일본 공연에 팬 열광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19세기 파리에서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의 연주에 여성들이 기절했다면, 21세기 도쿄에서는 임윤찬(18)의 연주에 일본 여성 팬들이 제대로 숨을 못 쉴 정도로 반했다.
3일 저녁 임윤찬의 첫 일본 공연이 열린 도쿄 산토리홀.
밖은 쌀쌀한 초겨울 날씨였지만, 공연장 안은 임윤찬의 열정적인 연주와 팬들의 열광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계적 권위의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은 이날 일본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열었다.
산토리홀 2천 좌석은 일찌감치 매진돼 일본에서도 그의 뜨거운 인기를 실감케 했다.
올랜도 기번스의 '솔즈베리 경의 파반&가야르드', 바흐의 '인벤션과 신포니아 중 15개의 3성 신포니아'(BWV787∼801), 리스트의 '두 개의 전설'과 '순례의 해 제2년 이탈리아' 중 '단테를 읽고: 소나타풍의 환상곡'이 그가 선정한 곡이었다.
그는 전날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레퍼토리 선택과 관련해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기번스와 바로크 음악의 가장 큰 뿌리를 내린 바흐, 피아노 리사이틀의 창시자인 리스트를 연주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산토리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임윤찬은 첫 곡으로 다소 짧게 느껴지는 기번스의 '솔즈베리 경의 파반&가야르드'에 이어 그가 경외심을 갖고 있다고 여러 번 밝힌 바흐를 연주했다.
임윤찬은 바흐 신포니아에 대해서는 "시적인 표현과 리스트가 보여준 엄청난 비르투오소(고도의 기교)가 담긴 아름다운 곡이고, 평소 잘 연주되지 않는 보석 같은 곡이라 고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바흐의 신포니아를 1번부터 15번까지 차례로 연주하지 않고 3번 이후는 순서를 바꿔 연주했다. 평소 존경한다고 밝힌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배치한 순서에 따른 것이다.
임윤찬은 리스트의 '단테를 읽고'에서는 자유로운 형식에 풍부한 악상을 지닌 작품에 맞춰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후 귀국 기자 간담회에서 "단테의 '신곡'은 여러 출판사의 번역본을 모두 구해서 읽었다. 유일하게 전체를 외우다시피 할 만큼 읽은 책"이라며 이 곡 연주를 위해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다고 밝힌 바 있다.
리스트의 곡을 연주할 때 그에게서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수줍은 듯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2천 명 관객 앞에서도 그의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쉼 없이 빠르게 움직였고 온몸이 들썩이고 숱 많은 머리카락이 튕겨 올랐다.
손이 움직이는 속도를 눈이 못 따라갈 정도의 현란한 기교를 선보이며 단테가 말한 지옥을 건반으로 그려냈다.
그의 연주에 관객들은 숨을 참았다가 건반을 치는 속도가 느려지고서야 겨우 조용히 한숨을 몰아 내쉬었다.
격정적인 연주가 끝난 뒤 많은 관객은 일제히 일어서 함성과 함께 힘찬 박수를 보냈다.
임윤찬은 총 9번의 커튼콜에 앙코르곡 한 곡을 선사한 뒤 제자리에서 360도를 돌며 모든 관객에게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70대 어머니와 함께 왔다는 오카모토(42) 씨는 연주회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나 "정말 대단했다. 드라마틱한 연주였다"며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오카모토 씨는 "사실 오늘은 초대를 받아서 임윤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왔는데 다음에 그의 연주회가 일본에 있으면 꼭 보러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공연장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도쿄에 사는 한국 교민과 임윤찬 공연을 보러 한국에서 일본을 찾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윤소미 씨는 "한국에서는 공연 티켓을 전혀 구할 수 없어서 일본 여행 겸 연주회에 왔다"면서 "임윤찬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이 격정적으로 연주할 때도 좋지만 서정적으로 칠 때도 좋다"고 말했다.
임윤찬은 내년 2월 하순 다시 방일해 사흘간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황제'를 협연한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부상으로 임윤찬은 3년간의 월드 투어 기회를 얻어 내년에 뉴욕과 런던, 파리 등 미국과 유럽 투어에도 나설 계획이다.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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