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숨진채 발견된 여고생...“우리 아들은 절대 범인 아니거든요”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2. 12. 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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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프레소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58] 영화 ‘마더’

청소년 성매매 범죄 소식은 공분을 일으킨다. 매수자에 대한 강경한 처벌이 합리적이라는 데에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 여론이 갈리는 지점은 성매매 피해 청소년에 대한 부분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제38조 1항에 따라 성매수 상대방이 된 아동·청소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데, 일각에선 이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영악한 청소년이 쉽게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 행위에 가담했다면, 매수자와 마찬가지로 처벌 대상이 돼야 맞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도준 엄마(김혜자)는 아들이 살인 누명을 썼다고 생각하고 진범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한국 사회에서 모성이 갖는 의미를 고민한 봉준호 감독 ‘마더’(2009)는 성매수 상대방인 청소년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영화 초반 살해당한 고등학생을 청소년 성매수 피해자로 설정하면서다. 마을의 남성들은 그녀에게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쌍방의 거래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마더’에서 여고생과 남성들은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거래’에 참여한 것일까.
경찰도 변호사도 믿지 못하는 도준 엄마는 스스로 아들을 보호하려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우리 아들이 범죄자일 리가 없다”는 맹목적 믿음

영화는 20대 후반 백수인 도준(원빈)이 살인범으로 지목되며 시작된다. 어느 날 같은 동네 고등학생인 문아정(문희라)의 시체가 건물 옥상에서 발견된 사건이다. 도준 엄마(김혜자)는 순수한 도준이 살인을 저질렀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도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사건을 빠르게 종결 처리하는 데만 관심 있어 보이는 경찰과 돈만 밝히는 변호사를 도준 엄마는 믿지 못한다.

도준 엄마는 문아정의 장례식에 직접 찾아가 “우리 아들이 안 그랬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피살된 문아정이 어떤 사람인지 탐문하던 도중 도준 엄마는 피해자가 성매수 남성들을 다수 상대했음을 알게 된다. 성매수 남성들은 문아정의 휴대전화기가 공개될까 봐 전전긍긍하는데 그녀가 상대 남성 사진을 모두 찍어뒀기 때문이다. 도준 엄마는 사진에 얼굴이 찍힌 남성 중 하나가 진범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에게 자백을 유도하기 위해 찾아가는데, 외려 엄마가 발견하게 되는 건 그 남성이 도준의 여고생 살해 현장을 직접 본 유일한 목격자란 사실이다. 엄마는 그를 죽임으로써 완전 범죄를 시도한다는 게 이 영화의 골자다.
도준 엄마는 사건 당시 문아정의 동선을 따라가며 진실을 파헤친다.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는 ‘국민 엄마’ 김혜자를 내세워 한국 사회에서 모성 신화의 속성을 탐구한다. “우리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라는 도준 엄마의 해명은 “우리 아들이 그랬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라는 맹목적 믿음으로 변질돼 뻔히 드러나 있는 사실마저도 은폐하게 만든다. 도준 엄마의 경우 봉준호 감독이 영화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극단까지 밀고 간 비현실적 캐릭터이지만, 자식의 크고 작은 범죄를 인지하고도 그의 앞길을 위해 진실을 덮으려 드는 비뚤어진 모성에 대해 우리는 많이 보고 들었다.
도준 엄마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애쓰지만, 진실이 자신의 아들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을 때 이를 은폐하는 데 온힘을 쏟는다.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작품에선 피해자 문아정의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 성매매에 대한 고민까지 드러낸다. 문아정에게 성매매를 하라고 직접적으로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돈 대신 쌀이라도 받고 성판매를 했던 문아정은 누군가의 시선에선 자발적인 성매매 참여자다. 납치를 당하거나 협박을 받지 않은 성매매 참여 미성년자를 다룬 기사에선 해당 청소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는 댓글이 자주 눈에 띈다. 그들은 성매수자뿐 아니라 이미 알 걸 다 알면서 쉽게 돈 버는 방법을 택한 청소년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문아정은 삶에 대한 어떤 의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을 자주 짓는다. 그는 휴대 전화에 성매수 남자들의 사진을 모아뒀다. 마치 자신의 영혼을 조금씩 죽여간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기듯 말이다.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도준 엄마가 진실을 파헤치며 드러나는 문아정의 형편은 과연 그녀가 ‘자발적’ 성판매자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한다. 치매 할머니를 홀로 돌봐야 하는 상황은 고등학생인 그녀가 감당하기엔 가혹했다. 당장 할머니와 먹을 식량도 없기에 그녀는 쌀을 받고라도 성판매에 나선다. 성매수에 참여한 남성들은 그녀의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경우가 다수였다. 자신은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닌 그녀를 ‘원조’한 것이라며 죄책감을 덜어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아정의 시체는 지나가는 사람 누구든 볼 수 있는 건물 옥상 난간에 걸려 있었다.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도준이 문아정을 죽이는 과정은 우발적 사고로 그려진다. 도준은 문아정을 따라가다가 “남자가 싫냐”고 묻는데, 그녀에게선 “난 남자가 싫다. 말 함부로 하지 마, 바보야”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녀의 대답을 듣고 이성을 잃어 그녀에게 돌을 던진 것이다. 감독은 평소에는 착하던 도준이 ‘바보’라는 소리만 들으면 분노하는 모습을 몇 차례 복선으로 심어뒀다.
아들을 따라다니며 보약을 챙기는 그녀는 과거에 살아가는 게 힘겨워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도준 혼자 문아정을 죽였을까 … 그녀 영혼을 조금씩 상하게 한 이들의 책임

그렇기에 이 영화는 도준이 문아정을 살인했다는 진실이 밝혀지는 내용인 동시에, 그녀의 성을 매수한 모든 남성에게 죽음의 책임을 묻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억력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사리 분별은 분명하게 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도준 역시 그녀에게 ‘남자가 싫냐’고 물을 때, 일종의 성적 기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살인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핸드폰이 공개될까 전전긍긍하는 성매수남들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다. 직접 목을 조르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자신들이 그녀의 영혼을 조금씩 죽였음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돌아오는 도준의 기억은 극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따금 도준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무심히 던지는 말로 엄마의 폐부를 찌른다.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그녀에게 돌봄 노동의 짐을 오롯이 지게 한 사회의 책임을 묻기도 한다. 생계 걱정 없이 공부만 해도 됐다면 그녀는 성매매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성매수남과 함께 있을 때 문아정은 삶에 어떤 의지도 없는 표정으로 ‘지겹다’란 말을 한다. 사람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할 시기에 삶이 지겹다는 생각을 불어넣은 것은 결국 소녀 가장을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한 사회의 탓이기도 한 것이다.
도준 엄마를 연기한 김혜자는 이 영화로 LA비평가협회상을 비롯한 다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안았다.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제38조에는 성매매 상대방이 된 아동·청소년을 처벌하지 않는다고 적혔다. 일각의 지적처럼 어떤 청소년은 집안의 지원이 충분하고, 어떤 협박을 당하지 않음에도 단지 사치를 하기 위해 성매매에 나서기도 할 것이다. 이 법이 그런 사례를 굳이 처벌 대상으로 따로 분류하지 않는 것엔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원치 않게 성매매로 내몰린 여러 문아정을 보호하려는 취지가 있지 않을까. ‘내가 원해서 인간적 존엄을 일정 부분 내려놓은 것이 아니다’라는 걸 스스로 입증하는 부담까지는 지게 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사회적 배려일 것이다.
영화 ‘마더’ 포스터.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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