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자연에서 누린 평온한 저녁, 인생 꿀잠이 찾아왔다

한겨레 2022. 12. 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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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자는 것도 일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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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면과 숙면의 차이는 뭘까. 요즘 드는 의문이다. 틈만 나면 쏟아지는 잠, 꿈도 꾸지 않고 깊이 자는 잠, 자고 나면 머릿속이 말갛게 갠 상태. 표면적 증상은 비슷하지만, 명명되는 호칭은 두 가지로 갈린다. 사전적으로는 ‘과도한 잠인가, 깊은 잠인가’로 나뉘는. 얼마 전까지 8시간 수면은 내게 언감생심이었다. 요새는 8시간, 아니 10시간도 푹 잔다. 과도한 잠인가? 글쎄, 그간 쌓인 수면 부채를 생각하면 별 과도할 것도 없다.

잠의 빚은 잠으로 갚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때는 그 말을 의심했다. “수면 부채가 쌓였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이자 수면 생체리듬을 연구하는 니시노 세이지가 단호박 답변을 내놨을 때였다. “자는 수밖에 없습니다!” <숙면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서였고, 그땐 뭐 코웃음만 쳤을 뿐 감흥이라고는 없었다. 아이고, 박사님. 자고 싶어도 못 자는데 어쩌라고요!

지난 글(11월5일치 ‘과수면이라는 거대한 골짜기에 빠져버렸다)에 썼듯 과수면을 겪는 요즘은 다르다. 똑같은 글귀를 보는데도 물개 박수가 나온다. 아이고, 박사님. 맞는 말씀이어요! 현상을 보는 내 본질적 관점이 바뀐 것인지, 나를 둘러싼 상황이 내 상태를 바꾼 것인진 모르겠으나, 오랜 불면으로 누적된 잠의 빚이 탕감되는 중인 건 맞는 것 같다.

한 논문에 따르면 불면을 겪는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는 자기 내면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자기감찰, 자기경계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밤마다 소위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나 자신과 끊임없는 내적 대화를 하던 나는 불면이라는 승냥이에게 제격인 먹잇감 아니었을까. 밤이란 내게 늘 가혹한 시간이었다. 잘하고 있는가? 좋은 결정이었나? 더 나은 대안은 없었나? 나라는 존재는 어제보다 발전했는가? 뭐 그런 채찍질과 자아비판의 연속이었으니까. 거기서 벗어나게 된 결과가 아닐까. 과수면인지 숙면인지가 엄습한 것은.

자기감찰과 자기경계는 적당한 수준까지는 필요하지만, 지나칠 경우 긍정 에너지를 회복하는 일이 요원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까닭이다.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에까지 괜한 에너지를 소진하는 동안 나는 얼마나 전전긍긍했던가. 아, 오만하고도 아둔한 영혼 같으니. 요동치는 시장 한가운데서 미래에 불안을 느끼고, 그래서 주변의 미움을 사는 걸 알면서도 과한 책무를 짊어지거나 사실관계를 논하고, 그러면서도 번뇌와 자책에 시달리는 짓을, 세상과 쓸데없이 반목하는 짓을 당분간 그만두기로 했다. 문제가 생기면 곧장 나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버리는 자기 학대도 자제하기로 했다. 한계를 극복할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해서라도 당장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게 생산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기에 날마다 10분씩이라도 하늘을 보며 산책해보라. 자연이 숙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된다.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체감하는 여유는 생체시스템을 이완시킨다. 일상 속 다른 여유도 찾으면 금상첨화다. 점심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사무실로 복귀하던 과거와 작별하고, 동료들과 소소한 웃음과 함께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누려보라. 전투태세는 절로 꼬리를 내리고,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스위치는 꺼지게 마련이다.

주말에는 연차를 내고 2박 3일 캠핑을 다녀왔다. 공기는 더없이 맑고, 어둠이 짙게 깔린 숲 속은 고요했으며, 장작 타는 냄새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불멍은 말해 뭐해, 마음껏 때렸지. 때마침 캠핑장에는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는 케이터링 행사가 있었고, 크리스마스 전구가 반짝이는 식탁이 놓여 있었다. 양파 수프와 그릴에 구운 소시지, 호박파이, 치즈 등 음식에 뜨거운 뱅쇼 한 잔을 곁들이니 내적 평화가 깃드는 걸 느꼈다. 모닥불 앞에서 캠핑 의자에 앉아 친애하는 이들은 물론 낯선 이들과도 다정한 대화를, 우애와 인내를 말하는 대화를 나눴다. 자연에서 즐긴 식사답게, 평온과 여백으로 충만한 저녁이었다.

귀가하고 나서는 며칠을 숙면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역대급 꿀잠이었다. 돌이켜보면 비슷한 경험이 또 있었다. 작년 여름 제주도에 다녀왔을 때가 그랬다. 불면이 심한 시기였는데도 돌아와서는 꿀잠을 잤다. 제주에서 뭘 했느냐. 밤에는 수영장에서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며 수영했고, 낮에는 보트를 타고 서귀포 망망대해로 나가 펀다이빙을 했다. 오랜만에 지그재그로 물속을 누비며 본 심해는 경이로웠다. 열대어, 산호, 말미잘, 멸치떼 같은 것들. 자연에서 잉태된 치유력을 지닌 것들이요, 세속에서는 획득 불가능한 해독력을 가진 것들.

내게는 삶에서 일관되게 추구하고픈 가치가 있다. 그건 단순한 돈이나 명예, 지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건 도구로 쓰일 순 있으나 내가 소명으로 여기는 가치는 아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는 산소와 탄소, 수소 같은 원소로 구성된 유기체일 뿐이나, 그럼에도 사르트르가 말했듯 세상에 우연히 내던져진 존재로서 삶이라는 레이스를 어떻게 완주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삶이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점이다. 기록을 단축하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삶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주저앉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면 긴 호흡으로 페이스를 조절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이게 바로 과수면, 아니 숙면 모드를 내가 괴이쩍기보다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다. 그러니까 잠이 쏟아지는 건 축복이라는 거지, 에헤라디야.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

햇볕을 최대한 많이 쬐자. 낮에 햇볕에 많이 노출될수록 수면의 질을 좌우하는 호르몬 멜라토닌 분비가 왕성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 즉 숙면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햇살이 좋은 날에는 산책을 꼭 하길 권한다. 여건이 된다면 산속이나 바다로 여행을 떠나자. 자연만큼 만물을 치유하는 건 없다. 티타임을 할 때는 숙면에 좋은 캐모마일 차를 마시자. 양파껍질차도 숙면에 유용하니 구비해두고 자주 마시면 좋다.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씨네플레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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