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에게 가혹한 연극 ‘오만과 편견’ 마친 이경미 “힘들었지만 처음으로 내 자신을 칭찬한 작품”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출연할 배우를 찾느라 애를 먹는다는 연극 ‘오만과 편견’이 석 달 가까운 공연 끝에 지난달 20일 막을 내렸다. 연출과 배우 등 제작진 모두 후련할 것 같다. 2019년 국내 초연과 2020년 재연에 이어 줄곧 연출을 맡은 박소영 연출은 올해 세 번째 시즌 개막 전 이렇게 토로했다. “이 작품이 공연된다고 하면 늘 캐스팅이 가장 큰 산입니다. 배우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혹독한 작품이라 다들 꺼리기 때문입니다.”
배우들로선 두 시간이 훌쩍 넘는 공연 시간 내내 방대한 대사는 물론 각 캐릭터 변신과 동작, 동선 하나 하나를 오차 없이 해내야 하는 압박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박소영 연출이 이렇게 덧붙인 이유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투입된 배우(이경미·이정화·정우연·현석준)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도전정신이 투철한 배우들이었고 참 성실한 배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함께 해준 두 배우(이형훈·홍우진)에게도 참 감사합니다. 다른 작품과 다르게 이 작품은 했던 배우들에게도 여지없이 가혹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연극 ‘오만과 편견’은 배우들에겐 가혹할지언정 관객들에겐 포만감을 주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극을 보고 나면 두꺼운 원작 소설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읽은 기분이 들 만큼 탁월한 연출력과 연기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와 연습에 들어갔을 때 어땠나.
“(2019년) 같은 제작사의 ‘비너스 인 퍼’라는 2인극을 할 당시에 (초연이던) ‘오만과 편견’에 대해 들었다. 안 좋거나 힘들다는 얘긴 못 듣고 재밌다고만 들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하고 싶었는데 캐스팅 제안이 와 바로 ‘한다’고 했다. 그런데 연습 들어가자마자 ‘괜히 한다고 했나’ 싶을 정도로 할 게 너무 많아 힘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작품 자체가 라이선스인 데다 (연기해야 할) 인물이 많아 대사와 동작, 캐릭터 변신 등 원래 짜여진 대로 하지 않으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 배우들이 만들어낼 자율적 공간이 적었다. 안무를 배우고 똑같이 따라 해야하는 것처럼 하는 연기가 처음이라 힘들었다.”
-대사 부담도 컸을 것 같은데.
“원작 소설도 읽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한 영국 영화 ‘오만과 편견’(2005년 개봉) 속 리즈의 감정선도 참조하는 등 캐릭터를 분석한 뒤 캐릭터마다 (각각의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처럼) 달리 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캐릭터에 따라 키를 크게 하거나 작게 하고, 걸음걸이, 목소리 톤, 몸짓, 제스처를 다르게 하는 등 진짜 내가 갖고 있는 것은 다 쓴 것 같다. 성대도 모두 쪼였다가 덜 쪼이거나 푼다든지. 흉성을 사용한다든지. 다만, 캐릭터 변신을 빨리빨리 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그렇게 하려면 진짜 집중해서 제때 딱딱 바꿔줘야 하니까. 연습하면서 내가 너무 욕심 부렸나 싶기도 했는데 다행이 반응이 좋아서 기쁘다.”
-공연 중 에피소드도 적지 않았을 듯 한데.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이 바뀔 때 순간적으로 후크가 잘 걸려야 의상이 바지나 치마로 바뀌는데 후크가 잘 걸리지 않아 곤란했던 경우도 있다. 캐릭터를 특징지어 주는 부채나 안경, 손수건 등 소품을 주머니에서 넣다 뺐다 할 때도 문제 생기지 않도록 수없이 연습했다.”
-어렵게 준비한 만큼 배우로서도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지 않나.
“진짜 끝났구나, 이제 더 안 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홀가분했다. 너무 즐거웠지만 장기 공연이다 보니 지쳤던 것 같다. 그랬는데 집에 있다가 나도 모르게 대사가 막 나오더라.(웃음) 열심히 해 놓은 게 많았다보니 아직 몸에서 다 빠져나가지 않은 것 같다.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영화까지 여러 작품 출연했던데 ‘오만과 편견’은 어떤 의미로 남을 작품인가.
“작품 선택 시 배역의 비중과 상관없이 나를 조금이라도 성장시킬 수 있는 작품인지 따져보고, 성장시킬 수 없는 작품은 안 하는 편이다. 진짜 내가 다 믿고 내 것을 다 보여주며 배워갈 수 있는 작품을 해왔는데 특히 이거(‘오만과 편견’)는 정말 뿌듯함이 되게 큰 작품이다. 배우로서 성장한 측면도 있지만 처음으로 내 자신을 칭찬해준 작품이다.”
어렸을 때 또래보다 키가 컸던 이경미는 원래 런웨이 모델을 꿈꿨다고 한다. 그래서 예술고를 갔는데 키가 더 이상 안 자라는 데다 학교에서 배운 연기와 공연에 재미가 들려 배우가 되기로 했다.
-2012년 연극 무대에 서며 데뷔한 지 10년째인데, 배우가 되길 잘 했다고 생각하나.
“‘배우’는 ‘배우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는 계속 배운다는 자세로 겸손하게 다양한 삶을 경험하면서 스스로를 성숙하게 하는 것이라고 항상 되새긴다. 이상한 배우가 되고 싶진 않다. (배우로서 바람이라면) 관객들이 ‘이경미가 하는 거(작품)면 믿고 보러 가도 된다’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이번 작품을 통해선 뭘 배웠나.
“‘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부쳐도 되는구나’라는 걸 배웠다. 앞으로 (어떤 역할이든) 뭐든지 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달까.”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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