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만원 중고차, 2880만원에”…사람죽인 ‘허위매물’, 헐값 유혹 [세상만車]
‘싸고 좋은 차’ 선호 심리 악용
‘천원짜리 변호사’ 소재로 사용
자동차365, 허위매물 피해예방
#B씨는 중고차 사이트를 검색하다 470만원에 판다는 국산 SUV를 발견했다. 사실이라면 횡재할 수 있다는 생각에 B씨는 딜러와 연락한 뒤 중고차 시장을 찾아갔다. 친절했던 딜러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원래 제시했던 가격보다 6배 비싼 2880만원을 요구했다. 뒤늦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안 B씨가 구입을 거부하자 딜러는 태도가 돌변했다. 폭언을 내뱉고 협박하면서 차 안에 감금했다.
중고차 시장 고질병으로 여겨지는 허위매물은 한마디로 가짜 중고차다. 실제 있지도 않은 매물이다. 폐차 수준의 침수차나 사고차를 비싼 값에 강매할 때 미끼로 사용하는 중고차도 허위매물에 속한다.
허위매물 사기꾼들은 ‘헐값’이나 ‘싼값’을 미끼로 소비자를 유혹한 뒤 협박·강매, 감금·폭행을 일삼는다. 대출 사기로도 이어진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4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소비자원은 지난해 10월20일부터 11월30일까지 수도권 소재 중고차 판매자 105명과 1년 이내 중고차를 구입한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조사는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38%포인트다.
설문 결과,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으로 ‘허위·미끼매물’을 가장 많이 꼽았다.
실제 피해를 봤다는 구매자는 12.8%에 달했다. 피해 유형은 ‘사고 이력 미고지’가 40.6%로 가장 많았고 ‘차량 연식 상이’가 31.3%로 그 뒤를 이었다.
사고 이력 미고지나 차량 연식 상이보다 더 큰 피해를 일으키는 ‘허위·미끼매물’도 29.7%로 3위를 기록했다.
응답자 중 54.4%가 중고차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허위·미끼 매물’이라고 대답했다.
허위매물 실태가 드러난 적도 있다. 경기도가 지난 2020년 온라인 중고차 매매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매물 95%가 허위매물로 밝혀졌다.
경기도가 차량 소재지, 사업자 정보, 시세 등이 부실한 온라인 중고차 사이트 31곳을 선정해 한 곳당 매물 100대씩 임의 추출한 뒤 자동차등록원부와 대조한 결과다.
조사대상 매물 3096대 중 중고차 상사명의로 소유권 이전 뒤 매매상품용으로 정식 등록된 차량은 150대(4.8%)에 불과했다. 나머지 2946대(95.2%)는 허위매물인 셈이다.
판매가격과 주행거리를 확인한 결과, 중고차 판매자가 게시한 가격은 평균 748만3000원 수준이나 실제 취득가액은 평균 2129만6000원으로 2.8배 비쌌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부터 5년 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신규 진출과 확장이 제한됐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4월28일 열린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심의회)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중고차 판매업 사업개시 시점을 1년 연기해 내년 5월 1일 개시한다”며 “다만 내년 1∼4월에는 각각 5000대 내에서 인증중고차를 시범판매 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현대차·기아는 한달 뒤인 내년 1월부터 시범사업을 선보이고, 내년 5월부터는 인증 중고차를 소비자들에게 본격적으로 공급하면서 사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현대차·기아 진출로 허위매물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실제로 현대차·기아가 판매하는 인증 중고차가 시장을 투명하게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기아가 판매하는 인증 중고차는 허위매물 피해를 일으키는 매물과는 거리가 있고 공급량도 한계가 있다. 중고차이지만 구매층도 다르다.
현대차·기아는 BMW, 벤츠, 폭스바겐, 아우디, 렉서스, 포르쉐 등 수입차 브랜드의 인증 중고차처럼 주로 5년 10만km 미만 차량만 판매한다.
이 중 200여개 항목 정밀 검사를 통과해 품질을 믿을 수 있는 차량만 판매할 것으로 알려졌다.
물량도 한정됐다. 현대차는 내년 5월1일부터 2024년 4월30일까지 전체 중고차의 2.9%, 2024년부터 2025년 4월30일까지는 4.1%만 판매할 수 있다. 기아는 전체 물량의 2.1%, 2.9%로 제한받는다.
또 인증 중고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좀 더 비싸더라도 믿을 수 있는 품질을 우선시한다.
지금도 심각한 허위매물 피해가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도 있다. 최근 중고차 금리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중고차를 사고 싶지만 10% 넘는 고금리 때문에 좀 더 싼값에 사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사기꾼들이 악용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고금리 때문에 매물 보유 부담이 커져 급매물로 싸게 내놨다며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사기꾼들도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115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대량 발생한 침수차도 허위매물 사기꾼들이 악용할 수 있다. 침수차는 정상적으로 팔기 어렵다.
사기꾼들은 미끼매물을 이용해 소비자를 유혹한 뒤 침수차를 비싼 값에 강매할 수 있다.
직접 찾아온 소비자에게 팔려던 차에서 침수흔적이 발견됐다고 선심을 쓰는 척 말하면서 더 비싼 차를 사도록 유도하고 협박할 수도 있다.
우선 헐값·싼값에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싸고 좋은 차’를 일반 소비자가 중고차 시장에서 살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다.
가격이 너무 싸다면 사고나 고장 등 딜러가 감춘 다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혼자서 수십 대의 매물을 올린 딜러도 의심해야 한다. 자금 문제 때문에 한 명이 매물 수십 대를 보유하기 어렵다.
게다가 딜러들이 중고차를 매입할 때 빌리는 ‘재고금융’ 금리도 올랐기 때문에 보유 매물은 더 적어진다. 대부분 혼자서 수십 대를 구입할 돈도 없고 주차해 둘 곳도 없다.
가짜 매물을 대량으로 올리고 타 중고차 사이트에서 매물 정보를 긁어오다 보니 사진과 다른 내용이 게재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겨울인데 봄이나 여름에 찍은 것 같은 사진, 다른 온라인 사이트의 워터마크가 찍힌 사진이 대표적이다.
매물 사진이나 소개란에 적혀 있는 중고차 시장 정보와 판매자(딜러)의 지역 정보가 달라도 가짜 매물일 수 있다. 딜러들은 주로 해당 지역 매매시장에 소속돼 활동하기 때문이다.
딜러와 만났을 때 사려던 차가 방금 팔렸다며 다른 차를 권유한다면 그 자리를 바로 떠야 한다.
실제 통화한 딜러가 아닌 다른 딜러가 나와도 사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부득이한 상황으로 통화한 딜러가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자리를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종사원증을 잃어버렸다거나 주머니에게 꺼내 잠시 보여준 뒤 다시 감추듯 넣으면 사기꾼일 가능성이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운영하는 ‘자동차 365’ 사이트로 실 매물 여부도 파악할 수 있다. 사이트에 접속해 차량 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정식 딜러 여부도 알 수 있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허위매물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싼값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며 “허위매물에 당했다고 직접 해결하려다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시민연합이나 소비자원의 도움을 받는 게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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