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의 심심함은 ‘심술’ 때문

한겨레21 2022. 12. 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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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신화의 시대, 중국 요임금이 문득 백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져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단다.

일각의 평가와 달리 성종 시대는 아무 일도 없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교화가 정치 무대 전면에 등장한 성종 시대 정치적 갈등의 초점은 권력이나 제도가 아닌, 개인의 내면에 맞춰졌다.

'심술'(마음가짐)을 갖고 심술을 부리는 '마음의 정치'야말로 성종 시대의 교화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요 적폐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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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개인의 내면을 개조하는 은밀한 작업 벌인 성종, 방상근의 <성종, 군주의 자격을 묻다>

저 멀리 신화의 시대, 중국 요임금이 문득 백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져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단다. 궁궐을 나와 길을 걷는데, 웬 노인이 땅바닥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게 아닌가. 가만히 들어보니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먹으니 임금의 덕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요임금은 화내기는커녕 “과연 태평세월이로고”라며 만족했다고 한다. 지도자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하다는, 중국 고사 속 이야기다.

성종도 통치가 뛰어났던 나머지 군주가 묻힌 사례다. 그의 치세는 조선의 태평성대로 평가받지만 정작 성종이 어떤 인물인지, 무엇을 꿈꾸고 이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 인수대비나 아내였던 폐비 윤씨, 아들 연산군처럼 성종보다는 그 주변 인물들이 훨씬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이루다’(成)라는 묘호에도 성종 시대의 ‘이룸’은 <경국대전> 완성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정치학자 방상근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경국대전>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기대하며 <성종실록>을 읽어나갔지만, 정작 당시의 기록은 너무나 심심했다. 태조나 태종 시대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권력투쟁이 벌어진 것도, 세종 시대처럼 문물과 예악이 정비된 것도 아니었다. <성종실록>을 가득 채운 건 오늘날 시각에선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의 ‘심술’(心術·마음가짐)이나 소인 됨에 대한 진지하고 장황한 이야기였다.

방상근의 책 <성종, 군주의 자격을 묻다>는 이 ‘심심함’에서 이전 왕들과 구분되는 성종만의 특징을 발견한다. 일각의 평가와 달리 성종 시대는 아무 일도 없던 시절이 아니었다. 다만 그 일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니었을 뿐이다. 제도로는 해결할 수 없는, 개인의 내면을 개조하는 은밀한 작업이 성종 치세 전반에 걸쳐 착실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른바 ‘교화의 정치’다. 성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신료들이 어질다는 의미의 ‘인’(仁)을 묘호로 삼자고 주장한 것 역시 그 ‘거룩한 덕과 지극한 교화’(盛德至化) 때문이었다.

유교, 특히 주자학은 법과 제도에 따른 통치를 멀리한다. 사람은 선함을 타고났으므로, 잘 이끌어만 준다면 다스림은 자연히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교화가 중요한 이유다. 교화는 마음을 겨냥한다. 마음이 바뀌어야 진정한 교화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교화가 정치 무대 전면에 등장한 성종 시대 정치적 갈등의 초점은 권력이나 제도가 아닌, 개인의 내면에 맞춰졌다. 훈구와 사림의 대립이라는 허구적 도식이 아닌, 마음을 둘러싼 치열한 투쟁이야말로 이 시대의 본질이었다.

교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어떤 제도보다 강력하다. 교화의 문제 역시 여기서 발생한다. 교화의 대상인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심증’만으로도 군자와 소인을 구분할 수 있다. 실제로 성종 치세 후반기에 들어서면 마음이 바르지 않다며 상대를 악으로 규정짓는 사례가 많이 늘어난다. 오죽하면 음험하고 교활하단 이유로 대신을 탄핵할 수 없다는 한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심술’(마음가짐)을 갖고 심술을 부리는 ‘마음의 정치’야말로 성종 시대의 교화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요 적폐였던 셈이다.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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