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로 ‘탄생’한 성 김대건 신부가 표착한 제주 차귀도 [전승훈의 아트로드]

전승훈기자 입력 2022. 12. 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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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개봉한 영화 ‘탄생’에서는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삶을 그렸다. 영화 속에서는 김 신부가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후 작은 배를 타고 풍랑에 표류하다가 제주도 차귀도에 도착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주에서 최서단에 있는 차귀도는 깎아지른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는 섬이다. 김대건신부표착기념관이 있는 용수리 해안에서 차귀도를 바라보며 걷는 ‘생이기정길’은 억새가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으로 손꼽히는 길이다.

차귀도가 바라다보이는 풍경.
●격동의 19세기 동아시아의 탐험가

“길이 없다고요?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바다라는 게 모르면 공포의 대상이지만, 알면 길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영화 ‘탄생’.

영화 ‘탄생’을 보면 배우 윤시윤이 주인공 역할을 맡은 성 김대건은 최초의 조선인 가톨릭 신부이자 순교성인이라는 틀에서만 가둬놓아선 안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서양 학문을 배우기 위해 유학한 학생이며, 5개 국어(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를 구사한 언어 천재이자, 서해를 횡단한 모험가였고, 서양의 항해술과 독도법, 측량에 관심 많던 지리학자였다. 신분질서가 엄격했던 유교 사회 조선에서 평등한 나라를 꿈꾸던 선각자였으며, 19세기 열강의 침탈 속에서 한국의 근대를 꿈꾸었던 탐험가이자 국제인이었다. 실제로 김 신부는 옥중에서 정부의 요청으로 세계지리의 개략을 편술했고, 영국이 만든 세계지도를 번역하기도 했다.

영화 ‘탄생’.

영화 속에서는 김 신부가 15살에 최양업, 최방제 형제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길에 오른 후 25살의 나이에 새남터에서 순교할 때까지, 3574일간 마카오와 필리핀, 청나라와 몽골, 만주,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를 넘나드는 스펙터클한 여정을 보여준다.

영화 ‘탄생’.

그 중에서 하이라이트는 제물포에서 길이 7.5m, 너비 2.7m에 불과한 목선 ‘라파엘호’를 타고 상해까지 갔다가 서해바다의 폭풍우를 뚫고 오가는 장면이다. 김 신부는 이 배를 타고 상해 진자샹(金家巷)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라파엘호는 구약성서에서 토비아의 여행길을 인도해 여행자들의 주보성인이 된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영화 ‘탄생’.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조선인 신자까지 총 13명이 탄 라파엘호는 28일간의 표류 끝에 남쪽으로 흘러가 제주도 최서단 섬인 죽도(차귀도)에 닿았다. 배 위에서 망원경으로 한라산을 확인한 김대건 신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진다. 김 신부 일행은 차귀도에서 사제서품 이후 한국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한다. 이후 라파엘호는 용수리 포구에 정박해 반파된 배를 수리하고, 식량을 얻어 충남 강경 황산포구에 도착한다.

성 김대건신부 제주표착 기념관.

용수리 포구 주변에는 김대건 신부 표착기념관이 있다. 입구에는 갓을 쓴 김대건 신부 상이 순례객을 마주하고, 그 뒤로 등대 모양 종탑이 인상적인 기념성당과 배 모양을 형상화한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성김대건신부 제주 표착 기념성당.
2008년에 건립된 기념성당의 정면은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중국 상하이 진자샹 성당 정면 모습을 재현했고, 지붕은 거센 파도와 맞서 싸우는 라파엘호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에도 김대건 신부가 바다를 헤치고 오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기념관 2층 전시실에는 1845년 9월28일 김대건 신부 일행이 차귀도에 표착 후 첫 번째로 봉헌한 미사를 실제처럼 만든 모형도 눈길이 끈다. 기념관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수월봉과 차귀도, 용수포구 등 제주 서북해안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독수리가 지키고 있는 차귀도

드론으로 촬영한 차귀도.

차귀도(遮歸島)란 이름은 고려 16대 임금 예종 때 송나라 복주출신의 술사 호종단(胡宗旦)의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호종단은 제주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날 것을 경계해 제주의 혈맥과 지맥을 끊고 다녔다고 한다. 그가 중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한라산의 신인 광양당신이 독수리(매)로 변하여 폭풍을 일으켰고, 이에 호종단의 배가 난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섬의 이름이 ‘돌아가는 것을 막은 섬’이라는 뜻을 가진 차귀도가 됐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차귀도는 김대건 신부가 타고 돌아온 라파엘호는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지난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김대건 신부의 표착기념 미사를 차귀도에서 봉헌했다.

차귀도 병풍바위.

제주도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섬 차귀도(遮歸島)는 천연보호구역으로 천연기념물 제422호이다. 본섬인 죽도를 비롯해 주변의 지실이섬(매바위섬), 누운섬(와도)를 포함하고 있다. 섬 곳곳에 집터나 우물이 남아 있을 정도로 한 때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살았으나, 현재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무인도다. 차귀도 인근 바다는 물반 고기반으로 불릴 정도로 낚시로 유명한 섬이다.


오징어를 줄에 걸어 말리는 풍경이 인상적인 자구내 포구에서 유람선이나 낚시배를 타면 10여 분 만에 차귀도에 도착할 수 있다.


유람선(성인 1만8000원)을 타고 들어가면 약 한 시간 정도의 관람시간이 주어진다. 섬내의 트래킹 코스를 돌며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둘러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섬에 들어가면 오른쪽은 한라산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왼쪽엔 푸르게 빛나는 제주의 바다가 펼쳐지는 등대가 있다.

차귀도 등대.

기자가 취재를 갔을 때는 아쉽게도 유람선이 정기점검 중이라 뜨지 않았다. 그래서 차귀도 낚시체험을 할 수 있는 배(1만2000원)를 탔다. 차귀도에 내려 트레킹을 할 수는 없었지만 섬을 한바퀴 돌면서 장군바위와 독수리(매)바위, 병풍바위, 쌍둥이 바위, 와도의 기암절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배 위에서 드론을 띄워 내려다본 차귀도의 본섬은 대나무가 많아 대섬 또는 죽도로 불려왔다는데, 부드러운 언덕이 이어지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본섬 옆에 잇는 ‘와도(臥島)’는 사람의 옆얼굴과 입, 치아까지 보일 정도로 영락없이 사람이 누워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은 ‘눈섬’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곧 날아오를 듯 잔뜩 웅크려 있는 독수리(매)바위는 호종단의 배를 침몰시킨 바로 그 독수리(매)의 형상이다.

독수리바위 또는 매바위로 불리는 차귀도 지실이섬.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 차에 옆에서 낚시를 하던 체험객이 70~80cm 정도의 큼지막한 자연산 광어를 낚았다. 차귀도 갯바위에 왜 그렇게 많은 낚시꾼들이 붙어 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새가 날아다니는 절벽, 생이기정길

차귀도에서 돌아온 후 김대건 신부표착 기념관이 있는 용수리 포구에서 당산봉 방향으로 해안길을 걸었다. 그 유명한 ‘생이기정길’이다. 제주올레길 12코스이기도 한데, 안내표지에는 ‘겨울철새의 낙원으로 가마우지, 재갈매기, 갈매기 등이 떼지어 산다’고 돼 있다.

새가 날아다니는 절벽 ‘생이기정’.

용암이 굳어진 기암절벽인 생이기정은 제주어로 새를 뜻하는 ‘생이’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진 말이다. 한마디로 ‘새가 날아다니는 절벽길’이라는 뜻이다. 절벽 옆에서 부서지는 파도소리, 새소리,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억새물결과 그 소리는 절벽 너머 보이는 차귀도와 와도의 풍광이 어우러져 인생샷을 건질 만한 풍경이 펼쳐진다.


제주 올레 12코스이기도 한 생이기정길(약 1.5km)은 당산봉을 형성한 화산재가 쌓인 위로 용암이 다시 분출해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해안절벽이 있다. 길을 걷다가 뒤돌아보면 멀리 보이는 차귀도가 각도에 따라 다섯 개로도 보이고, 여섯 개로도 보인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제주도의 오륙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국적 경치에 취한 순간 외국인 순례객들이 앞서 걸어간다. 포르투갈에서 출발해 대서양 해안길을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못지 않게 아름다운 길이다.


검은 현무암이 평평히 쪼개진 해안에는 김대건 신부 표착기념비가 서 있다. 이 곳을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언덕에 오르면 작은 만이 나온다. 옥빛 물빛과 생이기정이 더해져 아주 아름답다. 이 만을 향해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는데, 차귀도로 떨어지는 낙조를 보기에 좋은 명소다.


당산봉의 바다 쪽은 절벽에는 갈매기가 많이 살고 있다. 절벽은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흰색으로 덮여 있는데 갈매기의 배설물로 생긴 것이다. 당산봉 정상까지 경치를 충분히 감상하면서도 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서면 북쪽으로는 신창 풍차해안도로가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수월봉, 산방산까지의 푸른 해안이 한눈에 펼쳐진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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